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쌀밥이 우리에게 로망이었다면 떡은 그 로망을 넘어서는, 음식 가운데 극상의 존재였다. 잘사는 사람에게는 떡이 일상이었을지 몰라도 서민들로서는 밥도 먹기 쉽지 않은 시절에 떡이야말로 명절, 잔치, 제사 때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랬기에 떡과 관련된 속담도 무척이나 많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에서 보듯 떡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이었으며, "남의 떡에 설 쇤다"와 "얻은 떡이 두레 반이다"에서 보듯 떡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는 인정의 교환이었던 것이다.
우리네 인생살이와 함께한 떡
떡은 잔칫집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였다. 아무리 초라한 잔치라도, 고기는 없어도 개다리소반에 떡 한 접시는 올라오게 마련이었다. 지금도 결혼, 초상, 회갑, 고희, 백일, 돌 등의 잔칫상에 떡이 빠지는 법은 없다. 인간사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상징하는 데에 어찌 음식 가운데 가장 귀한 떡이 빠질 수 있겠는가.
지금도 잔칫집에 온 손님에게는 떡을 싸 주기도 하고, 이사를 하면 떡을 해서 이웃에 돌리기도 한다. 떡과 관련된 우리네 말을 보면 온통 정겹고 넉넉한 인상을 준다. 그만큼 떡은 우리에게 풍족함의 상징이었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은 밀로 가루를 내어 만든 빵을 만들어 떡처럼 먹지만, 빵과 떡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밀 지역의 빵은 바로 우리의 밥과 같은 의미지만, 우리에게 떡은 별식을 뜻하는 것으로, 밥을 훨씬 넘어선 성찬이라고 보아야 한다. 서양의 개념으로 따지면 케이크나 과자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떡이다.
한국인의 사시사철과 인생은 떡과 함께한다. 설날에는 가래떡을 썰어 떡국을 끓여 먹어야 한 살을 더 먹고, 봄에 진달래가 피면 꽃잎을 따다가 떡 위에 올려놓고 예쁜 화전을 지져 먹으며, 단오에는 수리취떡, 가을의 한가위에는 향기로운 솔잎과 함께 찐 송편을 먹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지난 백일상과 1년이 지난 돌상에는 신성함을 뜻하는 백설기와, 액운을 쫓아주는 붉은팥 고물 수수경단, 오행과 오덕을 갖춘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오색 송편을 상 위에 올린다. 공부를 할 때에는 책을 하나 뗄 때마다 책거리로 떡을 해 먹었고, 자라서 시집 장가를 갈 때에는 봉치떡이 가약을 상징한다.
살아가면서 명절과 잔치마다 떡을 먹으며 회갑에는 그야말로 떡을 가득히 고인 상을 받는다. 죽어서 제사와 무덤에서까지 떡을 받아먹으니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일생이 떡과 함께하고 죽어서까지 떡과 연결되어 있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빈대떡도 떡이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떡을 먹었을까? 참으로 바보 같은 질문일 수밖에 없지만, 떡의 재료로는 쌀과 찹쌀 말고도 조나 수수 같은 잡곡도 쓰이니 대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수렵·채집 시대에야 이런 떡이 있을 성싶지 않다. 들에서 거둬 오는 곡식이야 있었겠지만 그것이 떡을 해 먹을 만큼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열매와 고기라면 몰라도 곡식을 가공하는 기술은 형편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경이 정착된 신석기 시대라면 곡식도 풍부해졌으며 낱알의 가공 기술도 좋아졌기에, 떡가루 만드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루를 반죽해 돌 위에 놓고 구워 먹었을지는 몰라도 시루떡처럼 증기로 익힌 떡은 없었던 것 같다. 떡을 찌는 시루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 본격적으로 발견된다. 이쯤 되어야 본격적인 계급 분화도 이루어지고 비교적 여유 있는 지배 계층이 생겼기에, 밥을 넘어서는 본격적인 떡이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떡의 재료가 되는 곡식도 여러 가지고 고물이나 안에 넣는 재료도 다양하지만 떡을 만드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그만큼 많은 종류의 떡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우선 가장 간단하게는 곡식을 가루로 내어 반죽하여 지진 것들이다. 화전을 만들어 먹던 것이 그런 방식이었고, 속에 팥소를 넣어 맛을 돋운 수수부꾸미 같은 것도 있다.
