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은 지방선거에 이목을 끌만한 소재를 만들어냈다. 당초 예상을 깨고 유시민 후보가 0.96% 차이의 역전승을 거둠으로써 단일화 승부는 흥행 코스에 올랐다. 한명숙 후보의 지지율이 주춤한 사이 경기도 선거판에서 벌어진 이변이 정체 국면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실 김문수-김진표 대결은 밋밋해 보였다. 승패도 얼추 짐작이 갔다. 조직력 싸움의 선거란 큰 이변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시민 후보의 단일후보 확정은 그런 점에서 판을 흔들 만한 기대 요인을 갖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가 그런 조짐을 뒷받침한다. 한국리서치의 양자 가상 대결 조사에서 김문수, 유시민 후보는 각각 44.7%, 39.1%를 얻었다. 동서리서치 조사에서도 김문수 45.9%, 유시민 39.74%로 집계됐다. 김문수 지사의 높은 벽 앞에 야당의 패배감이 만연해 있던 경기도지사 선거가 요동칠 수 있는 범위다.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김문수, 유시민 후보는 정치 스타일이 비슷하다. 둘 다 말에 가시가 잔뜩 돋힌 전형적인 '싸움닭'이다. 그래서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게다가 김문수 후보는 '리틀 MB'로, 유시민 후보는 '노무현의 경호실장'으로 불린다. 과거 정권과 현 정권을 상징하는 가장 모난 돌기가 맞부딪치며 내는 충돌음이 선거에 긴장감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한나라당과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히는 두 사람이기에, 이번 선거에서 지는 쪽은 상당기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쟁쟁한 두 정치인의 정치 생명이 걸린 외나무다리 승부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의 백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유시민 후보 |
특히 서울시장 선거와 함께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인 경기도지사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못 낸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민주당은 연합군의 대주주일지언정, 전통적으로 정권 심판론을 매개했던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은 잃었다는 뜻이다. 민주당의 빈자리를 '노무현'이 대체한 셈이다.
反노무현 vs 反이명박
경기도지사 선거는 모든 대형 이슈가 펄떡이는 현장이다. 무상급식 파장의 진앙인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재선에 도전하고, 유시민 후보를 비롯한 야권의 모든 후보가 무상급식 정책협약에 사인했다. 반면 김문수 후보는 "무상급식이 좋은 취지이지만 정말 급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에 섰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도 수도권 중심론(김문수)과 지방 발전론(유시민)이 부딪히고 있고,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입장은 접점이 전혀 없다. 특히 지방선거의 '블랙홀'인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첨예한 공방이 예상된다. 김문수 지사는 13일 오전 10시에 열린 천안함 순직자 49재 참석을 위해 지방선거 후보 등록도 대리로 했다. 반면 유시민 후보는 "천안함을 폭발에 의한 침몰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다.
탐색전을 건너뛴 난타전이 예상되는 대목들이다. 다만 김문수 지사는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 등 여론이 불리한 이슈는 정면대응을 피해가는 대신, 반(反)노무현 전선에서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 후보의 단일후보 확정 뒤 선대위를 통해 낸 일성이 "실패한 친노 세력의 위장개업 쇼"였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역사의 물줄기를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에 맞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했다.
유시민 후보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를 전후로 노풍(盧風)이 재점화 되면 추모 열기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이끌어낼 복안이다. 아울러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등의 쟁점화를 통해 '반(反)이명박' 전선을 공격적으로 제시, 정권 심판론을 최대화 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를 20일 남긴 13일, 유시민 후보는 김진표 후보에 대한 역전승 발판으로 단박에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이날 김문수 지사는 '더 낮은 곳으로 더 뜨겁게'를 슬로건으로 걸고 나선 24박25일 간의 경기도순례 엿새째를 맞았다. 유시민의 고공전과 김문수의 저인망식 지상전의 화력 대결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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