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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곰은 마늘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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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의 곰은 마늘을 먹지 않았다?!"

[판다곰의 음식 여행·4] 과연 무엇이 우리 것이냐

우리는 흔히 '우리 것이 좋다'라는 말을 쓴다. 그것이 먹을거리라면 더욱 그렇다. '신토불이(身土不二)'도 자주 쓰는 말이다. 이 말이야, 범람하는 외국 농산물로부터 우리 농민을 보호하고자 우리 농산물을 먹자는 캠페인의 표어로 농협에서 쓴 것이 유행해서 이제는 거의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 말의 뜻은 '우리 흙에서 난 우리 작물이 우리 몸에 맞는다'인데, '우리 흙'은 문제가 없지만 '우리 작물'은 문제가 있다. 무엇을 우리 작물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 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식물은 우리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식물들 대부분은 우리 땅에서 자생하던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쌀, 보리, 밀과 같은 곡식만 보아도 그렇다. 확실히 어느 때라고 못을 박기는 쉽지 않지만 이들 작물도 먼 길을 돌아 우리 땅에까지 전래된 것이다.

더군다나 쌀과 같은 작물들은 현재 기르는 것과 옛날에 기르던 것이 다르다. 주곡의 부족이 문제가 되자 농촌진흥청에서는 많은 쌀을 얻을 수 있는 종자를 개발했고 이들 대부분은 필리핀과 동남아시아에 남아 있던 벼들과 성질을 섞은 것이었다. 이제는 밥맛이 기준인 종자를 심지만, 이것들도 다른 여러 종이 섞인 것이라 국적을 논할 수 없는 다국적 종자들이다.

채소는 어떨까? 고구마, 감자, 호박, 토마토, 고추 같은 것은 신대륙이 원산지이기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는 구대륙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자명하다. 하지만 다른 채소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중국의 배추, 인도 북부의 오이와 순무, 페르시아의 양파, 카스피 해 서안의 무, 소아시아 반도의 당근, 이탈리아 북부의 양배추, 발칸 반도의 우엉, 인도의 가지와 연근, 미얀마의 토란, 자바 섬의 생강 등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식재료의 원산지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파와 마늘만 하더라도 원산지가 중앙아시아다. 쪽파는 오래된 것이지만 대파는 최근에야 들어왔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이 쑥과 함께 먹은 마늘도 아마도 지금의 마늘이 아니라 달래와 같은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먹는 마늘은 한나라 때에 장건이 중앙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고유종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은 몇몇 나물을 빼면 거의 없는 셈이다.

우리가 길러 잡아먹는 동물은 또 어떨까? 소와 돼지와 닭을 기른 것은 아주 오래되었을지 몰라도 소를 제외한 가축은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르는 축산물 대부분은 종자를 외국에서 들여왔다. 한우는 우리나라에서 기른 지 무척 오래된 종이지만 육우와 젖소는 해방 후에야 들어왔다. 원래 기르던 돼지, 닭, 오리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대부분 종자는 불과 몇십 년 전에 들여다 번식시킨 것으로, 빨리 크게 자라고 고기의 질이 좋거나 젖이 많이 나오거나 알을 많이 낳는 종자다.

원래 기르던 것이라 하더라도 이 또한 먼 옛날에 가져와 번식시킨 것이다. 이들이 먹는 사료도 대부분 수입한 것이니 고기에서 '신토불이'라는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신선함이나 유래를 믿을 만하다는 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을 지닌다는 사실은 확연하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이 먹는 것은 대동소이하고 다만 기후와 토양에 따라 몇몇 특산물이 눈에 띨 뿐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농사짓고 가축을 길러 먹는 곳이라면 모두, 인류와 함께 여행하며 종자를 개량해온 외래종을 먹는 것이고, 본디부터 제 땅에서 자란 작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모든 것은 서로 전파하고 전해 받으면서 개량하고 다시 기나긴 여행을 겪는다. 일방적으로 전해만 주거나 전해만 받은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들어온 시기와 재배하기 시작한 역사만 있을 뿐이다. 지금 세상에는 자기 땅에서 자생하는 '우리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지에 고립된 원주민밖에 없다.

