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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책임자인가 논평가인가

[기자의 눈] 구멍 뚫린 안보에 '책임 통감' 한 마디가 어려웠나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16일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군의) 미흡했던 초동조치에 대해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요청하겠다"며 "군 기강을 재정비하는 등 군이 거듭나는 기회로 삼겠다"고 했다. 누구나 예상했고, 당연히 나와야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김태영 장관의 담화에는 꼭 들어가야 할 말이 하나 빠져 있었다. 본인 스스로 이번 사태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임감' 정도의 단어는 입에 올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담화문을 읽는 김 장관에게서는 자신을 제외한 군 수뇌부에 책임을 묻겠다는 느낌만 풍겼다. 책임을 져야 할 이가 논평가가 돼버린 꼴이다.

김 장관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유가족,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군 지휘부의 뜻에 따라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삶을 자부하던 46명의 장병이 소중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 많은 국군 장병들이 한순간에 희생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국가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당한 일이다. 그때 김태영 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과연 무얼 했나.

군이 언제나 강조하는 '0.1%의 안보 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초기 대응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16일치 <조선일보> 사설에 잘 나와 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확인됐다.

군령 체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이상의 합동참모본부 의장은 사고 발생 후 무려 49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인지했다. 김태영 장관은 합참의장이 보고를 받은 후 다시 3분이 지나서야 천안함이 두동강난 사실을 알았다. 대통령에게 국방 상황을 최종 보고해야 할 책임자들이 대통령보다 늦게 사고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김태영 장관은 지난 4일 기자들에게 '합참의장이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내가 속초함의 함포 사격을 승인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그렇다면 합참 의장이 상황 보고를 먼저 받아 놓고도 사격 승인은 국방장관이 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데, 보고를 몇시에 받았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국방부는 매년 천문학적인 예산을 빨아들여놓고도 군의 기본인 비상 보고 체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엉터리 군대를 관리했다. 천안함의 희생자들은 이런 엉터리 지휘관들의 명령을 군말 없이 따르다 차디찬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스스로의 책임부터 되물어야 할 장관이 부하 군인들의 잘못만 책하겠다는 군대에서, 전선을 묵묵히 지키는 장병들은 과연 어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야 할까. 이번 사태를 지켜본 장병들의 사기를 진정으로 꺾은 이는 누굴까. 앞으로 입대해야 할 젊은이들은 과연 군을 얼마나 믿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이나 성찰은 김 장관의 담화문에 없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군 기강을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군 기강이 흐트러졌음을, 안보 태세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뉴시스
돌아보면 김 장관은 이전에도 군을 책임지는 이로서 적절치 못한 언행을 일삼았다.

"당시 북한의 공격 징후는 없었다", "북한의 기뢰가 흘러왔을 가능성이 있다"(이상 3월 29일 국회 국방위), "어뢰에 맞았을 가능성이 좀 더 실질적이다", "24일부터 27일까지 확실히 보이지 않은 북한 잠수함(정) 2척이 있다"(이상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는 등 정제되지 않은 말을 마구 쏟아냈다.

군인이면 말단 병사도 배우는 게 '첩보를 정보로 오인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김 장관은 확인되지 않은 징후(첩보)를 흘려 온 국민이 이를 사실(정보)로 착각하게끔 한 장본인이다.

김 장관의 이같은 발언들은 결국 천안함 사태의 본질인 안보 태세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게 하고, 여론이 북한이 연루됐는지 아닌지에 대한 공방으로만 쏠리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군은 언론에 그토록 "안보 문제가 있으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나, 군사기밀을 흘린 건 오히려 국방부 장관이었다. 2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북한 잠수정 기지의 위치와 한미 정보당국의 추적 현황, 그리고 사고 당일 북한 잠수함의 움직임을 설명한 게 대표적이다.

김 장관의 말은 결국 한국과 미국의 잠수함 감시체계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군사적 약점을 노출하는 결과만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언론이 그토록 공개를 요구한 교신일지와 군의 적 감시 능력·체계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군사적 기밀인지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당초 이달 1일로 예정됐던 국방부의 장성급 인사는 오는 21일로 연기됐다. 그리고 천안함 침몰 사태가 마무리된 후로 재차 미뤄졌다. 다음 인사에서 누가 책임을 지는가를 온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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