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외부적 충격 요인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두 가지 가능성은 어뢰와 기뢰였다. 그러나 그 중에서 실제로 무엇이, 어떤 이유 때문에 배를 폭파시켰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우 제기되는 수많은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
물기둥 생성 여부 확인해야
천안함이 어뢰나 기뢰에 의해 폭파됐음을 입증하려면 생존 장병들의 증언과 상충되는 부분을 넘어서야 한다.
우선 사고 당시 물기둥이 생성됐음이 입증돼야 외부 피격이 들어맞는다. 사고 당시 견시근무자였던 황보상준 일병은 지난 7일 생존 장병 기자회견에서 물기둥을 보지도, 물기둥이 생기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사고 해역에 바다 생물의 사체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기뢰나 어뢰 폭발의 가능성과 충돌한다. 수중에서 강력한 폭발이 있었다면 해양 생물의 사체가 무수히 물 위로 떠올라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생존자들의 부상 상태가 경미하고, 생존자들이 일제히 화약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말한 점도 설명되어야 한다.
서상권 전 제독(예비역 해군 준장)은 이같은 이유 때문에 여전히 외부 충격설을 경계했다. 서 제독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사건"이라며 "TV에 나온 절단면은 외부 철판이 아니라 내부 기관이나 장치가 튀어나온 것 같다. 어뢰나 기뢰가 때렸다면 구멍이 보이고 철판이 너덜너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15일 서울역에 모인 시민들이 천안함 인양 특보를 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 어뢰일 경우
민·군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어뢰가 천안함 왼쪽 수중에서 폭발한 것으로 드러나면 북한 또는 제3의 세력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가정이 크게 힘을 받는다. 그러나 이때는 우선 천안함의 소나(SONAR, 음파탐지기)가 왜 어뢰를 발견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한나라당)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천안함과 속초함은 대잠함이기 때문에 대잠 폭뢰와 소나를 갖춘 배"라며 "당시 파고가 높아서 반잠수정의 은밀한 접근은 몰랐을 수 있으나 어뢰에서 나는 소리는 100% 소나가 감지한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기자회견에서 "특별한 상황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어뢰 공격 징후는 없었다는 말이다. 김 국방위원장의 말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사고 당시 천안함은 소나를 가동하지 않았거나, 어뢰에 피격당한 게 아니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 어뢰를 운반한 잠수정이나 잠수함이 어떻게 서해로 넘어들어왔는가도 규명해야 한다. 서상권 전 제독은 "서해는 수심이 낮고 암초의 위협도 있는데다 어민들이 쳐놓은 까나리 그물이 많아서 영해를 아는 아군이 아닌 이상 작전이 쉽지 않은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외부 피격설이 거론되던 초기 가장 유력한 공격기로 꼽힌 것은 북한의 반잠수정이었다. 그러나 김태영 국방부 장관에 따르면 반잠수정이 장착한 어뢰는 탄두 중량이 45kg에 불과한 경어뢰다. 천안함을 두 쪽으로 갈라놓기에는 역부족이다.
이후 군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된 주장은 상어급(350t) 잠수함의 중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상어급 잠수함이 얕은 서해 바다에 설치된 그물망을 어떻게 헤치고 천안함에 접근했는가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 기뢰일 경우
기뢰가 천안함 하부에서 폭발한 것으로 밝혀지면 책임 규명은 다시금 미궁에 빠져들 수 있다. 아군 기뢰인지 북한 기뢰인지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군 전문가들은 북한이 기뢰를 설치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이 최신식 기뢰를 보유하고 있다고 단정키 어려운데다, 기뢰 설치는 사실상 전면전을 의미한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예비역 일부는 한국군이나 미군이 뿌려둔 기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놨다. <프레시안>과 지난달 29일 만난 전 백령도 해병6여단 예비역은 "지난 70년대 북한 잠수정을 막기 위해 아군이 설치했다 유실된 기뢰를 직접 목격했다. 이를 수거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한겨레21>은 806호 기사에서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와 인터뷰를 통해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의 '백령도 요새화' 지시에 따라 미군 폭뢰를 개조한 기뢰 136개를 백령도 인근 해역에 설치했다"며 "10년 뒤 회수한 기뢰는 채 10%도 안 된다"고 보도했다. 사고 해역 주변에 유실된 200kg의 원통형 기뢰 100여 개가 천안함 폭발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군은 "과거 한국군이 설치한 기뢰 대부분을 수거했다"며 아군 기뢰에 의한 폭파 가능성을 일축했다. 군의 주장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기뢰가 터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겨레21>은 유실 기뢰를 두고 "전기식 뇌관을 넣어 육지에서 상륙하는 적을 보고 터뜨리는 방식으로 개조했다"고 설명했다.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해병 예비역은 "당시 우리가 확인한 기뢰는 도전선(전기선이 기폭제로 활용)이 설치된 구식 기뢰였다"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터지지 않았고, 반응력도 떨어지는 구식 기뢰가 왜 하필 그날 터졌는지를 설명할 길이 묘연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전기적 작용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이들 기뢰가 터졌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서 제독은 "누가 뿌렸건 간에 최소 30년이 지난 기뢰가 지금 와서 터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천안함 함미 인양이 시작된 15일 오후 백령도 앞바다에서 인양팀이 함미 배수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북한 공격은 어떻게 입증하나
이들 의문을 모두 풀려서 어뢰 혹은 기뢰로 결론이 난다면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찾느냐다. 보수언론은 사실상 북한의 공격으로 정황을 몰아가고 있다.
청와대 안보 분야에서 근무했던 전직 고위 공무원 A 씨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주장은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와서 때리고 갔다는 말만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군과 미군의 정보망을 뚫고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후 유유히 도망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29일 "사고에 제3자가 개입했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A 씨는 "북한의 소행이라면 스타인버그 부장관이 나서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며 "지형적으로도 NLL 근방도 아닌 한참 아래까지 북한이 내려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고 이후의 정황을 봐도 북한 연루설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사고 이후 백령도에 간 것이 북한의 개입 가능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A 씨는 "북한 소행이 맞다면 사실상 전쟁 행위이고 분단 이후 최악의 사태인데, 대통령이 그 위험한 백령도에 직접 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실상 전쟁 행위가 발생한 한국이 차기 핵안보 정상회의를 유치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이 그에 동의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안보상 큰 문제가 생긴 나라에서 50명이 넘는 정상이 모이는 행사가 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북한의 소행에 따른 사고였다는 것을 알고도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미국이나 한국 모두 심각한 안보 불감증을 가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아군 천안함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올리고도 이를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문이다. 북한이 실제 천안함 침몰에 관여했다면 아군 군사력 과시를 위해 이를 대내외에 알리는 게 정상이다.
만약 북한의 공격도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면 상황은 영구미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아군의 오폭 가능성은 군이 몰랐을 리가 없고, 지금처럼 정보의 유통이 자유로운 시대에 알면서도 감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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