콜럼버스의 음식 혁명

식물은 발이 달리지 않았기에 일정한 지역의 범위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 종자가 멀리 퍼지려면 인간과 동물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물은 대부분 자기 영역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파 범위가 넓지 못하다. 가장 많이, 가장 넓게 이동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작물은 인간이 일부러 옮겨 심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먹을 수 있고 허기를 채워주고 맛있는 유용한 작물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사는 곳에 씨를 뿌리고 거두려 한다. 물론 이웃의 번성함을 시기해 유용한 작물을 옮기지 못하게 하려는 방해공작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종자의 이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유용한 작물들이 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구대륙에서도 꾸준히 사람을 통해 씨앗과 묘목들을 주고받으면서 인류의 식량 자원들은 퍼져 나갔다. 구대륙에서의 전파는 그래도 점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쌀과 밀, 콩과 목화를 주고받은 역사를 살펴보면 이 또한 무척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다만 오랜 세월에 희석되었을 뿐이다.

근세에 들어서 무엇보다도 현 세대 인류의 음식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신대륙과 구대륙의 만남이었다. 유럽의 시각에서는 '콜럼버스의 발견'이라 치부되는 사건이겠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틀림없는 두 대륙 식물들의 인공적인 만남이었다. 인류가 태어나기도 전에는 한데 뭉쳐 있던 대륙들이 갈라지면서, 식물들은 각기 저마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를 계속해왔다.

식물들만 스스로 진화한 게 아니다. 구대륙과 신대륙으로 나뉘어 살던 인류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부터 종자를 선별하여 인간의 입맛에 맞는 종자만 번성을 부추겼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대서양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던 종자들이 구대륙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갑자기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특히 식물은 기후만 맞으면 자신이 자라온 환경보다 새로운 대륙에서 훨씬 더 번창하는 것 같다. 구대륙에서는 신대륙의 식물들이 토종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외래종으로 여겨지고 신대륙에서는 그 반대의 경향이 나타난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작물은 오랫동안 함께 공진화했던 곤충과 바이러스의 습격이라는 그물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토착종보다 더 뛰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교통의 급속한 발달로 곤충과 바이러스도 함께 이주하고 진화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프레시안(손문상)

음식도 사람을 따라 이사한다

흔히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만 새로운 종자들이 퍼졌다는 것은 구대륙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가 고향인 커피는 아랍인들의 음료가 되었다가 유럽인들에 의해 신대륙으로 건너간다. 생산량은 이제 구대륙보다 많아져서 신대륙의 이름을 단 콜롬비아, 과테말라, 브라질 같은 커피 품종이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 커피는 지구를 다시 돌아 이제는 동남아시아와 네팔에까지 그 영역을 넓힌다.

인도가 원산인 사탕수수는 카리브 해 일대를 사탕수수밭으로 변모시켜 대부분의 설탕은 여기서 생산되며, 당밀로 만든 값싼 증류주인 럼은 신대륙과 구대륙을 오가던 뱃사람의 술이 되었다. 지금은 브라질이 사탕수수의 최대 재배지이고, 원산지인 인도는 그다음이다. 브라질은 풍부한 사탕수수를 이용해 에탄올을 만들어 자동차 연료로 쓰고 있다.

구대륙에서 건너간 밀과 콩도 남북아메리카 평원에 자리 잡아 최대의 곡물 생산지가 되었다. 면화는 북미 동남부에 자리 잡아 무명실뿐만 아니라 면실유도 대량으로 공급한다. 땅콩은 남미가 원산이지만 신대륙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북미 대륙으로 이동하여 세계 최대의 땅콩 농장을 이룬다. 땅콩버터라 불리는 것도 거의 여기서 만든 것이다.

예전에 신대륙을 점거했던 옥수수와 감자, 토마토와 고추, 호박 등의 작물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작물이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했다. 북미와 남미의 대평원들이 지금은 세계를 먹이는 식량 창고가 된 것은 대부분이 구대륙에서 건너간 작물들 덕분이다.

신대륙 작물 중에서도 고추와 토마토, 호박과 같은 몇몇 채소는 새로운 요리의 재료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토마토와 호박은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장 흔한 식재료가 되었다. 또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처럼 폭넓은 사랑을 받은 작물도 흔치 않다. 신대륙에서 '신들의 열매'라 불렸던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화폐로 이용될 만큼 귀했다. 그러던 것이 유럽에서 귀중한 음료로 대접받고 그래서 카카오의 수요가 증가하자 유럽인들은 카카오나무를 아프리카에 심었다.

