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려진 곳은 날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곳.
난 어차피 더러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노랫말이 찢어질 듯한 굉음으로 공터를 덮었다. 관객 대부분은 한 손에 캔맥주를 들고 무대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무대는 천막 두 동. 스피커도 2개. 전기는 자체 전동기. 하지만 관객은 개의치 않았다.
공연장인 공터 뒤편에 세워져 있는 굴착기와 기중기는 이곳이 재개발 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 두리반 공터에서 공연 중인 인디밴드. ⓒ프레시안(허환주) |
전자총과 탬버린 든 관객 "힘닿는 데까지 놀다 갈 거다"
조금은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홍대역 4번 출구에서 신촌 쪽으로 100미터만 올라가면 보이는 식당 '두리반'에서 공연이 열렸다. 작년 12월 24일 용역에게 집기를 철거당하고 나서, 가게 주인 안종려 씨는 이곳에서 농성 중이다.
이곳을 5월 1일 120주년 노동절에 수많은 젊은이가 찾았다. '120주년 기념 전국 자립 음악가 대회 뉴타운 칼챠 파티 제공 <51+>'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공연을 주최한 '그룹51'은 '막가파식' 재개발에 항의해 농성을 진행하는 두리반 식당을 돕자는 생각에서 이곳을 공연장으로 결정했다
공연장은 두리반 건물 뒤편 공터. 재건축을 위해 건물을 철거하고 생긴 부지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오후 7시께 입장객이 1000명을 넘겼다.
공터 이외에도 두리반 건물 지하 1층과 3층에 공연장이 마련됐다. 각각 100명과 150명이 들어갈 공간이다. 하지만 넘치는 관객으로 대부분은 입구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안종려 씨가 남편과 농성 중인 이 공간은, 이날만은 다시 식당으로 바뀌었다. 국수, 주먹밥, 족발, 홍어무침, 부추전 등을 팔았다. 공연 틈틈이 관객은 삼삼오오 모여 허기를 채웠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인천에서 왔다는 박상기(23) 씨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해 이 곳을 찾았다. 힘닿을 때까지 놀다 갈 것"이라며 "준비 도구도 직접 챙겨왔다"고 말했다. 그의 가방에서는 탬버린과 전자총이 나왔다.
▲ 공연장인 공터는 재건축 지역으로 이곳 주위에는 철판이 세워져 있었다.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해 놓은 것. 주최측은 이 철판에 홍보지를 붙였다. ⓒ프레시안(허환주) |
"불과 100미터 거리,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거죠"
105-10-48050
두 리 반 안종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67-31
음 식 분 식
공연장 입장을 위해서는 왼쪽 팔에 이러한 문구가 적힌 도장을 찍어야 했다. '105-10-48050'는 두리반 사업자 등록 번호다. 이젠 쓸 수 없는 번호다. 모든 입장객이 두리반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준비했다.
그동안 한 달 넘게 이번 공연을 준비해 온 존도우 씨는 "홍대에 두리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역시 두리반 같은 사회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신경을 쓰면 힘들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외면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음악가 단편선 씨가 공연하는 걸 보러 두리반에 왔다가 이곳에 푹 빠지게 됐다.
"홍대역 4번 출구에서 두리반까지는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아요. 그곳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주말이면 친구를, 연인을 만나기 위해 붐비죠. 하지만 그들은 이쪽(두리반)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쪽에서는 저쪽이 보이지만 저쪽에서는 이쪽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는데 말이죠. 일부로 외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권력의 횡포로 약자는 늘 괴롭힘을 당한다"
대부분 사람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두리반이기에 이번 공연이 누구보다 감사한 건 두리반 주인 남편 유채림 씨였다. 그는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채림 씨는 "지난 겨울 집기가 철거된 이후 농성을 진행해왔다"며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작가회의, 마포지역 진보단체, 그리고 인디밴드들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해줘서 여기까지 왔다"며 재차 감사의 말을 전했다.
유채림 씨는 "부조리한 법, 잘못된 법과 권력의 횡포로 약자는 늘 괴롭힘을 당해왔다"며 "두리반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것도 있지만 무차별적으로 세입자들이 쫓겨나야만 하는 임대차보호법 등을 바꾸는 것에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부탁했다.
▲ 공연 관객 중 한 명이 자신의 등에 재개발 정책을 비판하는 문구가 적힌 박스를 붙이고 있는 그는 남산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