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엔 비정규직 관련법 저지 비상대기 지침으로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못 갔다. 그랬던 심 의원이 "내일 아들 학교 동아리 '사랑방 행사'에 초청받았다. 참가 신청자도 많다던데 엄청나게 긴장된다"고 했다. 지난 13일 새 원내대표단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이제 보직 없는 평의원으로 돌아갔으니 좀 한가해진 것인가?
아닌 것 같다.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지방선거 성적표를 받아든 민노당도 선거 뒷수습에 여념이 없다. 내부적으로는 '당 혁신'이 다시 화두다. 밖으로는 진보정당의 존재가치를 내년 대선에서 확인받아야 한다. 국회 재정경제위 소속 의원으로서 부여된 역할도 만만치 않다.
<프레시안>은 15일 심 의원을 만나 지난 2년간의 원내 활동에 대한 평가와 민노당의 진로, 요동치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한국경제를 주물러 온 모피아의 실체를 봤다"
심 의원은 "국회에 처음 들어와 걸음마를 배우면서 뛰느라고 참 힘들었다"고 지난 2년을 돌아봤다. 그는 "우리 의석이 한 35석만 돼도 일할 만했을 텐데 비교섭단체의 벽을 넘기가 어려웠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지난 총선에서의 민노당 득표율 13.5%를 의석수로 환산하면 39석이다.
원내에 진출해 개인적으로 이룬 성과 중 하나로 심 의원은 "모피아('마피아'에 빗댄 재경부 관료들의 별칭)의 실체를 본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온존해 온 기득권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꼽았다.
그는 "내가 겪은 모피아들은 굉장히 유능한 확신범들이었다"고 말했다. "공직에서 퇴임하면 금융기관이나 로펌으로 옮기고, 거기서 고위관료로 돌아오는 회전문 현상이 모피아를 엮어놓는 핵심적인 힘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충성도와 개인적 능력이 오랜 세월 한국 경제를 주물러 온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그는 "금융세계화, 외자, 재벌 문제가 사회적으로 볼 때 전면적으로 제기된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자부심을 느낀다"며 "세계화의 덫, 특히 금융세계화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 외자 문제, 금융개혁 문제를 한 축으로 삼고 신용불량자 문제나 대부업 문제 같은 민생현안 문제를 다른 축으로 가지고 활동해 왔고 앞으로도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들로부터 유리된 진보정당의 미래는 뻔하다"
한편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심 의원은 "당내로 따지면 패배가 분명하다"며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을 명확히 하고 그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우리는 핵심 지지층에 대한 구체적 접근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슬로건을 넘어 '어떻게'를 제시해야 할 때"라는 것이 심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특히 "한나라당 득표가 바람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것도 다 근거가 있는 바람이다"면서 타깃 계층에 대한 명확한 의도와 방법론을 가지고 대중을 조직한 한나라당의 노련한 선거기술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심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우향우는 필연적인 것"이라며 "이제 그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 뒤 "다음 대선에서 민노당의 주전선은 '대(對)한나라당'"이라고 강조했다. 이제 "진보와 보수가 대결할 때가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심 의원의 말에서도 민노당의 갈 길은 멀어 보였다. 민노당이 운동권 내부를 향한 정파정치를 아직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 그는 "우리 당의 특징 중의 하나는 결정해야 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쪽에서 결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안 지려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자평했다.
이에 따라 민노당의 대선 후보는 "서민정당으로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광범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평당원들의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넌지시 자신도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심 의원은 "당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전략 가운데 부여되는 역할에 충실히 동참할 생각"이라며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 거론되는 두 분에 비해 내가 더 자유롭고 부담 없이 접근해서 당에 활력을 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심 의원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
지난 2년간 걸음마 배우면서 뛰었지만 힘이 부족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17대 국회가 반환점을 돌았다. 원내 진출 2년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자면?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얻은 득표율이 12.1%다. 사실 지난 총선에서 얻은 13.5%가 우리에 대한 기대가 포함된 것이었다면 이번에 얻은 12%는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12% 안에 성과와 한계가 집약된 게 아닐까? 우리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졌던 분들께 최소한 절망으로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이 12%로 나타났다고 본다. 물론 조직된 노동자와 농민, 화이트칼라라는 기존 지지층을 확장시키지 못했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원내수석부대표직을 맡았었다. 기억에 남는 일이나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 있나?
