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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큰 코 다친다~"

[핫피플] <뭘 또 그렇게까지> 전계수 감독 인터뷰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뭘 또 그렇게까지>가 여러모로 화제가 됐던 건 단지 제목 때문만은 아니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남녀의 밀고당기기라는 설정과 제목에서 곧바로 홍상수 감독(특히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막 개봉한 뒤의 시점이었다)과 함께 언급됐고, 제작비가 1억원도 안 됐다는 점에서, 거기에 (제작비 절감 효과를 위해) 일반적인 HD카메라가 아니라 DSLR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 영화 전체를 찍었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무척 재미있다. 허를 찌르는 캐릭터들의 밀고당기기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사건들로 치달아간다. 하지만 정작 전계수 감독은 이 작품이 너무 아쉬워서, "내 자식은 맞긴 한데... 못난 자식"이라고 자책한다. 매번 무슨 작품이든 자신은 아쉬움이 크고, 결국 모든 것에 자신을 책하게 된다는 이 진지한 감독에게 <뭘 또 그렇게까지>의 세 인물이 동시에 겹쳐 보였다.

▲ 전계수 감독
-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고 이제야 개봉을 하게 됐다.

애초부터 극장개봉을 전제하고 만든 영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개봉을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비록 1개관이긴 하지만. 영화 만들 때 배우들에게는 "어떻게든 개봉시키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애쓴 결과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아니게 됐다. 부산영화제의 초청을 받았던 것도 뜻밖이었다.

-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이다. 이 배우들을 선택한 이유는.

제작비가 적었던 만큼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선택은 아니었다. 촬영 일 주일 전까지 캐스팅이 안 돼 조감독들한테서 세 명을 모두 소개받았다. 어떤 배우는 촬영 하루 전날에야 캐스팅되기도 했던 만큼 배우들이 캐릭터를 연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다들 순발력있게 잘한 편이다. 누구나 시나리오를 쓰면서 캐릭터의 얼굴을 그리기 마련인데, 이 배우들이 그런 몽타주에 가장 부합했다. 여배우(주민하)는 예뻐서 뽑은 거고, 민호 역의 조용준은 딱 과도하게 진지한 남자애 캐릭터로 얼굴이 잘 맞았다. 실제로는 굉장히 활달한 친구인데.

이번에는 워낙 너무 정신없이 찍었고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딱 일 주일 찍었는데, 월요일 첫 촬영 때 다들 헤맸다. 결국 첫 날 촬영이 끝나고 배우들을 모두 내 숙소로 불러모아 맥주를 한 잔씩 했다. 이런 캐릭터라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거다,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또 어떨 것이다, 같은 얘기들을 나누면서 그때야 비로소 캐릭터에 대한 충실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는 확실히 좋아졌다. 사실 그런 작업은 촬영 전에 선행됐어야 했는데, 시간이 워낙 없었다. 첫 날 촬영한 부분도 다시 찍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 한국의 다섯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영화, 한국을 만나다' 기획에 가장 나중에 합류해서 가장 먼저 영화를 완성했다. 이런 속도로 단편도 아니고 장편영화를 찍는 게 과연 가능하던가.

나도 놀랐다. 난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많이 느린 편이다. 시간도 많이 끌고 테이크도 여러 번 간다. 그런데 주어진 한계가 보이니까, 포기할 건 포기하고 힘주지 말고 가볍게 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일주일만에 장편도 나왔다. 나처럼 느려터진 사람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하기는 하는구나 싶더라.

처음엔 다큐멘터리를 염두에 두다가 맞지 않을 것 같아 결국 극영화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뒤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오래 했다. 그러다 시나리오는 정작 일주일만에 썼는데, 캐스팅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일주일을 통째로 이 영화에만 시간을 내줄 수 있는 배우가 별로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동안 찍었고, 후반작업에 시간을 좀 들였다.

원래 예정은 1부 50분작이었는데, 중간에 제작사 대표한테서 전화가 와서 장편으로 늘려찍으라고 하더라. 사실 나도 50분보다는 길게 찍으려던 작정이어서, 결과적으로 일부러 늘려찍은 것도 없고 버리는 씬도 없이 가까스로 80분 장편이 나왔다. 사실 내 영화는 다른 편의 제작비의 반밖에 안 됐다. 50분에 해당하는 예산이었지.

