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간질 공화국' 데자뷰의 하이라이트 유명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간질 공화국' 데자뷰의 하이라이트 유명환

[기자의 눈] 여주 촌로부터 장관까지 "반대하면 떠나라"

25일 오후 5시께 경기도 여주군청 앞. 60여 명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여주 주민과 환경단체 회원 20여 명을 40여 명의 '6.25 유공자' 패찰을 단 노인회 회원들과 우락부락한 30대 녹색성장실천협의회 청년들이 둘러싸고 항의하고 있던 것이다.

"서울 가서 해! 왜 여주에서 지랄이야!"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왜 그러고들 다녀!"
"나이 먹은 사람들 얘기를 들어. 빨갱이들이구만 빨갱이들."
"여주 사람들은 다 찬성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 여주를 떠나!"

집회 주최 측은 4대강 사업 반대 이유를 얘기할 기회는커녕, "집회 신고를 마친 합법적인 절차"이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권리도 있다"고 1시간 넘게 항변만 하고 있었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3조에는 "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있고,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5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벌칙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법 조항이 있는지 모르는 듯 법을 가볍게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집회 주최 측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었다.

급기야 젊은 청년들이 "니들 XX 그만해", "나가 개새끼들아"라는 욕설까지 퍼부으며 집회장소로 난입했고, '집회 방해' 행위를 수수방관하던 경찰이 와서 질서유지 대신, "신고 된 집회 시간이 종료됐다"고 통보해 집회 주최 측이 자진 해산 한 뒤에야 1시간 반의 설전이 마무리됐다.

▲ 25일 오후 여주군청 앞에서 열린 4대강 반대 측 주민들의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4대강 찬성 측 주민들. ⓒ프레시안(김하영)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2003년 부안 '방폐장' 갈등 때, 2004년 '새만금' 갈등 때, 2005년 '평택 미군기지' 갈등 때 찬반으로 갈린 지역 주민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충돌했다.

'안 봐도 비디오'인 레퍼토리가 있다. "국가 주요 시책 사업을 반대하면 빨갱이"였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외지에서 온 운동권"이었고, "환경이 밥을 먹여 주냐.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호소도 있었다. 그리고 항상 결론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기를 떠나라"는 것이다.

25일 여주군청 집회 현장에서 이런 광경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 사회는 '진보'하고 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합법적 평화 집회 현장의 싸움을 말려야 할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있고, 30분 떨어진 이포보 공사 현장 인근에서 4대강 찬성 측 주민들이 환경단체 측 농성 상황실 현장을 습격하는 동안 여주군수는 찬성 주민들을 '격려 방문' 했다고 한다. '공정한 중재자'로서 사전에 갈등을 막을 계획을 수립해야 할 관(官)이 중재는 고사하고 사후에도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 이런 걸 두고 '이간질'이라고 한다.

일개 군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간질'의 정점을 찍었다. "젊은 애들이 한나라당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 찍으면 평화라고 해 거기에 다 넘어갔고, (북한이) 그렇게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 유지하지 못 한다"고도 했다.

유 장관이 "4대강 사업 반대하면 빨갱이다. 그런 사람들은 여주를 떠나라"며 막무가내 삿대질 하는 여주의 한 촌로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위'에서 이러고 있으니 갈등 조정 같은 시스템이 있을리 만무하다.

지역의 유지들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함께 더불어 살 궁리 대신 반대자들에게 "떠나라"고 강요한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이분들이야말로 잠시 떠나서 머리 좀 식힐 것을 권유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