비록 지금은 떡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가 흔히 해 먹는 부침개나 빈대떡도 이 종류로 볼 수 있다. 이런 지진 떡이야말로 가장 일찍부터 있었던 떡의 한 종류로 여겨진다. 이것 말고도 곡식 가루를 반죽해서 모양을 빚어 끓는 물에 삶아낸 떡도 있다. 경단이 그런 종류다.
왕을 뽑는 데도 쓰인 떡
그다음이 시루를 이용해 찐 떡이다. 바로 백설기가 대표적인데 멥쌀을 물에 불려 곱게 가루를 내어 다시 물기를 내리고 시루에서 쪄낸 떡이다. 백설기는 만들기도 쉽거니와 그 순백의 색깔 때문에 돌이나 백일처럼 순결함을 상징하는 행사에서 사랑받는다. 백설기를 만들 때에 요즘은 꼭 설탕이 들어간다. 그래야 떡 맛이 좋고 목이 메지 않는다.
꿀을 써도 되지만 그러면 그 습기 때문에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하던 고려 시대 호족들은 설탕을 구해 떡을 만드는 데에 썼다. 조선에서도 설탕을 썼지만 여염집에서는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전의 백설기에는 말린 밤가루를 넣어 그냥 쌀가루로만 만든 떡의 단순함을 해결했다.
백설기는 쉽게 응용할 수 있는 구석도 많다. 예전에도 쑥이나 콩, 도토리 같은 것을 넣어 색다른 맛을 즐기기도 했고 복숭아 즙으로 반죽해 맛을 내기도 했다. 이런 방식을 응용하면 여러 가지 새로운 재료를 이용해 백설기 떡의 새로움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송편도 찐 떡에 속한다. 쌀가루로 모양을 만들고 속을 넣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시루에 솔잎과 함께 떡을 넣고 쪄서 먹는다. 증편 같은 술떡도 여기에 속한다. 술로 반죽하면 술이 일종의 팽창제 역할을 해서 질감이 부드러워진다. 술맛과 함께 새로운 식감도 느낄 수 있다.
떡을 쌀가루로만 만든 것은 아니다. 고려 시대의 '쌍화점(雙花店)'의 '쌍화'는 본디 상화(霜花)로,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해서 찐 것이니 '쌍화점'은 밀떡을 팔던 가게다. 그 안에 속을 넣으면 만두가 되니 지금은 만두 가게로 여기지만 고려시대의 '상화'가 속을 넣은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상화가 지금의 만두 같은 것이었다는 조리법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고려 시대의 상화는 그 이름으로 유추하면 아마 지금의 중국식 꽃빵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친 떡이다. 잔치 음식이나 손님 대접에는 친 떡이 대종을 이룬다. 멥쌀을 가루로 하여 시루에 찐 다음 안반에서 친 것을 절편이라고 하는데, 떡살로 고운 무늬를 넣기도 하고 다 만든 다음에는 서로 달라붙지 않게 참기름을 바른다. 밋밋한 떡 맛에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울리니 기능도 맛도 고려한 방법이다. 찹쌀로 밥을 지어 안반에 놓고 떡메로 쳐서 만든 것을 길게 늘여 칼로 잘라 고물에 굴려 먹는 것이 인절미(引切米)다.
<삼국사기>를 보면 남해왕이 죽은 뒤 탈해와 유리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니 이를 세어봐서 많은 사람이 왕이 되기로 했는데, 유리의 이가 많아 임금이 되었다. 이를 세어보려고 쓴 방법이 떡을 씹는 것이었고 이때 사용한 것은 절편이나 인절미 같은 친 떡이었을 테다. 유리이사금의 이사금이라는 말은 이금을 뜻하는 것으로, 나중에 왕을 칭하는 임금이라는 말로 변한다. 임금이 되기 위해 떡을 먹었으니 이때도 친 떡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설날에 먹는 가래떡도 지금은 기계로 뽑아내지만 원래는 이렇게 떡메로 친 떡에 속한다. 친 떡은 노동이 많이 들어가지만 알갱이가 보이지 않도록 반복 압착을 하기에 쫄깃쫄깃한 식감이 가장 좋다. 하지만 떡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사람 손을 가장 많이 타기에 가장 쉽게 상하는 단점도 있다.
