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포기 선언 이후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온 상황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PD수첩>의 불방은 이런 의혹에 더욱 기름을 붓고 있다.
'대운하 포기 선언'부터 '4대강 사업'까지…무엇이 변했나?
2008년 6월,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명박 대통령이 포기 선언 불과 6개월 만에 들고 나온 것이 바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같은 해 12월 15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회의에서 이 프로젝트의 초안이 발표됐다.
당시만 해도 4대강 사업의 핵심은 '보 건설'과 '대규모 준설'이 아니었다. 소규모 자연형 보 4개를 설치하고, 퇴적이 심한 구간에서 홍수 소통 공간을 넓히기 위해 2억2000만㎥를 준설한다는 내용이 담기긴 했지만, 주요 홍수 대책은 이보다는 강변 저류지 조성에 있었다. .
그로부터 4개월 후에 발표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은 애초의 계획과는 확연히 달라진 내용이었다. 1~2m 규모의 자연형 보 4개는 평균 높이 10m를 웃도는 대형 보 16개로 늘어났다. 준설량도 2억2000만㎥에서 남산의 11배 크기인 5억7000만㎥로 두 배 이상 뛰었다. 2m 남짓에 가까웠던 수심도 4~6m로 깊어졌다.
ⓒ프레시안 |
사업의 규모 자체도 커졌지만, 4대강 사업의 핵심이 '보'와 '준설'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준설 예산은 2조6801억 원에서 5조1599억 원으로, 보 건설 예산 역시 114억 원에서 무려 1조5201억 원으로 증가했다.
박창근 교수 "수심 6m는 운하의 상징"
변경된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을 사는 부분은 바로 최대 6m에 이르는 수심과 16개의 보 건설에 있다.
정부는 강바닥을 깊게 파고 보를 세우는 등 강의 '물 그릇'을 넓혀 홍수 예방과 수자원 확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대규모 준설로 수심이 깊어지면서 배를 띄울 수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 잇따라 제기됐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 당시 낙동강의 수심이 6.1m로 책정돼 있었는데, 이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수심 6m 안'은 언제든지 4대강 사업이 대운하로 변경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놨다는 지적이다. 수심 6m 정도면 4000~5000톤급 화물선이 운항할 수 있는 깊이다.
관동대 박창근 교수(토목공학과)는 "수심 6m는 운하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19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운하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심과 수로 폭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현재 4대강 사업의 설계도면을 보면, 대부분 6m 이상의 수심이 확보되고 있고, 수로 폭도 낙동강의 경우 최소 300m에서 많게는 500~600m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어 "수심 6m는 운하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한 뒤 "지금 당장은 대운하로 연결되진 않겠지만 운하의 전 단계, 혹은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창근 교수는 '수심 6m로 준설을 하는 곳은 전체 구간(1362.8㎞)의 26.5%(361.2㎞)에 불과하다'는 국토해양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4대강 '사업 구간'이 아닌 '전체 구간'을 들자면 비율이 높겠지만, 실제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구간 700㎞를 놓고 보면 절반 정도가 6m 깊이로 준설이 진행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다리꼴 준설은 '운하용'"
준설의 '깊이' 외에도 준설의 '방식' 역시 논란거리다. 현재 진행 중인 4대강 준설 공사가 퇴적토를 걷어내는 '자연 하천 정비' 수준이 아니라,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하상(강바닥) 단면을 평평한 사다리꼴로 깎아내는 '운하형'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다리꼴 준설 공사는 일반 준설보다 비용도 많이 들고 공사의 난이도 역시 높기 때문에, 운하를 위한 준설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창근 교수는 "2008년 12월 정부 자료를 보면 사다리꼴 준설 형태는 운하를 위한 도면이라고 제시돼 있다"며 "현재 4대강 공사가 진행되는 대부분의 설계도면을 보면 사다리꼴 준설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낙동강 살리기 20공구 합천보 공사 현장의 모습. 애초 1~2m 높이였던 보 건설 계획이 10m 남짓의 16개 보 건설로 변경되면서, '4대강 사업이 대운하의 준비 단계가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
높이 10m에 이르는 '대형 보' 역시 운하 사업을 위한 전초 단계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애초 1~2m 높이로 건설될 예정이었던 '자연형 보'가 높이 10m를 훌쩍 넘는 콘크리트 보로 변경된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전문가들은 보에 갑문만 설치한다면 4대강 사업이 얼마든지 대운하로 변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창근 교수는 "현재 건설되는 보의 높이가 10m, 수문 폭이 평균 40m 정도 되는데, 이 정도면 나중에 배가 드나들 수 있는 갑문으로 교체가 가능하다"며 "한반도 대운하 당시에도 높이가 10~11m 정도면 5000톤급 배가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 '수심 6m→구간 운하→대운하' 수순 밟기?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염두한 '준비 단계'라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급기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 역시 불방되면서, 정부의 당혹감도 커지고 있다.
18일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 보·운하 논란 종지부 찍고 미래로 나아가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MBC <PD수첩> 등 일부 언론이 또다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대운하를 연계하려는 것에 대해 분명히 사실이 아니라는 재차 입장을 밝힌다"며 4대강 사업이 대운하가 아닌 이유로 △4대강 사업은 강과 강을 연결하지 않는 다는 점 △갑문과 터미널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점 △강을 직선화하지 않는다는 점 △수심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18일 "낙동강 주운수로를 위한 수심 6m 계획은 철회되지 않았으며, 낙동강 운하는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꿔 추진되고 있다"며 경상남도의 관련 공문을 폭로하고, 정부의 '리버크루즈' 사업 계획과 4대강 인근의 개발을 허용하는 친수구역특별법 추진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박창근 교수는 당장 '대운하'는 아니어도 대운하의 사전 단계로 '구간 운하'가 조성될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낙동강의 경우 보와 보 사이의 거리가 평균 30㎞ 이상이며, 긴 곳은 80㎞에 이른다. 4대강 사업으로 보와 보 사이에 30~80㎞ 길이의 구간 운하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인운하의 길이가 18㎞라는 점에 비춰보면, 얼마든지 운하가 조성될 수 있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논란 끊임없는 4대강 사업…이제는 국회서 검증해야"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한 때 수그러들었던 4대강 사업 논란이 <PD수첩> 불방으로 여론에 재차 환기되자, 시민사회는 다시 본격적인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에 시동을 거는 추세다.
19일 시민·사회단체들은 '4대강 사업 검증특위 구성을 위한 국민행동'을 결성하고, 9월 정기국회 개회 이전에 국회 내에 4대강 사업 검증 특별위원회가 설치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국민 행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4대강 사업은 헌정 사상 최악의 국가적 갈등을 초래했지만, 정부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타당성 검토는커녕 법과 제도조차 무시하며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이제는 갈등 해소와 대안 마련을 위해 국회 내 4대강 검증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며 "찬반의 입장, 당리와 당략을 초월해 4대강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와 분석,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야당 의원 111명은 '4대강 사업 검증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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