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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또 그렇게까지, 예술이 별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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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또 그렇게까지, 예술이 별 건가요

[뷰포인트] 전계수 감독 신작 <뭘 또 그렇게까지> 리뷰

춘천을 방문한 예술가가 젊은 예술가 지망생 여자를 만난다. 낯선 곳에서 만난 남자와 (어린) 여자, 특히나 남자가 지닌 예술가적 권위에 더없이 찬사를 보내는 여자와 그녀를 한번 꼬셔보려는 남자. 어디서 많이 보던 얘기다. 거기에 입에 착 감기는 구어체 제목까지. 전계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뭘 또 그렇게까지>를 두고 많은 이들이 홍상수 감독을 입에 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를 보고나서도 그들이 또 다시 홍상수 감독의 이름을 올린다면, 그건 이 영화가 홍상수 영화와 얼마나 다른지를 얘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홍상수 감독의 초기 영화들에 일관된 불쾌감을 가지고 있던 관객이라면, <뭘 또 그렇게까지>를 보고 통쾌한 환호성을 지를지도 모른다.

기차 안에서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을 읽고 있던 촉망받는 젊은 화가 조찬우(이동규)는 춘천에서 열리는 미술학회 세미나에 참석하러 가는 중이다. "얼른 춘천역에 와서 치킨집 술자리에 합류하라"는 독촉전화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동적으로 김유정 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역시 '김유정'이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 미술학도 여성과 만난다. 젊고 예쁜 여자가 자신을 존경한다며 "선생님, 선생님"하며 졸졸 쫓아다니니, 우리의 속물 예술가 조찬우는 어깨에 힘을 좀 주며 그녀를 꼬시고 싶다. 조찬우의 눈에는 김유정 역시 그걸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영화가 흥미로운 반전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니체'를 권하며 잘난척을 하던 조찬우의 '권위'가, "실은 고등학생 때 니체는 다 읽었다"는 유정의 말에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이다. 거기에 조찬우는 유정을 스토킹하던 젊은 감독지망생 민호에게 '쫓기며'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 <뭘 또 그렇게까지>

이후 영화는 단순히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둘러싼 소동만으로 코미디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관계와 태도를 통해 '자연'과 '예술'에 대한 담론으로 비약한다. 민호가 찬우에게 술대결을 청하며 들려주는 유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름 신빙성 있는 '근거'들을 지니고 있지만, 이야기 자체가 기괴한데다가 민호라는 인물도 부담스러울만치 과잉된 자의식으로 뜬금없는 행동을 일삼는 캐릭터다. 곧 우리는, 그녀가 유정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 역시 실은 민호가 제멋대로 구성해 믿고있는 이야기들일 수 있다고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진술이 자연과 예술에 대하여 찬우가 유정에게 흘리듯 던졌던 말들, 그리고 세미나에서 토했던 열변들이 유정에 대한 기괴한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유정이란 인물은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녀는 찬우가 낯선 곳에서 만난 그저 신비한 여인일 수도 있다. 민호의 말대로 기괴한 믿음과 행동을 일삼는, '어른 남자 찜쩌먹는 무서운 어린 여자아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찬우가 '예술'과 '자연' 개념을 그대로 육화한 존재이기도 하다.

'예술가'로서 찬우에게 '유정'은 처음엔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예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그가 감히 통제하기는커녕 어찌할 수도 없는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로 밝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민호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영화 역시 유정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찬우는 홍상수 감독의 남자캐릭터들과 달리,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그에 복종하는 인물인 것 같기는 하다. 빈 호텔방에서 잠을 못 이루던 찬우가 '유정이 즐겨 한다던' 백팔 번 절하기를 하는 코믹한 장면이 바로 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이다.

▲ <뭘 또 그렇게까지>

영화의 클래이맥스를 이루는 공간은 젊은 예술가들의 축제가 열리는 공간이다. 애초 '춘천'이라는 도시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이 영화는 찬우와 유정의 동선 뒤로 춘천의 유명한 명소들을 배치해놓는 한편,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인 막국수와 닭갈비를 화면에 반복해서 등장시킨다. 그러나 <뭘 또 그렇게까지>가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춘천의 얼굴이라면, 서울과는 또 다른, 언제나 젊은 예술가들의 활기로 넘치는 '예술의 도시'로서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영화와 음악, 춤, 판토마임, 행위예술, 그림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이 어우러진 이 축제에서 찬우는 비로소 자신의 맨얼굴을 보게 될 뿐 아니라, 민호로 상징되고 있는 자신의 과거를 직시한다. (민호와 찬우는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이다.) 그리고 삐딱한 냉소와 비웃음이 몸에 배 있던 찬우는 비로소 이곳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고 겸허한 자세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이후에 또 한 번의 반전을 준비한다. 찬우가 마침내 유정에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느꼈을 법한 순간, 유정은 다시 그의 이해와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예술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유정에게 짓는 찬우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 얼굴이야말로, 예술 언저리에서 밥을 먹으며 예술을 좀 아노라 하는 우리 모두가 가장 두려워할 순간의 얼굴일지 모른다. 우리가 원하고 희구하는 그것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진실을 맞닥뜨리는 그런 순간이니까. 하지만 이 글을 유정이 읽는다면,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할 것 같다. "뭘 또 그렇게까지 이 영화를 보셨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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