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신경의 중추는 뇌의 시상하부에 있다. 이곳을 둘러싸고 식욕중추, 체온중추, 수분대사 중추가 모여 있는데, 이곳이 문제가 생기면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난다. 특히 호르몬의 분비가 시상하부에 영향을 준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생리, 임신, 출산 등 생식 기능에 따라서 그 분비량이 달라지는데, 바로 이 에스트로겐이 자율신경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보통 20대는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높아지고, 갱년기에는 이것의 분비가 떨어진다. 그러나 골드미스는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호르몬 조절의 균형이 깨지기 십상이다. 일정하지 않은 여성호르몬의 분비량이 자율신경에 영향을 미치면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추웠다 더웠다 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불면증이 찾아온다.
이외에도 자율신경을 자극하는 일은 몇 가지 더 있다. 분만 후의 자율신경부조증이다. 습관성 유산, 중절이 이 병을 불러오기도 하고, 육아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출산을 했다는 허탈감, 산후에 수유 등으로 체력이 떨어지면서 오는 경우도 많다. 난소를 절제하거나 기능이 소실되는 경우도 상실감으로 인해 심하게 자율신경부조증이나 이에 따른 이명이 나타난다.
자율신경은 전신의 장기. 기관에 구석구석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도 다양하다. 크게 전신 증상과 국소 증상으로 나뉘는데 전신 증상으로는 불면, 피로, 식욕 부진과 같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에 더해서, 초조, 불안, 우울한 감정이 나타난다.
국소 증상은 말 그대로 온몸에서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 눈의 피로, 통증, 목이 막히는 느낌이나 그와 유사한 불쾌감, 두통, 어깨 결림, 목 부위의 강직이 나타난다. 심장, 폐, 혈관에서는 과호흡, 흉부 압박감, 현기증, 저림, 상기증이 생긴다. 위장에서는 구역질과 위통, 변비, 설사가 생기고 방광에서는 소변이 자주 마렵다든지 배뇨 때 불쾌감이 나타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일찌감치 이런 질병의 특징을 기록했다. <동의보감>을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옛날에도 일종의 골드미스와 유사한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사별하고 혼자 사는 여성이었다. 오늘날 골드미스가 한의원을 찾는 증상과 놀랍도록 흡사해서 나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은 '억울(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생기는데 잠깐 열이 났다 추웠다 하고 얼굴이 붉으며 가슴이 답답하다. 혹 때로 절로 땀이 나기도 한다. 홀아비나 과부가 남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아 가슴이 아프고 땀이 나며 볼이 붉으면 연잎을 쓴다. 연잎을 잘 짓이겨 물에 걸러서 찌꺼기를 버리고 먹으면 곧 낫는다."
▲ 이명과 같은 자율신경부조증이 초래하는 질환은 침으로 효과적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프레시안(손문상) |
그래서 나온 것이 '신(神)'이다. <동의보감>은 신(神)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神)은 음과 양에 모두 통하고 있으면서 섬세한 것까지 살피며 문란한 것이 없다."
이 '신'을 현대 의학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면 자율신경의 기능에 해당한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자율신경이 있어서 육체의 피로와 고통을 정신에 전가하고, 정신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육체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 자율신경의 조화가 깨지는 것이야말로 바로 정신과 육체의 조화가 깨지는 것이다.
자율신경은 생명을 유지하는 자동 제어 장치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둘로 나눈다. 심장이나 위장의 작용, 땀을 내는 한선, 내장이나 혈관의 수축, 확장 또는 호르몬 분비 등 생명의 유지와 관련되는 모든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교감신경은 양의 성질을, 부교감신경은 음의 성질을 가졌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예를 들면 교감신경이 긴장하면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고, 부교감신경이 긴장되면 반대로 심장의 고동은 느려진다. 놀라거나 분노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교감신경이 긴장 상태에 놓인 것이며, 안정되면 부교감신경의 작용이 커져 박동도 평상시로 돌아간다. 이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면 몸에 이상이 온다. 특히 교감신경이 문제다.
교감신경의 불균형은 싸울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싸울 때는 긴장한다. 말초혈관도 긴장하여 수축하고 몸에 있는 털이 서며, 말초에 있던 혈액은 심장으로 집중되어 펌프질이 힘들 정도가 돼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긴장하면 당연히 밥맛이 없어지고 대변을 보는 것도 힘들어진다. 싸우면서 잠들기는 더욱 어렵다(불면증).
뇌로 올라가는 혈류량도 줄면서 뒷목의 근육이 긴장하고 어지럽거나 이명이 생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 열 개라도 버텨내기 힘들어지며 피로가 덮치고 심하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교감신경의 균형이 깨지면 이렇게 무섭게 인체에 부담을 떠안기며 붙특정 다수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교감신경의 발동은 스트레스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므로 두통이나 어깨 강직, 경련, 현기증, 손발이 저리거나 복통, 변비, 설사 등이 차차 엄습해 와서 병의 정확한 원인이 헷갈릴 정도다. 자율신경부조증에 걸린 사람의 빈도를 보면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 특히 부수적으로 나타난 이명 증상은 치료도 어렵고 까다롭다.
이명과 현기증을 호소하는 경우는 몇 가지 경우로 나누어 치료한다. 본태성인 경우는 허약체질이나 저혈압에서 잘 생기는데, 스트레스보다는 자율신경 기능의 허약이 문제가 된다. 신경증형의 경우는 노이로제 형으로 신경과민으로 자신의 몸 상태에 매우 민감한 경우다. 심신증형은 노력하고 근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서 생긴다. 우울형은 만성적으로 오래되어 체력이 고갈되어 생기는 것이다.
한의학적 치료법은 정기신의 보강에 일차적인 목표를 둔다. 인체는 정기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과 기가 충분하면 신(신경)은 안정된다. 정과 기가 부족해지면 신이 불안정해지며 의식이 탁해진다. 또 몸의 각 기관이 위의 설명처럼 온갖 이상을 일으킨다. 정이 더 약해지면 신이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해 이상하게 행동하게 되는 결과로도 나타난다.
치료에는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이 있다. 승양산화법은 화산처럼 속에 있는 화를 들어 올려 날리는 방법이고, 청열법은 열을 식히는 방법이다. 자음강화법은 여름에 찬물을 먹으면 시원해지는 것처럼 찬 약을 넣어서 화를 내리는 방법이며, 허약해서 생기는 열은 보하여 열을 내린다. 마지막 방법은 소통이다. 관장처럼 아래를 뚫어서 전체의 열을 내리는 방법이다.
옛 사람의 지혜는 자율신경부조증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병의 다양한 치료법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