다양한 창의력이 담긴 우리 떡
떡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음식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 그리고 동남아지역에도 떡이 존재한다. 하지만 떡 문화를 보면 그 가운데 한국이 떡의 종류가 가장 많고 다양한 재료를 쓰지 않았나 싶다. 중국의 떡은 지나치게 밀 위주고, 일본은 찹쌀과 팥소를 중심으로 한 떡이 많다. 한국처럼 멥쌀, 쌀, 수수, 보리 등 주곡과 잡곡을 모두 재료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그와 함께 떡의 맛을 내려고 첨가한 재료의 다양성도 정말 다채롭다. 여러 콩과 팥, 검은깨와 흰깨, 밤과 호두, 대추, 계피, 쑥, 꽃, 술, 꿀 등 맛과 향과 모양을 위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갖은 재료를 다해 창의력을 발휘했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통해 다양한 떡을 만든 나라도 아마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가 떡을 좋아하고 모든 의례의 음식 가운데서도 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떡은 앞으로도 변용의 여지가 가장 많은 음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단팥소를 넣은 빵은 떡의 변용이다. 서구 사람들은 그 오랜 빵의 역사에서도 빵의 재료에 무엇을 첨가하거나 발라먹기는 했지만 빵 안에 빵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넣어 먹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단팥소를 넣은 빵은 빵을 만들던 일본 장인의 발명품이다. '모찌'처럼 단팥소가 들어간 찹쌀떡에 착안해 빵 안에도 팥소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 뒤로 빵 안에 여러 맛을 돋우는 다른 내용물을 채우는 풍습은 다시 빵의 본거지인 서구에까지 확대되었다.
우리의 떡 만드는 기술도 여러 방면에 응용될 수 있다. 과거에는 밀이 주목받았지만 이제 쌀과 잡곡이 건강 식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잡곡과 콩, 그리고 다른 견과, 건과를 풍부하게 쓰는 떡도 이제 건강식으로 다시 태어날 좋은 기회가 왔다. 떡은 탄수화물이 중심이 되기는 하지만 콩과 깨, 잡곡을 쓰면서 기름기가 별로 없는 자연친화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떡은 점차 비교적 나이 든 사람들만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떡보다는 서양식 빵과 과자를 더 좋아한다. 이들의 입맛을 돌리기 위해서도, 또 더 나은 맛을 찾기 위해서도 떡의 과감한 변신이 요구된다.
ⓒ프레시안(손문상) |
전통과 변용으로 여는 떡의 미래
음식은 만드는 방법과 재료에서 전통에만 매달리기가 쉽지 않다. 전통의 좋은 면은 받아들이되 새로운 재료나 방식도 과감히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재료와 환경이 변화하는 때에는 더욱 그렇다. 지금의 김치가 반드시 100년 전의 김치가 아니듯 떡도 현대의 입맛에 맞추고 새로운 변화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우리의 입맛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맛까지도 바꿀 수 있다. 떡도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새로운 변신을 꾀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빵 만들기에 쓰이는 여러 팽창제를 이용해 식감의 변화나 향기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으며,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을 이용할 수도 있다. 코코아 가루 같은 것은 이미 무지개떡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건포도가 들어간 떡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새로운 견과와 과일도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땅콩은 남미의 것이지만 이제는 우리 밥상 위에 오른 지 오래되었듯, 호주가 원산인 마카다미아가 떡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계절 과일이나 마른 과일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퓨전의 여러 방식도 우리 떡을 더욱 다양한 맛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런 변용은 여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곡물과 재료들을 변형시켜 의미 깊은 떡을 만들어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생일 케이크 대신으로 그냥 평범한 동그란 모양의 무지개떡도 아니라 마카다미아가 들어간 두텁떡을 새로이 재발견하는 게 어찌 불가능할 것이며, 딸기와 레몬이 들어간 시루떡은 또 어찌 불가능할 것인가. 초콜릿과 생크림이 들어간 떡도 가능할 것이다. 떡 만들기는 케이크 만들기보다 어렵지 않다.
막연히 전통을 복원하거나 답습하기보다는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도들이 우리 입맛에 더욱 새롭게 다가올 수 있다. 그 많은 빵가게만큼이나 다양한 떡집이 우리 곁에 새로이 다가와, 젊은이도 예쁜 떡 가게에서 모양 예쁜 떡을 맛있게 사먹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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