- 아쉽고 속상한 게 많았겠다. 예산 때문에 찍지 못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100분짜리였다면 좀 더 탄력있는 이야기로 여유롭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조명을 사용한 것도 일주일 전체 촬영 중 3일뿐이었다. 이동차를 부를 수 없어서 그 흔한 트랙숏이나 크레인숏 하나 없고, 대부분의 장면이 픽스(카메라 고정) 아니면 촬영감독이 들고찍은 숏들뿐이다. 아무래도 예술제 부분이 많이 아쉽다. 원래 1회차 분량으로 촬영일정을 잡았다가 이틀간 찍게 됐는데, 예술제 장면을 더 풍요롭게 묘사하는 것 외에도 예술제 와중 주인공들 사이의 날카로운 긴장관계를 더 보여주고 싶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찬우는 예술제에서 계속 술을 마시면서 점점 흥청망청해지고, 민호는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그 사이에 유정은 마치 꿈 속의 여인처럼 존재하고. 예술제가 벌어지는 공간 곳곳에 세 주인공의 시점숏들을 넣고 싶었다. 민호의 눈에 보이는 찬우와 유정의 아니꼬운 행태라던가, 자기를 스토커처럼 지켜보는 민호를 바라보는 유정의 시점이라던가. 그걸 못 찍은 게 가장 아쉽다.

- 영화가 처음부터 주로 찬우의 시선으로 진행되지 않나? 그래서 유정이는 계속 미스터리한 여인으로 남아있고, 정체도 모호하고. 그런데 예술제에서 인물 간 시선이 엇갈린다면 영화가 좀 혼란스러워질 것도 같은데.

세 사람의 관계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 유정이 미스터리한 인물인지 아닌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갖고있는 입장들만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시선이 다 사실은 아니지 않나. 민호는 찬우를 '권위적이고 얄팍하게 여자나 홀리려 드는' 인물로 보지만, 찬우를 그런 점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이란 게 얼마나 부분적인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그런 왜곡된 입장이 그 사람의 실체와 만났을 때 어떤 우스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런 것들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유정이 정말로 춘천에 오는 예술가들과 다 자고 밤마다 백팔배를 하는지 아닌지,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얘기를 통해 유정에 대해 갖고 있는 민호의 생각이 중요한 거다.

▲ 뭘 또 그렇게까지

- 사실 민호의 이야기는 워낙 괴이쩍어서 민호가 유정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근데 내가 실제로 밤에 백팔배를 한다. 주로 시나리오가 안 풀릴 때. 세 사람 안에는 다 내 모습이 있다.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풀기에는 아무래도 내 얘기가 쉬우니까. 유정의 가장 큰 고민도 자기한테 재능이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인데, 그건 지금도 나한테 굉장히 고민스러운 것이다. 찬우를 두고도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내 모습 같다는 말을 한다. 사실 여러 모로 비슷하다. 슬럼프에 빠져있고, 무엇에든 다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고. 게다가 여행가서 아리따운 여자를 만난다는 꿈은 모든 남자들의 이뤄지지 않는 판타지다. 여행가서 그럴 수 있는 확률이 사고를 당할 확률보다도 더 낮은데도 말이다. 20대인 민호도 내 20대 때와 많이 닮아 있다. 나도 그림을 좋아해서 학교 다닐 때 미술관을 많이 다녔고, 그러다 영화로 진로를 바꿨다. 과도하게 진지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20대의 민호가 30대가 되면 찬우가 될 것 같아서 그 둘을 서로 자신의 미래, 과거로 대면시켰을 때 그게 얼마나 짜증나고 불쾌할지 막걸리 씬에서 보여주려 했다. 자기 앞에 10년 전 거울, 10년 후 미래의 거울이 있을 때의 불쾌함 말이다. 민호가 유난히 불쾌해하는 것도 자기가 그렇게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부산영화제 때 한 관객이 정확히 지적하더라.

- 글쎄, 그렇게 불쾌하고 짜증스럽기만 할까. 그냥 "내가 정말 저렇게 될까"하고 피식 웃거나, 오히려 "저때보다 지금 내가 더 나아지긴 했네" 싶기도 할 텐데.

찬우가 민호를 볼 때엔 부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겠지. 나도 옛날에 그랬는데,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찬우가 민호를 보는 시점이 처음에 조금 더 부드러웠던 거다. 그런데 20대 때는 그런 객관적인 거리를 갖기 쉽지 않다. 20대한테 그런 걸 요구할 순 없지. 내 미래가 저럴 거라면 끔찍하지 않겠나.

- 속물적인 욕망이나 (성공한 모습에 대한) 동경도 있지 않을까. 찬우는 나름 성공한 화가니까.

근데 그 성공의 속 알맹이란 게 별로 긍정적이지 않아 보이는걸. 그 나이쯤 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자기 예술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 있길 바랄 텐데, 그런 건 없고 보기엔 허울뿐이고, 예술을 통해 딴짓이나 하려들고 말이지. 그런 게 더 한심해 보이는 거다. 자기도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 지나치게 스스로에게 엄격한 것 아닌가.