=당이나 나 개인이나 국회에 처음 들어와 걸음마를 배우는 동시에 또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한계 속에서 민노당의 의미를 확인시켰다는데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는다. 비교섭단체가 포함된 정책위원회 회의나 대표회담 등은 과거에는 거의 가능치 않았던 일이다. 다른 당에서도 5당 협의체가 때때로 만들어졌던 것은 민노당의 공이라고 하더라.
후임 원내대표단은 이런 성과와 한계를 바탕으로 (교섭단체 완화 등) 제도화로까지 확장해야 할 것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일은 조승수 전 의원이 사법살인에 가까운 판결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의정활동도 성실했던 분이고 진보정치 일번지인 울산의, 그것도 단 두 명밖에 없는 지역구 의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조 전 의원의 의원직 박탈로 10석이라는 상징적 숫자도 깨졌다.
-원내활동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협상이다.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한계를 전제로 하고 민노당의 원내협상을 평가해본다면?
=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현재 원내 제도권 정치에서 비교섭단체는 절름발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가 서민대중에게 좀 더 나아가는 데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지점이다. 총선에서 우리 지지도가 13%였는데 의석수는 3%다. 13% 의석수였다면 17개 상임위에 두 명씩 배치돼서 최소한의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못됐으니 13%와 3% 사이의 차이를 메우는 것이 바로 의원단의 몫으로 떨어졌다. 2년간 활동하면서 5당 협의체 등으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교섭단체 구조를 공격해 이완시켜 얻은 공간을 통해서였다.
-원내에서 민노당의 역할 중 하나가 '견제'였다. '폭로'를 하기도 했고, 불가피한 경우 몸싸움도 했다. 그러나 제도권 내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대안제시 능력은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에 대해선? 또한 이유야 어떻든 물리력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방해한다는 비판도 들었다.
=우리가 원내에 들어온 이후로도 고공점거 같은 극단적 투쟁이 그치지 않는다는 비난도 있다. 그런데 문제해결 능력과 투쟁전술은 분명히 반비례한다. 해결능력이 모자랄수록 극단적 투쟁전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내에 들어왔지만 노동자 서민의 이해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란다. 우리는 제도권에 들어오는 것을 선택했지만 비주류로서 원외 대중들의 요구를 어떻게 원내에 확장시키느냐는 임무를 지고 들어온 것이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보수진영과의 타협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만들기에는 우리와 그들의 힘 차이가 워낙 컸다. 비정규 법안의 경우 점거도 하고 온갖 수단을 써서 지연시키고 막기는 했지만 합의안을 앞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저쪽이 보수적이어서라기 보다 우리가 강제시킬 수 있는 힘의 크기가 부족한 탓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보면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면 노동자 서민 각 주체와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당이 자기 대중들을 지도할 수 있는 정치적 힘도 필요한데 민주노총이나 전농 같은 대중조직에 의해 규정되는 점이 상대적으로 컸었다. 물론 당이 '이래라' 하면 대중 조직들이 입 다물고 따라왔어야 된다는 말은 아니다. 대안제시 능력이 미흡했다기보다 정치적 공간이나 기반이 협소했다고 진단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틈새시장이랄까, 이해관계가 전면적으로 대립되지 않는 부분에서 실리적 성과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을 놓쳤었던 적도 꽤 많은데 그건 아쉽다.
"모피아, 진보정치 카운터파트 삼을만 하더라"
-재경위에서 2년간 활동했다. 하반기 국회에서도 재경위를 희망하는 것으로 안다. 바깥의 평가는 상당히 좋았는데 스스로 생각하는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임기 후반기 국회에서의 목표는?
