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이념적 소비' 논쟁이 2주일을 넘어 확대·발전되고 있다. "시민은 정 부회장이 비웃는 '이념적 소비'를 보란 듯이 실천해야 한다"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주장에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은 2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편리함을 넘어서 경제적 약자의 것을 사야 한다고 권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사적'인 태도"라고 반박했다.
"양동이는 그릇가게, 노트는 문방구"
공 소장은 '이념적 소비' 논쟁에 대해 아내에게 생각을 물어봤더니, 아내는 "양동이는 그릇가게에서, 노트는 문방구에서, 고기는 정육점에서 팔아야지 왜 이마트에서 파는가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조 교수는 27일자 <한겨레> 시론을 통해 정부의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비판하면서 "시민은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대기업이 '문어발'을 뻗으면 화를 내면서, 다른 분야에 진출한 대기업의 상품과 서비스는 '싸고 질 좋다'며 애용하는 모순을 종종 드러낸다"며 "사실 첨단기술 제품도 아닌 피자, 어묵, 떡볶이, 순대, 튀김까지 대기업의 것을 소비할 필요성이 어디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조국 교수 칼럼 전문 보기)
공 소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 경제 문제를 볼 때 눈에 보이는 편익은 금새 느낄 수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익은 익명의 다수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그걸 느끼기 힘들다"며 "이마트가 피자를 만들어서 바로 인근 피자 업체가 손해를 볼 수 있으나, 이마트를 방문해서 피자를 사는 익명의 다수 소비자들은 가격·배달시간·편리성 등에서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 소장은 이어 "이마트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모두 잘 사는 부자는 아니다. 그들 또한 서민들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마트 물건 사면 '나쁜 소비'인가"
공 소장은 또 "조국 교수는 정부 개입의 근거로 헌법 제119조(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를 드는데, 이 조항은 지금까지도 많은 우려를 낳는다"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다수가 원하면 다수의 바람대로 무엇이든 실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 조항에 대해 "헌법은 자유경쟁의 이름 아래 시장 약자를 몰락시키는 경제질서를 상정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던 터였다.
공 소장은 또한 "이마트 피자가 막연히 중소상인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다수가 생각하면 그것을 금지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선택의 자유를 심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적극적 자유가 아니라 소극적 자유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며 "경쟁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 소장은 특히 "조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진보 측 논객들은 '연대'라는 이야기를 즐겨 사용하고 소비도 연대해서 하라는데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착한 소비를 하라'는 권고는 그렇게 호소력이 없다고 본다"며 "그러면 내가 이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은 '착한 소비'가 아니고 '나쁜 소비'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 소장은 "가격과 편리함처럼 소비자에게 귀중한 판단기준이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물론 개중에는 대기업 상품 대신에 다른 것을 사겠다는 판단기준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편리함을 넘어서 경제적 약자의 것을 사야 한다고 권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사적'인 태도라고 본다"고 거듭 강조했다.
공 소장은 '깨진 창과 이마트 피자'라는 별도의 글을 통해서도 "피자 업체의 보호를 위해 이마트가 피자를 만들지 말라고 정부가 나설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효과'는 이마트 주변의 몇몇 피자 가게일 것"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는 이마트에 와서 피자를 구입하는 고객들이 피자 구입에 들어가는 지출을 줄이는 일, 편리함에다 그 지출을 줄인 돈을 갖고 다른 물건 구매에 늘리는 일 등이 포함 될 것"이라고 했다.
착한소비? 우국지사?
조 교수는 "시민이 재래시장, 동네 상점, 동네 카페, 지역생산자조합이 만든 '로컬 푸드' 등을 외면하고 대기업 백화점, 기업형 슈퍼마켓, 대기업 소유 프랜차이즈 카페, 대기업 생산 음식 등을 향해서만 달려갈 경우 그 결과는 대기업은 영역 확장을 위한 '무한도전'을 계속할 것이고, 자본력과 유통망이 취약한 중소상인은 계속 몰락할 것"이라며 "정 부회장은 조소했지만, 시민은 위세 부리는 이익과 힘의 논리 앞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연대해야 한다. 가격과 편리함을 유일 잣대로 삼지 않는 '착한 소비'가 필요한 시간이다"고 역설했었다.
공 소장은 그러나 "만일 그런 논리라면 소비자는 모두 '우국지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빵은 동네의 빵가게에서, 그릇은 동네의 그릇가게에서, 고기를 고기가게에서"라면서 "우선 조국 교수님은 그렇게 소비를 하는지 궁금하다. 당장 댁에서 부인에게 한 번 물어보라"고 직공하기도 했다.
공 소장은 "옛말에 '사돈 것도 싸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존재라는 사실과도 맞지 않은 것 같다"고 글을 맺었다.(☞ 공병호 소장 글 블로그 바로가기)
이 논쟁을 지켜본 이계안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공 소장은 공 소장 다운, 조 교수는 조 교수 다운 글을 썼을 뿐, 결국 글은 읽은 사람이 새겨 판단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는 조국 교수의 글에 공감합니다"라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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