그때는 다 그렇다. 20대 때는 다 도덕에 대한 강박이 있다. 그런데 10년 후의 자신에 대한 불쾌감이란 것도, 그 내용은 또 연민이기도 하다. 그냥 불쾌하기만 하다면 그 자리를 그냥 떠버리지, 굳이 불러다가 더러운 걸 먹일 리는 없지 않나. 연민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다. 동경이라 할 순 없고, 연민이 가장 맞는 표현인 것같다.

남들은 좋다지만 내 눈엔 여전히 아쉬운

- 당신도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슬럼프인가.

나야 뭐 계속 슬럼프인데. 내가 만들어내는 상황이나 인물, 주제가 다 부질없게 느껴지곤 한다. 영화란 게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필요한 비싼 예술인데, 그러러면 진짜 의미있는 걸 만들어야 할 텐데, 내가 만드는 게 다 부질없고 의미없고 깨작거리는 거 같고... 이건 소중한 남들의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나의 노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기도 하다.지금도 쓰고있는 시나리오가 몇 달째 답보상태인데, 이유가 다 부질없게 느껴져서다. 영화를 계속 찍고 승부를 걸 만한 좋은 프로젝트도 맡는 시간이 촘촘히 이어진다면 그런 생각을 못할 거 같은데... 그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으니까 계속 스스로를 학대하게 된다. 모두 내 못난 탓만 같고.

- 열악한 조건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영화를 만들고도 그런가?

개운치가 않더라. 한참 작업하던 때에는 그나마 그런 자학의 시간은 없었는데, 작품의 성취와는 상관없이 끝나고 나니 다시 이어졌다. 아니 상관없다곤 할 수도 없다. 워낙 부족한 여건에서 하다보니 그 다음부턴 속상한 것도 더해졌다. 다른 관객이나 언론에서 평가하는 것과 내가 내 작품을 평가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좋은 칭찬을 받으면 위안이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지워지지 않는다.

- <삼거리 극장> 때도 그리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만든 거다" 얘기할 수 있다. 근데 <뭘 또 그렇게까지>는... 역시 내가 만든 거긴 하지만, 마치 못난 자식을 낳은 느낌이랄까.

- 그렇게 안타까운 부분이란 건 결국 예산이 더 있었다면 해결될 문제였을까? 아니면 좀더 근원적인 문제인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뭐가 해결되면 이런 생각을 안 가지게 될까. 사실 처음부터 탐탁스런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러브 픽션>이 잘 안 되면서 실의에 빠졌을 때 제안이 온 거라 처음엔 거절했다. <러브 픽션>이 안 되고 나니 도저히 다른 걸 만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계속 실의에 빠져있다가는 더 나빠지겠다, 영화로 맺힌 한은 영화로 풀어야지,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마침 춘천 편이 계속 감독을 못 구하고 떠돌다가 다시 제안이 왔다. 그래서 하겠다고 답했고, 이 프로젝트에 가장 늦게 합류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마 계속 안타까움이 남는 건 처음 시작부터 내가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내가 복서고 동양 챔피언 타이틀급 매치를 앞둔 도전자라고 해보자. 그 시합을 위해 스파링도 훈련도 열심히 하면서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매치가 무산이 된 거다. 그리고는 별로 고려해본 적이 없는 작은 시합에 돈을 벌기 위해 나가게 된 거지. 작은 시합은 작은 시합대로 거기에 맞는 훈련과 준비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동양급 매치가 무산됐다가 술 먹다가 나와서 링에 나선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맞는 준비를 충실히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다.

시나리오 쓰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워

- 너무 자학만 하는 것 아닌가. 창작자들한테는 자신감도 굉장한 자산이자 원동력 아닌가.

최동훈 감독과 얘길 하다가 놀랐던 적이 있다. 최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는 게 너무 재밌다고 하더라. 난 너무너무 고통스러운데. 저렇게 자기 일을 즐기니까 이런 차이가 만들어지는구나 싶기도 하고. 일을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한다고 하지 않나. 물론 나도 현장에선 너무 즐거운데, 시나리오 쓰는 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세상에서 제일 싫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시나리오 쓰는 것만 빼면 완벽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돈을 못 버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촬영현장에 나가는 즐거움을 즐기기 위해 이런 고통이 함께 있구나 싶을 정도다.