=재경위를 처음 맡으면서 민노당의 대안적 경제 프로그램을 구체화 하는 데에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계화의 덫, 특히 금융세계화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 외자 문제, 금융개혁 문제를 한 축으로, 신용불량자 문제나 대부업 문제 같은 민생현안 문제를 다른 축으로 가지고 활동했고 이는 후반기에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금융세계화, 외자, 재벌 문제가 사회적으로 볼 때 전면적으로 제기된 것에 대해 일정 정도 자부심을 느낀다. 삼성이 8000억 원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나 정몽구 회장이 구속된 것 같은 변화에는 시민사회 영역의 힘이 컸겠지만 제도권 내에서 나온 우리 목소리도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현재 세계화의 핵심은 결국 금융세계화다. 금융자본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중요한데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 공적자금 투입 등이 전부 비밀리에 이뤄진다. 기업실사나 각종 양해각서 체결 같은 것은 미국만 해도 의원들은 확인이 가능한데 우리는 전부 비공개다. 그런 지점이 참 어려웠다. 론스타 매각 문제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나.
-밖에서 비판할 때와 실제로 안에서 들여다 볼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얼마 전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이 수뢰혐의로 체포됐다. 변 전 국장은 모피아(재경부 관료 커넥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피아를 접해본 느낌은 어떠했나?
=모피아의 실체를 본 것이 의회에 들어와서 얻은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인데 수십 년 동안 온존해 온 기득권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겪은 모피아들은 굉장히 유능한 확신범들이었다. 다른 부처 관료들이나 열린우리당 사람들 하고 이야기 할 때 보다 이들과 이야기 할 때가 오히려 편하기도 했다. 이들은 민노당의 주장과 주문이 무엇인지 가장 신속히, 정확하게 이해하는 집단이었다. 단,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이후 우리를 설득하려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진보정치의 카운터파트로서 삼을 만한 실력과 완강함, 집요함을 갖추고 있더라. 우리나라 최고 수재들이 모인 면모를 확인 할 수 있었다.(웃음)
공직에서 퇴임하면 금융기관이나 로펌으로 옮기고 또 거기서 다시 고위관료로 돌아오는,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 모피아를 엮어 놓는 핵심적인 힘이더라. 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충성도와 개인적 능력이 오랜 세월 한국의 경제를 주물러 온 것이다. 이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경제에 대한 우리 모델을 좀 더 구체화 시킬 수 있었다.
"고정지지층에 대한 접근이 우선…한나라당한테 배울 점 많다"
-의원단과 중앙당, 특히 최고위원회와의 관계 설정은 민노당의 고질적 숙제였다. 최근 문성현 대표도 한 인터뷰에서 노회찬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문제를 두고 현재 당의 구조가 의원단을 강제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의원단과 중앙당의 문제 핵심은 제도권 공간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리더십에 대한 문제다. 의원들을 최고위원회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 이야기도 여러 번 나왔지만 제도 자체 보다 당의 전략과 전략에 동의를 구현해 나가는 민주적 책임성에 대한 문제다. 선거전략도 마찬가지다. 출마를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보거나, 여론몰이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당의 전략이라 볼 수 없다. 확고한 전략과 그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프로세스의 수립이 리더십의 핵심 요체다. 우리 당의 특징 중의 하나는 결정해야 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쪽에서 결정을 안 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안 지려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말이다.
-당 내에서 지방선거 평가가 진행 중인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 혹은 논점은 무엇인가?
=당내에서 평가하자면 이번 선거는 패배다. 밖으로 내 건 목표에도 못 미쳤을 뿐더러 당원들이 가진 기대수준과도 괴리가 컸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우리가 내걸었던 목표의 실천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선거 평가 논점은 당 일상 정치활동에 대한 검증과 선거전략이 다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에 대한 것보다 질에 대한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정당이던 고정지지층 플러스 알파를 꾀하는데 우리는 플러스 알파에 대한 고민만 있었다. 전략적 지지층, 고정지지층에 대한 자기 전략은 비어 있었다. 전통적인 계급정당론을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전략적 지지층(노동자, 서민)을 획득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실천했느냐에 대해 강력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울산시장 선거뿐 아니라 구청장 선거도 다 졌다. 그리고 울산시장 후보는 사실 민주노총 조합원의 투표에 의해 선출됐었다.
