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인디포럼에서 처음 공개된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 현실인식과 시대참여>는 작년 전주영화제와 인디포럼 등에서 상영됐던 전작 <자가당착>의 속편이다. 전작이 30분 남짓의 단편에 쌍둥이 형인 김곡 감독과 공동으로 작업했다면, 이번 영화는 80분을 아우르는 장편인 데다 김선 감독이 독자적으로 작업했다. 인디포럼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불과 며칠 전, 김선 감독이 전화를 걸어 "퍼포먼스 에필로그 장면을 찍는데 동행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쥐돌이가 4대강 공사현장에 간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서울의 청계천과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노제가 진행되고 있던 덕수궁 대한문 앞, 그리고 경기도 여주에서 진행된 <자가당착 2> 촬영현장에 주말 이틀간 프레시안이 《씨네21》과 함께 동행한 기록을 공개한다. - 편집자 주청계천, 덕수궁 대한문 앞, 서울광장, 그리고 경기도 여주의 강천보 공사현장에 갑자기 쥐돌이가 나타났다. 핏물이 빠진 분홍색 바지 정장에 역시 핏물을 빼 얼룩덜룩한 어깨띠를 메고, 홍삼 상자를 들고 있다. 어깨띠에 쓰인 문구는 "한나라당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홍삼 상자의 한 구석에는 쥐돌이가 갉아댄 흔적이 역력하다. 대체 이 녀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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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돌이가 청계천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이날 쥐돌이의 등장으로 주말 청계천을 찾은 가족 및 연인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을 받았다. 일부 어린아이들은 와서 쥐돌이의 손을 잡기도 했고, 다리 위를 건너가던 한 행인은 "이명박이다! 이명박 잡아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프레시안 |
비타협 영화집단 곡사에서 활동하는 김선 감독의 신작 장편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 2>')는 쌍둥이 영화감독 김곡, 김선 감독이 함께 작업했던 전작 <자가당착>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전작에서 집안에 틀어박혀 옷을 만드는 여자 마네킹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번 편에서는 포돌이가 등장한다. 일종의 퍼핏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아방가르드 실험영화이며, 실사 연출 장면과 다큐멘터리 화면을 제멋대로 섞으며 직설법으로 정치와 사회를 이야기했던 전작의 분위기와 그리 다르지 않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포돌이뿐 아니라, 태어나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쥐돌이'가 등장한다. 자신이 쥐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는 골방에 틀어박혀 아버지에게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낸다. 물론 쥐돌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디포럼에서 6월 1일 첫 선을 보인 이 영화는, 김선 감독이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처럼, 퍼포먼스를 벌이고 이를 담아낸 에필로그 장면'을 덧붙이기로 결심하면서 영화제 개막 직전에 급박하게 보충촬영이 이루어졌다. 영화의 본편에서는 퍼핏으로만 등장했던 쥐돌이가 가면을 쓴 배우의 연기로 재현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그리움의 이메일만 쓰던 쥐돌이는 이 에필로그에서 급기야 방문을 열고 나와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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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가당착2> 팀. 쥐돌이 옆이 김선 감독. <고갈>로 주목을 받은 여배우 장리우(왼쪽)가 이 날 스탭으로 결합해 촬영을 도왔으며, <씨네21> 영상팀 박사랑 기자가 제2촬영기사로 긴급 투입됐다.ⓒ프레시안 |
정치적 의미가 너무도 명백한 서울 곳곳과 4대강 공사현장에, 노골적인 정치성과 의미를 드러내는 배우의 분장인 만큼 쥐돌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주말을 맞아 청계천에 놀러나온 가족과 연인들,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노제에 분향하기 위해 대한문 앞을 방문한 이들, 그리고 낯선 이들의 '침입'에 노발대발 할 수밖에 없는 4대강 공사장 인부들의 반응들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적극적이고도 자발적으로 촬영협조와 영화 출연까지 해주면서 배우의 안전까지 걱정해주는 어르신들 덕에 손쉽게 촬영이 끝난 현장이 있는가 하면, '무단 기습촬영'을 감행한 영화팀과 신경전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선거법 위반'이라며 선관위에 신고해 경찰과 선관위 관계자가 '출동'한 현장도 있다. 그러나 촬영현장에서의 즉흥성을 통해 영화에 생동감과 에너지를 부여하고, 필요하다면 동행한 취재진에게 보조출연에 제작부의 일도 서슴지 않고 시키는 김선 감독은 이런 일들에는 이골이 난 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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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검다리를 건너다 넘어진 쥐돌이가 이참에 개천가에 앉아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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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은 쥐돌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빠'의 흔적이 물씬 배어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춤을 추며 기쁨을 드러내고 있는 쥐돌이.ⓒ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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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쥐돌이는 (무슨 생각에선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리고 있던 덕수궁 대한문에 찾아가 분향을 했다.ⓒ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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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곧 사람들에게 끌려나오고... 실제로는 촬영장에 동행한 이들이 쥐돌이를 끌어내 내동댕이쳤으나, 아무도 쥐돌이를 '때리는' 연기에 참여하지 않아 NG가 났다.ⓒ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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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경기도 여주 강천보 공사현장. 온통 파헤쳐진 강과 땅이 흉물스럽다.ⓒ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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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찾겠다며 4대강 공사현장을 찾아간 쥐돌이.ⓒ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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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공사장 인부들에게 곧 끌려나오고 만다. ⓒ프레시안 |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는 인디포럼에서 두 차례 상영된 뒤, 아직 차후 개봉 일정이나 상영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은 상태다. 그러나 독립영화계에서 나름의 팬과 기반을 다진 김선 감독의 영화인 만큼, 조만간 다른 영화제 등을 통해 선을 보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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