▲ 뭘 또 그렇게까지

-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로 흔쾌히 영화를 만드는 타입도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문제지. 그러면 좀 더 편하게 살 거 같은데... 몇 번 해보려고 시도는 해봤는데, 시나리오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내 입맛에 안 맞으면 못 하겠더라. 제대로 된 큰 상업영화를 연출할 기회가 몇 번 왔었는데 다 거절했다. 주변에선 다들 바보라고 하고 나도 지금은 좀 후회된다. 이걸 바꾸려고 노력은 할 텐데, 앞으로도 비슷한 패턴이 계속 반복될 것 같기도 하고. 맘에 드는 시나리오를 써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온몸을 다 바칠 수 있을 것 같다. 불가능한 걸 바라고 있는 거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그걸 그대로 매끈한 글로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어댑테이션>을 찰리 카우프만이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 음악에 대한 감각이나 안목이 탁월하다. <삼거리 극장>도 뮤지컬 영화였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엔 재즈밴드인 라벤타나가 멋진 곡을 들려준다. 촬영현장에서도 보컬인 정란 씨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마자 모두 빠져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보컬 분이 천재다. 그 노래를 그 자리에서 만들었으니까. 대학로에 있는 천년동안도에서 라벤타나의 공연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다. 아마 그때가 밴드가 막 만들어진 때였고, 듣기로는 그 공연이 거의 첫 공연이었다고 한다. 그 밴드가 공연을 끝내고 구석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데, 원래 그런 용기가 없는데도 밴드 멤버들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데 음악이 너무 좋다, 친해지고 싶다" 이렇게. 그렇게 밴드 창단 때부터 인연이 돼서 지금도 보름에 한 번씩은 같이 술을 마신다. 그 분들과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도 있고.

- 어떤 다큐멘터리인가?

탱고가 원래 아르헨티나 음악이지 않나. '라벤타나'라는 이름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유명한 탱고카페 이름이다. 한국의 젊은 탱고 뮤지션들이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에 가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말하자면 '라벤타나 인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되는 것이지. 무지하게 어려울 거다. 제작비 조달도 그렇지만, 다큐멘터리는 원래 극영화보다 어려운 것 같다. 극영화야 플롯이 주는 긴장감만 갖고도 볼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기획의도나 컨셉이 명확해야 하는데 그걸 잡기가 쉽지 않다. 그냥 밴드들 데려다 좌충우돌하는 모습만 보여줘서는 재미가 없을 것 같고.

- <뭘 또 그렇게까지>도 처음 구상할 때에는 다큐멘터리로 고려했다더니.

라벤타나를 춘천에 데려다 놓고, 연주를 할 수 없는 공간에서 연주를 하게 해보면 어떨까 했었다. 이를테면 논 한가운데나 호수 한가운데에서 배를 타고 연주를 하게 한달지. 그런 낯선 모습이 드러내는 효과를 보여주면 어떨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럼 장편을 만들기엔 무리겠다 싶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데?"라고 남들이 물었을 때 대답을 못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냥 하던 거 하자, 하면서 극영화를 만들어 <뭘 또 그렇게까지>가 된 거다.

- 데뷔작인 <삼거리 극장>도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만한 영화를 하더니, 이후로도 계속 '모험'을 해오는 것 같다.

부산에서도 누가 그렇게 물어봤었는데, "한 사람이 만든 영화처럼 보이지 않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내가 워낙 끈기도 없고 쉽게 싫증내고 지루한 걸 못 견딘다. 하나만 깊이 파는 스타일도 아니고. 다른 장르에도 관심많고 하고싶은 이야기도 여러 가지가 있고, 그걸 전달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다. 뭘 잘 하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고. 매번 아쉬움만 남는다.

-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충무로의 일반적인 제작비 규모의 상업영화인데, 그 영화도 직접 시나리오를 썼나? (*편집자 주 - 전계수 감독은 현재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준비중이다.)

아니다. 지금 준비하는 영화는 원작도 있고, 각색도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그쪽 영화사 대표가 그렇게 제안하길래 나도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나중에 내가 다시 만지긴 하겠지만. 지금 투자자들한테 시나리오가 들어간 상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는 그 이후에 할 영화들이다.

- 다른 이가 각색해준 이번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던가?

내 식대로 다시 고쳐야지.

- <삼거리 극장>도 그렇고 이번 <뭘 또 그렇게까지>도 그렇고, 예술에 대한 메타영화의 성격이 있다. 거기에 음악 다큐멘터리까지.

이제는 안 그러려고. 예술가 안 나오는 얘기, 그냥 쉬운 얘기를 해야지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는 얘기가 좀 쉽겠지? 죽지 않고 사는 영화. 대신 아주 쉬운 얘기를 아주 낯선 형식으로 만들고 싶다. 인터뷰를 해야 알아듣는 얘기 말고, 영화만 딱 보고 나와도 확실하고 가슴을 움켜쥐게 되는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나. 다만 이걸 전형적인 방식으로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야기의 형식이 새로워서 뻔한 이야기도 긴장감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이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 관객들이 <뭘 또 그렇게까지>를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나?

재밌게 봐줬으면 한다. 그러라고 만든 거니까. 이 영화에 '낯선 데 가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남성판타지가 있지 않나. 그러니 굳이 메시지가 있다면 이거다. "그러다 큰 코 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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