=사실 그 동안 동구, 북구를 비롯해 울산을 진보정치 일번지로 만든 것은 노동조합의 힘이었다. 그 이후에도 노조에만 의존했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선거는 울산에서 민노당의 4년 활동에 대한 검증이었다. 그간 구청장이나 시의원들이 다른 당 보다는 다 잘했다. 그러나 상대적 우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중앙당이 중요한 자산인 울산에 얼마만큼 전략적으로 접근했었느냐 여부도 큰 문제다. 전략지역에 집중해서 모범을 창출하고 그것을 확장시켜야 한다. 브라질의 룰라도 그렇게 해서 집권했다. 진보정당의 본질을 객관화시킬 수 있는 모범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적 패인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정파 구도로 진행된 후보 경선이 본선에서 힘 집중에 어떤 영향을 미친것은 아닌지, 정몽구 회장 구속과 관련한 울산 시민들의 경제에 대한 위기의식도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 토론회에서 민노당이 이번 선거에서 가난한 민중을 위해 선거했다고 자부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나왔다. 그리고 지역별로 보면 당력이 집중된 게 아니라 정파의 힘이 집중된 선거 모습이 꽤 보였다. 이에 대한 답을 하자면?
=서민들로부터 유리된 진보정당의 미래는 자명한 것이다. 이번에도 당원은 없고 당관료 중심의 선거였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민노당은 간부 중심이고 당원은 동원의 대상이라는 뼈아픈 지적이 많다.
정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대중적 운동 속에서 검증의 대상이 되고 기준이 되어야 하면 되는데 운동권 내부의 정치에만 집중하는 그 모습이 문제다. 내부 정치에 주력하는 이상 또 다른 정파를 양산 시킬 수밖에 없다. 서민정당으로 면모를 일신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여전히 화이트칼라, 고학력자들의 지지도가 높다. 전략적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 서민들 그 중에서도 노조 등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사람들은 민노당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과의 장벽이 있다면 그 장벽의 실체는 무엇일까? 또한 지금 모든 정치세력이 지지기반 재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민노당의 지지층은 누구인지, 그에 걸 맞는 활동을 해왔는지를 평가하자면?
=서민대중들을 중심에 둔 정치활동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느냐는 점에서 본격적 서민정당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한나라당 득표가 바람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것도 다 근거가 있는 '바람'이다. 한나라당의 주 기동대 역할을 했던 것은 개인택시운전사들인데 한나라당은 LPG 특소세 폐지를 가지고 그들을 공략했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 정책들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그들은 목표 계층에 대한 명확한 근접성을 가지고 붙어서 조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영업자 재래시장 보호법을 냈지만 그것이 각 지역과 밀도 있게 연결됐느냐 따져보면 그렇지 못했다. 조직 전략을 가져야 원내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그런 전략이 없으면 원내는 원내대로 일상적 현장이나 대중들과 무관하게 활동하게 된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보자면, 결국은 서민 경제에 대한 비전, 신뢰, 대안이 부재하다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 개발성장에 대한 학습효과가 겹쳐 그 설득력이 확장되는 결과가 나왔다.
서민들이 느끼는 장벽이나 그 장벽을 허무는 것은 다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통칭 '민주화운동 세력'의 퇴조기라는 평가가 많다. 민노당에게는 위기요인이자 기회요인이 아닐까 싶은데?
=우리당의 참패가 왜 민노당의 이익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난 그 근거를 잘 모르겠다. 대안이 부족하고 부동층이 많았던 선거라는 총평인데 한나라당 압승, 우리당 참패, 민노당 답보의 핵심 이유는 한나라당은 그들의 지지층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그들을 결집시키는 방법이 먼지 체화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우리당은 자기 주소도 헷갈리는 정당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주소는 알지만 서민대중의 이해와 요구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당 혁신의 과제와 방향에 대한 의견은? 가장 시급하게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일까?
=제도개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8만 당원의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민주적 리더십이다. 사실 이번 선거는 민노당의 역량이 최대로 투입된 선거인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당원들이 낙담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가장 많은 당원이 실천에 참가한 사업인데 그 경험과 다양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모으느냐가 시급한 문제다. 이번 평가마저도 의원단이나 최고위원회 등 간부 중심으로 가면 위기가 전면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우리당의 소멸은 필연적 귀결…대선은 보수 대 진보 싸움될 것"
-향후 대선 국면에서 주전선의 상대방은 보수 한나라당인가 자유주의 열린우리당인가?
