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락은 고전적으로 이렇게 설명한다. 원천에서 솟아나온 물은 아무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로를 따라 흐른다. 이처럼 경락이란 대지를 달리는 수로와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물이 수로를 따라 바다로 흘러가듯이 사람이 흡입한 기운도 일정한 방향으로 인체 내로 흘러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경락이다.
또 많은 침구 경락 교과서는 경락을 이렇게 정의된다. 인체는 외적 요인인 기후 변화, 질병 요소와 내적 요인인 감정 변화를 수용하여 끊임없이 유기체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항상성 유지를 현대 의학적으로 해석하면 자율신경, 면역, 호르몬의 트라이앵글이다. 이것이 서로 영향을 줘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락은 바로 이런 항상성 유지에 관여한다.
동양 의학에서 인체는 본래 우주로 자연 그 자체다. 경락도 마찬가지다. 경락은 12개로 수태음 폐경에서 출발하여 번호순으로 진행하여 족궐음간경으로 끝나는 폐쇄적 고리를 이룬다. 여기서 '12'는 것은 12월(月)을 이야기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임독맥이다. 임맥은 음적인 에너지를 맡는다는 뜻이고 독맥은 양적인 에너지를 감독한다는 뜻이다. 척추를 축선으로 하는 앞 뒷면으로 임독맥이 존재한다.
척추를 따라 독맥에는 28개의 혈이 존재하고, 배를 따라 임맥에는 24개의 혈이 존재한다. 독맥의 28혈은 태양이 지나간 황도 주변에 있는 별자리 묶음 28개를 말한다. 이런 별들을 동양에서는 일월성신 중 성신이라 한다. 독맥은 성신이며 자율신경계의 작용과 닮았다. 하늘의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달리 성신은 낮밤 가리지 않고 고요히 우주선을 뿌린다. 해달이 뇌라면 성신은 자율신경계와 같이 작용한다.
성은 빛나는 별로써 양적이며 교감신경을 주도한다. 신은 빛을 내지 않는 별로써 음적이며 부교감신경의 작용을 주도한다. 자율신경계는 확실히 음양의 원리와 닮아있다. 낮의 활동 시간에는 교감신경이 우위에 작용하고 신경 작용도 활발해진다. 한편 야간에는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서며 수면이나 휴양을 취한다.
1년 단위로도 여름과 겨울에 따라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주도적 역할이 달라지면서 작용한다. 청장년기에는 교감신경이 노년기에는 부교감신경이 우위에 서서 작용한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은 추위와 더위, 스트레스나 병 등 여러 가지 자극에 영향을 받으면서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임맥은 24개의 혈자리를 가지고 있다. 24절기의 기후 변화와 합치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이다. 하늘과 땅이 만든 큰 공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24절기는 하늘과 땅이 만든 큰 공간이 빚어내는 변화라고 도가에서는 규정한다. 임맥도 인체 내부의 가장 큰 구멍인 입으로부터 항문까지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음식물이 음(陰)적인 에너지의 원천이다.
실제로 임맥은 속이 텅 비어 있는 통로로 이 통로에 음식물이 들어가면 마치 불타는 것처럼 에너지로 모두 다 분리되다. 음식물에서 생긴 열량은 인체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호르몬은 샘이다. 물처럼 흐른다는 것은 음적인 에너지다. 뇌를 비롯하여 부신, 소화관, 췌장, 갑상선, 성기등 내분비선이라고 불리는 7개 장기에서 주로 분비된다. 뇌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호르몬의 분비 부위와 일치하거나 근접하여 있다. 임맥은 호르몬같은 음적인 에너지를 총괄하여 인간의 평생에 걸쳐 생명의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작용하는 것이다.
경락은 기가 흐르는 공간이다. 기에는 영위의 기가 있다. 영기는 맥 내를 흐르고 위기는 맥 외를 흐른다. 위기의 의미는 호위, 지킴 등의 뜻이다. 바로 면역 기능을 수행한다는 뜻이다.마왕퇴 한묘에서 출토된 <행기옥(行氣玉)>에는 호흡에 의한 기의 이미지가 운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움직이는 기는 빨아들여지고
빨아들여질 때 기는 양육된다.
양육되면서 기는 방출된다.
방출되면서 기는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기는 안착한다.
안착하면서 기는 응고한다.
응고하면서 기는 싹을 틔운다.
싹을 틔우면서 기는 돌아간다.
돌아갈 때 기는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은 그 뿌리가 위에 있고
땅은 그 뿌리가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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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락은 인체 전역에 연장 확대되어 있다. 12개의 장부를 토대로 하여 몸 안에 확충 편재되어 내부와 외부, 위와 아래, 좌우를 각각 지배하면서 기능이 발현되어진다.
이런 에너지 통로의 확충편재는 바둑판과 같은 원리로 이루어진다. 바둑판이 19X19로 361개의 점이 있듯이 우리 몸의 혈 자리도 361개의 정혈로 구성되어 있다. 바둑판이 흰 돌과 검은 돌의 천변만화의 변화를 일으키듯 인체의 음양이라는 원리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조화된 질서를 만들어 간다.
조화된 질서는 음양의 바탕에서 이루어지며 침과 뜸, 안마와 약물 모두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것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병의 원인을 파악했을 때 가능하다. 한나라 소제 때 환관(桓寬)은 이렇게 말했다.
"편작이 환자의 호흡과 맥을 살펴서 병의 원인을 알아냈다. 양기가 성하면 덜어내서 음기를 고르고, 한기가 성하면 덜어내서 양기를 고른다. 이리하여 기와 맥이 조화되어 사기가 머무를 수 없게 된다. 무릇 졸렬한 의사는 맥상과 혈기의 분야는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침뜸을 놓아 질병 치료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않고 피부를 손상시킬 따름이다."
바둑판을 이리저리 돌려도 사방이 똑같지만 한 개의 점을 취하면 전후좌우가 생긴다. 침도 하나의 경혈을 선택하면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상하와 좌우 전후 등 입체적인 대응점이 생긴다. 어느 혈을 찌르면 어떤 질병이 낫는다는 식의 대응 방식은 환상이다.
보사법은 혈이라는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혈은 구멍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만지면 달아오르면서 내부가 블랙홀처럼 구멍을 만든다는 뜻이다. 전유법이라고 하는데 미리 혈 자리를 만져 물이 고이듯 충분히 기가 모이게 만들어야 한다. 음과 양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역동적인 운동방식이다. 음은 내부를 향하면서 수축하고, 양은 외부를 향하면서 팽창한다. 끊임없이 원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는 질서가 있다. 아침에 해가 떠오르면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되면서 내일에는 다시 해가 떠오른다. 음양은 이런 우주적 질서의 믿음을 바탕으로 언덕위에서 비치는 햇살의 양에 따라 해가 비추는 부위를 양, 그늘진 부위를 음이라 규정한 단순하고 소박한 질서를 추상한 진리이다. 이 질서를 바탕으로 확대된 경락을 신비라 부르는 것도 미신과 과거의 유산으로 규정하는 것도 모두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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