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경비는 시설 보호를 목적으로 노동현장에 들어온다. 노조원들이 쟁의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시설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사용자들은 설명한다.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 돈 들여 용역 경비를 사용한다는데 대놓고 토를 달기란 힘들다.
그러나 용역 경비는 항상 말썽이다. 노조원을 감시하거나 때론 무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회사가 노조원에 대해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하게 되면 노조원의 회사 출입을 막는 일이 용역 경비의 주된 임무가 되기도 한다.
들어가려는 노동자와 막아서는 용역 경비
1년 넘게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는 충북 청주 소재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업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회사는 이 회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한 이후 용역 경비 수백 명을 공장 정문에 배치했다. 노동자들이 회사 안으로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군산 소재의 KM&I 사업장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 역시 노조가 파업을 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격적으로 직장폐쇄를 한 뒤 용역 경비를 동원해 노조원의 회사 출입을 봉쇄했다. 이때부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회사에 들어가려는 노동자와 이를 막으려는 용역 경비 간의 전투다.
사실 이 전투는 처절하지만 대개 손쉽게 끝난다. 운동으로 단련된 용역 경비를 뚫고 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용역 경비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노동자들은 추풍낙엽으로 뒤로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울분을 삼키며 뒤로 돌아서 그 앞에 농성장을 꾸린다.
성희롱 등 인권침해 논란도 많아
물리적 충돌뿐만이 아니다. 인권침해 논란도 심심찮게 들린다. 특히 여성 조합원이 많은 사업장에서 인권침해 주장이 많이 제기된다. 용역 경비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 주요 역할을 했던 세종병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병원은 연초부터 극심한 노사 분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세종병원 노조와 이 노조 상급단체인 보건의료노조는 용역 경비직원들이 노조원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여성 조합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신체적 상해를 입히는 등 성희롱을 자행했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당시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용역 깡패들은 병원 로비가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을 이용해 극악한 성희롱을 일삼았다"며 "여성조합원의 가슴과 음부를 손과 발로 가격하고, 심지어 임산부에게도 물대포를 퍼부었다"고 인권침해 사실을 폭로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용역 경비들이 여성 조합원을 무력화시키는 일환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폭언과 신체적 접촉을 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여성조합원은 물리적 폭력과 함께 성희롱까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와 경찰은 '손 안 대고 코 풀기'
한편 사용자 입장에서는 용역 경비는 매우 긴요한 존재다. 용역 경비는 노조원을 직접 맞상대 할 일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노조원의 분노와 관심을 용역 경비에게 집중시킨 뒤 사용자 자신은 한 발 물러서서 진행상황을 예의 주시하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사용자들은 용역 경비를 동원하는 데 드는 많은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다. KM&I의 경우 용역 경비를 동원하면서 총 20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역시 지난 1년여 간 용역 경비를 동원하면서 300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고 금속노조는 파악하고 있다.
경찰도 용역 경비가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폭력 경찰'이란 말을 안 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조원과의 직접적 충돌로 발생할 수 있는 병력 손실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용역 경비와 노조원 간의 충돌이 일어날 때 경찰은 한 발 치 뒤로 물러나 있으면 된다.
물론 이런 경찰 태도에 대해 노조원은 항의한다. 눈 앞에 벌어지는 불법행위를 가만히 놔둬서야 되느냐는 항변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찰들은 "노사 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만 되뇌고 있다.
용역경비 동원, 노사관계 더욱 악화시켜
이런 이유로 용역 경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에 따르면, 경비업체는 지난해 기준으로 2004년보다 8.31% 증가했고, 경비원도 2004년과 비교해 15.73% 증가했다. 물론 이 모두가 노동쟁의 현장에 동원된 것은 아니지만, 노동쟁의 현장에 용역 경비 투입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동 쟁의 현장에 용역 경비가 동원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노사 관계도 그만큼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노사 간 진지한 교섭과 협상이 필요하지만 노조는 용역 경비와 맞서느라, 사용자는 용역 경비 뒤에서 뒷짐을 지고 있느라 교섭의 진전이 더디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KM&I 군산 공장에 갔다가 용역 경비에 막혀 발길을 돌렸던 박세준 노조 위원장은 "용역 경비에 막히는 순간 대화고 뭐고 화부터 치밀었다"며 "자기 회사 직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회사와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냐"라고 토로했다.
용역 경비를 동원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얼마간의 자금과 사회적 비난 여론만 감수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 쟁의가 발생한 근본원인까지 용역 경비가 해소시키지는 않는다. 노사 관계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원한만 쌓이고, 사용자는 장기간 노동쟁의를 감수해야 한다.
합리적 노사관계 정착의 지름길은?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사안정이 강조된다. 이와 함께 전투적 노동운동을 넘어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가자는 주장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합리적 노사관계는 단지 노조가 노동쟁의를 하지 않고 사용자의 계획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노사가 공동 관심사에 대해 갈등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 노사관계의 본질적인 내용일 터이다. 이럴진대 용역 경비의 폭력이 노동현장에서 난무하는 상황에서 과연 노사 간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노동운동이 보다 더 전투적으로 변해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날이 깊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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