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조사단은 이어서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천안함 절단면과 어뢰의 프로펠러에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발견된 것은 어뢰 폭발의 증거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합동조사단은 지난 11일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도 미량이 발견되었다"고 자신의 말을 뒤집었으나, 비결정질 산화물을 어뢰 폭발의 증거로 본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어뢰 폭발의 증거"라는 합동조사단의 주장은 과학적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합동조사단의 주장에 선뜻 수긍할 만한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 한 과학자는 "저런 식으로 논문을 썼다가는 퇴짜를 맞기 십상"이라며 혀를 찼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알루미늄 부식의 진실은 이렇다
최근 누리꾼 사이에는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바르젤(Christian Vargel) 박사가 1999년 쓴 <알루미늄의 부식(The Corrosion of Aluminum)>이라는 책이 화제다. 바르젤 박사는 유럽의 손꼽히는 알루미늄 권위자다. 교재로 유명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초국적 출판사 엘제비어(Elsevier)는 2004년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 펴냈다.
누리꾼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이 알루미늄의 부식(산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섭씨 50~60도 이하의 저온에서 알루미늄이 부식되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Amorphous alumina)'이 나오고, 섭씨 35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corundum)'이 나온다(105쪽).
▲ Christian Vargel(2004[1999]), The Corrosion of Aluminum, Elsevier. ⓒElsevier |
한 과학자는 "알루미늄이 저온에서는 비결정질로 산화되고, 고온에서는 결정질로 산화되는 사실은 과학 상식 수준의 내용"이라고 이 사실을 뒷받침했다. 그는 "고온에서는 알루미늄과 산소 원자의 이동에 충분한 에너지가 공급되기 때문에 규칙적인 배열이 형성되는 결정질이 나타나고, 저온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비결정질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을 종합하면, 합동조사단의 발표는 한마디로 난센스다. 합동조사단이 "어뢰 폭발의 증거"라고 목소리 높였던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알루미늄이 부식하기 좋은 조건, 예를 들면 물속이라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더욱더 생기기 쉽다.
즉,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절단면과 어뢰의 프로펠러에서 발견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을 어뢰 폭발의 증거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합동조사단의 '결정적 증거'는 조작?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합동조사단이 토를 달았기 때문이다. 합동조사단은 폭발로 고온 상태의 알루미늄이 "물속에서 급격히 냉각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알루미늄과 산소 원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할 만큼의 에너지는 폭발을 통해 충분히 공급되었지만, 급격히 냉각되는 바람에 미처 결정질을 형성하지 못해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만 남았다는 것.
<프레시안>을 통해서 최초 소개된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물리학과)의 실험은 바로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했다. (☞관련 기사 : "천안함 합조단의 '결정적 증거'는 조작됐다")
이승헌 교수는 "실험실에서 알루미늄의 용융점보다 훨씬 높은 온도로 알루미늄을 가열한 후 이를 급랭시켜서 나온 결과물을 확인했다"며 "합동조사단의 주장이 맞는다면 어뢰 폭발보다 더 확실히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생성되어야 했지만, 실험 후에는 부분적으로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수중에서의 어뢰 폭발과 비슷한 상태에서 알루미늄을 부식시켰더니 합동조사단의 주장과는 달리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는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①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어뢰 폭발의 증거"가 될 수 없다. ② 오히려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은 '어뢰 폭발 같은 것은 없었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증거다.
합동조사단 비웃는 '결정적 논문'
물론 이승헌 교수의 실험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교수의 실험이 과연 어뢰 폭발의 상황을 똑같이 재연했는가? 다시 말하면, 수중에서 어뢰가 폭발하고 나서 '빠른 시간에 냉각되는 속도'를 이 교수가 실험실에서 그대로 재연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교수의 실험을 통한 반박에도 합동조사단이 꿈쩍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이 교수의 반박을 지지하는 또 다른 논문이 있다. 미국물리학연구소(American Institute of Physics)에서 발행하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학술 잡지 <피직스 오브 플루이드(Physics of Fluids)>에 1994년 실린 논문 한 편(Ignition of aluminum droplets behind shock waves in water)이 그것이다.
이 논문은 고온의 알루미늄이 물과 닿으면 격렬하게 수증기가 발생해 폭발하는 현상(steam explosion)을 다룬다. 수중에서 어뢰가 폭발해 버블제트(물기둥)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논문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이렇게 폭발이 일어나고 나서 남은 물질을 분석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논문은 합동조사단과 똑같은 방법으로 즉, X선 회절기로 폭발 후 생성 물질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폭발 후에는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α alumina)'과 'γ 결정의 흔적이 나타나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amorphous γ alumina)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합동조사단의 주장과 다르게 폭발 후에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과 특정한 결정의 흔적을 식별할 수 있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함께 나타난 것이다.
이 논문에는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과 γ 결정의 흔적이 나타나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의 비율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언급한 서술을 보았을 때, 둘의 양이 모두 다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3514쪽의 "X-ray diffraction analysis revealed the powder to consist of α alumina and the amorphous γ alumina"). 더구나 이 서술은 합동조사단이 애초 "X선 회절기로 '(결정의 흔적을) 식별할 수 없는'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만 나타났다"고 주장한 것과 또렷하게 대비된다.
▲ "Ignition of aluminum droplets behind shock waves in water", Physics of Fluids(Vol. 6, No. 11, November 1994). ⓒAIP |
한 과학자는 이 논문을 놓고 "이 실험에서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나타난 것은 알루미늄 원자와 산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해 결정질을 형성하는 시간이 급랭 시간보다 더 빠르다는 결정적 증거"라며 "이 증거는 '고온 용융된 알루미늄이 급속 냉각되었을 때 결정질이 나온다'는 이승헌 교수의 실험을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하면, 합동조사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의 존재는 백번 양보하더라도 결코 "어뢰 폭발의 증거"가 될 수 없다.
합동조사단, 진실을 밝혀라
더구나 합동조사단은 최근에 말을 바꿔서 미량이나마 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도 나왔다고 밝혔다. 자신의 입으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폭발의 증거라는 기존의 주장과 모순되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결국, 합동조사단이 어뢰 폭발의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했던 내용은 여러 가지 과학 실험과 정황 증거를 통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제 천안함 합동조사단이 어뢰 폭발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려면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 아닌 다른 '결정적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만약 또 다른 증거를 내놓지 않는다면, 누구도 합동조사단의 설명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이승헌 교수의 말이 진실인가? 정말로 애초에 어뢰 폭발 같은 것은 없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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