=형식적 민주주의는 많이 확장됐고 이제 중요한 것은 내용적, 실질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싸움이다. 한나라당도 오세훈 당선자를 다시 끌어들였듯이 살아남으려면 합리적 보수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합리적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가 전개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지금까지는 개혁적 보수, 중도를 자임해왔는데 그건 수구보수 세력을 전제로 한 곁방정치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의 주 전선은 이제 한나라당이다. 그 과정에서 보수정치의 피해자들을 새로운 정치적 비전으로 묶어내야 한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의 지형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런 질서 변화가 민노당에 미칠 여파가 있다면?
=한나라당으로 보수 세력이 확고하게 결집하는 가운데 우리당 등이 생존을 위한 이합집산을 하는 구도인데 이게 과거 정계개편 만큼 위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이제 정말 실력으로 평가 받으라는 것이 대중의 주문이다. 한나라당은 수구보수세력으로부터 나름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정계개편은 큰 위력이 없을 것이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국민들을 다 먹여 살리겠다는 국민정당론이 나올 것이다. 우리야 정계개편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국민정당론의 허구성을 공격하며 빈 공간을 공략해야만 한다.
-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의 우향우 행보에 대해 어떤 견해인가?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당은 좌향좌 할 수 있는 물적 근거가 없다. 그들 안의 상대적 좌파는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만을 강조하는 도덕적 주관주의자들이다. 그런데 그들도 경제 정책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신자유주의 속에 용해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선거를 개혁 실패로 규정하니까 중산층 이상을 겨냥한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종부세 등에 대한 불만 세력들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것이지. 결국 이런 우향우는 우리당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수구보수세력의 적자인 한나라당에 대한 곁방정치의 당연한 귀결점이다.
-임기 말에 접어든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뭐 특별하게 주문할 것은 없고 현안 문제들을 마지막까지 무리 없이 처리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단, FTA문제에 대해선 정말 숙고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멀루니 전 캐나다 총리와 살리나스 전 멕시코 대통령의 운명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원들 요구 있으면 대선후보경선 뛰어든다"
-민주노동당의 대선 준비(후보와 전략을 포함)는 얼마나 진행됐으며 어떤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보나? 민노당 대권후보가 갖춰야 할 덕목은?
=후보는 아마 지금 지목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될 것인데 내용적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후보 중심이 아니라 서민정당으로 면모를 갖추는 광범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당원들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 지금 당 바깥에서는 애정을 갖고 힘을 보태고 싶어도 결합할 방도가 별로 없다고 문제제기하는 분들도 많다. 진보진영의 전 역량을 어떻게 결집시키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지자체 선거에 대한 평가부터 대선 준비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평가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교훈을 얻느냐가 문제이고 슬로건을 넘어서는 실질적 서민경제에 대한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후보군 가시화 시기는 다른 당들도 감안해서 우리의 준비 정도와 일정을 감안해서 판단해야 할 것인데 뭐 절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저런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초 정도에 가시화 하면 어떨까 싶다.
-본인도 대선후보군으로 거명되고 있다. 후보 경선 참여 의사는 있는가?
=당 발전 전략 속에서 경선 활성화, 의원에게 부여되는 역할에 충실히 동참할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는 이제 의원 2년 한 것 가지고 대선후보 나갈 수 있나 싶지만 당의 요구가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 다 열어놓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금 거론되는 두 분에 비해 더 자유롭고 부담 없이 당 발전 전략을 제시하며 당에 활력을 줄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이른 말이긴 하지만 18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로 출마해야 할 텐데, 준비하고 있는 곳이 있나? 원내수석부대표도 그만뒀는데 이제 어디에 중점을 두려고 하나?
=솔직히 아직 없다. 이제 준비하려고 한다. 거주지나 연고 관계, 다른 당의 카운터파트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려 한다. 종부세가 광범위하게 해당하는 지역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웃음) 앞으로는 재경위 일 외에 당원들이나 당 밖과도 접촉을 늘리려고 한다. 원내수석 하면서 얻은 경험이나 재경위에서 관료들을 만나서 얻은 경험들을 돌려드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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