일본의 영향력 하에 우리나라에서도 을유문고, 삼중당문고, 정음문고 등이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엇비슷한 구성을 탈피하지 못해 독자들의 손을 떠나 버렸고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신세대 문고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문지 스펙트럼시리즈, 창해 ABC문고, 궁리 철학시리즈, 한길 로로로 등이 그것인데 이런 '신세대 문고판'의 다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발견총서', 영국의 토템북스 시리즈, 프랑스 플라마리옹의 'ABC daire', 독일 로로로 시리즈 등 서구의 유명 시리즈물들을 그대로 번역 소개하는 데 그쳐 또 다른 천편일률적 행보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는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와 더불어 번역물이 아닌 한국의 젊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꿋꿋이 전하고 있어 한결 돋보인다. 제1권 <한국의 정체성>(탁석산 지음) 이래 다양한 분야의 스테디셀러를 양산하고 있는 '책세상 우리시대 문고'가 이번에는 그 108번째 순서로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장귀연 지음)을 상재했다.
비정규직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매커니즘'
서울산업대 강의와 각종 부정기적인 기고, 연구프로젝트로 밥벌이를 하는, 그 자신이 비정규노동자인 장귀연이 지적한대로 이제 비정규직은 비숙련 단순노동이나 저소득 직종에 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고용의 유연성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전 직종으로 확대된, 오늘날 자본주의가 세계화를 통해 개인의 삶을 규정해나가는 '매커니즘'인 것이다.
이 책에서 장귀연은 비정규직 확산은 오랜 시간을 통해 규정된 노동권이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해체되는 과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산업구성이 변했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자 구성도 변했고 따라서 노동시장 구조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확산은 필연'이라는 이런 저런 연구들과 달리 이 책은 직업을 갖고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살아가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접근과정은 상세한 자료와 더불어 저자가 직접 진행한 방대한 양의 인터뷰를 통해 설득력을 배가하고 있다. 이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라는 비정규직운동단체의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고 <신자유주의와 노동의 위기>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노동운동> 등 여러 비정규노동 관련 책의 공저자로 참여한 저자 개인의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노동자인가' △'비정규직은 왜 확대되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우리시대의 비정규직, 무엇이 문제인가' 순으로 되어있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노동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기도 어렵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현재 또는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라는 말에서 자유롭다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시대의 유피미즘…'노동유연성 제고'
19세기 현대적 산업자본주의가 나타나면서 '선진국'인 영국, 미국 등에서는 아동노동, 여성노동, 장시간 노동이 그야말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노동조합, 파업 등 일체의 노동권을 강구하기 위한 행위는 모두 자유시장경제를 왜곡하는 행위로 규정됐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수많은 피와 땀에 의해 이제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노동삼권은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56%(2005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에 이르는 지금 노동권은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해고의 자유로움', 다른 말로는 '잘릴 위험이 높아서' 혹은 '노동유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유피미즘'(euphemism)의 전성시대다. 학원탄압은 학원안정화 정책, 공공요금 인상은 가격현실화로 뒤바뀐 것은 고전적 유피미즘에 불과하고 우리시대의 유피미즘에 의하면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됐으며 대량해고는 고용유연성 제고라는 말로 통한다.
이렇게 목줄이 경각에 달린 판국에 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건 향상이라는 보편적 노동권 요구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계약, 계약연장이 제1의 목표인 이상 낮아지는 임금이나 길어지는 노동시간은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따라서 '노동삼권 보장하라'는 식의 고전적 구호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에 딱 맞아떨어지지 않게 됐다는 것이 장귀연의 지적이다.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라"
"고용주에 대한 임금 노동자의 종속성을 보완하여 더 이상 불안하게 살지 않도록 하려고 한 것이 기존 노동권이라면, 현재의 추세는 이를 회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이란 방법으로 직접적인 고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노동권 개념은 점점 현실에 맞지 않는 옷이 되어간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만들어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할 때 져야 하는 책임과 비용을 없애려 한다. 따라서 노조 결성 같은 정규직 위주의 기존 노동권 개념만으론 거기서 원천적으로 배제된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
하지만 장귀연이 내놓는 노동권의 재구성 경로는 역시 추상적이다. "케인즈주의적 수정자본주의 시대의 사회적 복지와 유사한 방법일 수도 있다. 또는 기업의 전횡을 규제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또 다른 제도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저자 스스로 케인즈주의가 어떻게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는지 본문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이런 경로는 설득력이 덜하고 무성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떤 경로가 됐건 다음과 같은 근본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장귀연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버젓하게 살아갈 정당한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인식하고 모색하고 실천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하긴 다섯 살 박이 꼬마가 갱도에 들어가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는 것이 상식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상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근대노동권 확립을 가져온 것처럼 '비정규직은 파리 목숨'이라는 상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노동권 재구성의 전제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학부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길지 않은 기자 생활을 거쳐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또 그 와중에 소설가로 등단하기도 한 장귀연의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은 쉽지 않은 주제를 결코 무겁지 않게 풀어낸 역작이다.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171쪽에 문고판형인 이 책은 부담없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 자신이 노동자이거나, 혹은 미래의 노동자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일독의 값어치가 있다. 혹시 '시간강사가 쓴 문고판 책이 뭐 별거 있겠어'라고 지레짐작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도 다섯 살 박이의 탄광노동이 당연시되던 시절 서른 살 먹은 실업자에 의해 작성된 팜플렛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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