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은 자연의 위대성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우리는 자연 속의 존재이니 이 위대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일찍이 이양하는 아름다운 5월을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四時)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萬山)에 녹엽(綠葉)이 싹트는 이 때일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나날이 새로운 경이를 가져오는 이 언덕 저 언덕, 그리고 하늘을 달리고 녹음을 스쳐 오는 맑고 향기로운 바람―우리가 비록 빈한하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때 모든 것을 가진 듯하고, 우리의 마음이 비록 가난하여 바라는 바, 기대하는 바가 없다 할지라도, 하늘을 달리어 녹음을 스쳐 오는 바람은 다음 순간에라도 곧 모든 것을 가져올 듯하지 아니한가? (이양하의 '신록예찬' 첫 부분)
그러나 30년 전의 광주항쟁 이후 우리는 5월을 신록의 계절로 예찬만 하고 보낼 수는 없게 되었다. 30년 전의 5월에 광주에서 전두환 일당이 공수부대를 동원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더욱 더 5월을 신록의 계절로 예찬만 하고 보낼 수는 없게 되는 것 같다. '4대강 살리기'의 이름으로 4대강 곳곳에서 무차별 파괴가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라하게 죽은 듯했던 강변이 바야흐로 터질 듯한 초록빛으로 아름답게 되살아나야 할 이때에 오히려 강변은 폭약으로 폭파되고, 포클레인으로 깨어지고, 불도저로 떠밀려서 영원히 사라지고 있다. 생각만 해도 참담하고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갈수록 많은 성직자들이 단호하게 4대강 죽이기의 중단을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5월은 대단히 불행하다. 한편에서는 파괴되고 죽어가는 4대강의 비명이 우리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시 세계 금융 위기의 경고음이 우리의 귀를 때리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전자보다 후자에 더 쉽게 큰 관심을 기울인다. 정부는 후자를 알리바이로 삼아서 전자를 강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 위기와 생태 위기를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생태 위기를 경제 위기보다 더욱 근원적인 위기로 파악해야 한다. 생태적 대파괴를 계속 강행한다면 결국 생태적 대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절멸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태위기의 관점에서 현대의 사회구조와 생활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고하고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도 지금 한국보다 생태라는 말이 왜곡되고 고통받고 있는 곳은 또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생태라는 말은 생태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져 있는 자연을 뜻하는 말이다. 그 실체가 '4대강 죽이기'인 '4대강 살리기'도 생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강을 폭파하고, 까뭉개고, 밀어내는 것이 어떻게 생태를 위한 것일 수 있는가?
▲ 정부는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더욱 멋지게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프레시안(손문상) |
생태와 경제의 영어 어원은 '에코(eco)'로서 같다. 에코는 그리스어 '외코'에서 온 말로서 '집'을 뜻한다. 여기서 '집'은 사람의 집만이 아니라 동물의 서식지, 나아가 무수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는 지구 자체를 뜻한다. 경제를 뜻하는 '에코노미(economy)'라는 말은 지구를 이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에 비해 생태라는 말이 비롯된 생태학을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는 지구에 대한 연구를 뜻한다.
서구에서 18세기에 성립된 근대 경제학은 지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지구의 이용을 촉진했다. 그 결과 엄청난 생태적 재앙이 속출하게 되었다. 지구라는 집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경제라는 이름으로 바닥을 긁어내고, 기둥을 잘라내고, 지붕을 파괴하는 짓을 벌였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19세기 중반에 생물학의 하위 분야로서 생태학이 형성되었다. 생태학은 지구라는 집에 대한 이해의 방식과 수준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생태학에 입각해서 사회와 학문의 모든 것을 재정립해야 한다. 21세기는 생태학적 전환의 시대이다. '경제학에서 생태학으로' 사회의 지적 기반이 바뀌어야 한다.
20세기의 생태적 대파괴를 계속 이어간다면 21세기는 머지않아 생태적 대파국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아마도 그 선봉에 한국이 서 있게 될 것 같아서 심란하기만 하다. 생명의 젖줄인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강을 고작 물길이나 심지어 물그릇으로 보는 참으로 천박하고 파괴적인 기능주의에 사로잡혀서 가장 복잡하고 풍요로운 생태계인 강을 정말이지 너무나 끔찍하고 급속하고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서울 한강을 모델로 해서 이렇게 무지막지한 짓을 벌이고 있다니, 결국 4대강을 모두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지금 서울 한강은 반생태, 반생명, 반자연의 대표적인 공간이다. 서울이 회색 도시로 연상되는 것은 수많은 콘크리트 아파트들 때문만이 아니라 전두환 일당이 콘크리트 수로와 콘크리트 호수로 만든 한강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이 서울시에서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강 종합 개발 사업은 한강의 자연하천의 모습을 앗아갔으며, 생물 서식지 교란으로 한강 생태계를 크게 바꾸어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한강의 하천 환경이 최대로 자연에 가깝게 복원될 때에야 비로소 시민들이 한강을 찾아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고 축제를 열며 물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1년, 61~62쪽)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4대강 살리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실체에 비추어 보자면, 4대강을 죽여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막대한 혈세를 투여해서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서 일시적으로 경제가 살아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모르핀을 주사해서 잠깐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일 뿐이다.
막대한 재정을 탕진하고 소중한 국토를 파괴하는 토건국가는 이미 병적으로 비대해서 경제 전체를 압박하고 있는 토건업을 더욱 더 비대하게 만들어서 결국 경제 전제를 파괴하게 된다. 토건국가는 재정 파탄, 국토 파괴, 경제 파괴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토건국가의 극단화에 해당하는 '4대강 살리기'는 결국 '4대강 죽이기'일 뿐만 아니라 '경제 죽이기'인 것이다.
정부는 국민적 반대를 물리치고 편법을 동원하고 불법까지 저지르면서 '4대강 살리기'를 강행하고 있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에서는 오래 전부터 텔레비전 공개 토론을 통해 누가 무식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밝히자고 제안했으나 정부는 이런 제안을 계속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적 반대가 갈수록 거세지자 정부는 '4대강 살리기'에 대한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것은 토론하는 척하면서 공사를 강행해서 여론을 무마하는 동시에 강 죽이기를 완수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명백한 불법에 대해 처벌을 받고, '4대강 살리기'에 대한 각계의 반대를 가로막는 치졸한 행태를 사과해야 할 것이다. 특히 타임머신을 타고 '5공'으로 돌아간 듯한 선거관리위원회와 한국방송공사(KBS)의 행태는 너무나 한심한 것이다.
경제 위기는 생태 위기를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생태 위기가 더욱 악화되면 경제 위기도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두 에코의 동시 위기는 위험천만하다. 그러나 토건국가는 두 에코의 동시위기를 적극 추구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파괴적인 토건국가의 길이 아니라 생태적인 복지국가의 길이다.
토건국가 일본은 결국 '잃어버린 10년'에 이르고 말았다. 토건국가 한국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당장 4대강 죽이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10년'은 아예 '잃어버린 30년'이 될 수 있고, 그 뒤에도 생태는 결국 살아나지 못할 수 있다. 대단히 불길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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