그 사이에 초콜릿은 고귀한 귀족들의 음료에서 시작해 고형물인 초콜릿으로 바뀌어 공장에서 생산되는 가장 환영받는 간식으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 카카오는 이렇듯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주산지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옮겼다. 지금은 세계에서 아프리카가 가장 많은 카카오를 생산한다.

68억 인구를 살찌운 구황작물

특히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는 구대륙의 식량 부족을 메웠으며 구대륙의 기근 해소와 인구 증가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옥수수와 감자는 짧은 생육 기간과 폭넓은 적응력 때문에,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구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구황식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이제는 이 둘은 단순한 구황식물을 넘어 전 세계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귀중한 작물이다.

모든 곡식이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옥수수야말로 사람의 손길이 가장 많이 필요한 작물이다. 곡식의 낱알은 번식을 위해 다 여문 씨앗이 저절로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낱알이 떨어지는 곡식은 인간이 곡식을 거두려면 노동의 효율성을 지극히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낱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종자만 골라 심어 지금과 같은 밀과 보리, 쌀처럼 다 익어도 이삭에 그대로 붙어 있는 곡식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옥수수는 더욱 특이하다. 알갱이가 다 익어도 떨어지기는커녕 몇 겹의 껍질이 씨앗을 보호한다. 사람의 손길이 없으면 자연 상태로는 절대로 번식하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다. 원시 옥수수의 경우에는 낱알이 몇 되지도 않았지만 다 익으면 저절로 씨앗이 멀리 튀었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공이었던 원주민들의 놀라운 육종 기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옥수수에는 치명적인 결함 두 가지가 있었다. 옥수수의 첫 번째 결함은 단단한 껍질이었다. 지금도 옥수수 튀밥은 단단한 껍질이 달라붙어 있기에 목에 걸리는 경우가 생긴다. 요즘은 말린 옥수수를 제분기에서 거피하는 기술이 생겼지만, 과거에는 주식으로 삼기에 이 단단한 껍질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닐 수 없었다.

또 옥수수에는 펠리그라니아신이라는 필수 아미노산 성분이 다른 곡물에 비해 적은 것도 또 하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할 경우 펠리그라병과 같은, 필수 영양소의 부족으로 인한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는 옥수수가 가축 사료 이외의 용도를 넘어서기 어려웠고 주곡의 보조 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하지만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던 중남미 사람들은 이런 영양 결핍을 겪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옥수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껍질 벗기기'와 같은 혁신적인 가공법으로 단점을 뛰어넘었다. '껍질 벗기기'란 옥수수 알갱이를 석회, 달팽이 껍데기, 숯과 함께 삶고 하루가 지나 성가신 껍질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성가신 껍질을 제거해 가공하기 쉬워질뿐더러 조개껍데기에 있는 탄산칼슘의 화학 작용으로 필수 아미노산의 부족도 채울 수 있었다. 구대륙에 전해진 옥수수는 이런 가공 과정을 생략한 채로 전달되었기에, 많은 장점이 사라진 불완전한 곡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축 사료로 가장 많이 재배되던 옥수수가 사탕수수와 함께 바이오 연료의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지금 먹는 것이 바로 우리 것

우리나라에서도 옥수수와 감자는 배고픔을 구한 소중한 작물이었다. 특히 날이 춥고 비탈진 밭만 있는 함경도와 강원도에서는 거의 주식의 지위를 차지한 소중한 작물이었다. 밥과 수제비, 범벅과 같이 주식으로 이용할뿐더러 올챙이묵, 옹심이, 떡, 부침 등 간식과 반찬의 주재료가 되었다. 또한 옥수수로 술도 담그고 엿도 고아 여느 곡식 못지않은 훌륭한 쓰임새를 발굴해내었다.

이제 우리는 옥수수와 감자, 호박과 고추를 외래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에서 들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작물들도 지금은 신기하게 여기고 새롭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감자나 호박, 고추처럼 본디부터 있던 것으로 여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늘 먹는 것들의 유래를 따져보면 원래부터 우리 것이었던 것은 지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본디 이 지구가 배태한 식물들의 하나이니, 그 어디에서 왔든지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길러 먹는 것들은 다 우리네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이 재료의 새로운 용도를 발굴해 새로운 음식 맛을 낸다면 더 바람직한 우리 음식이 될 것이다. 식량자급률이 30퍼센트도 채 되지 못하는 이 땅에서는 우리 땅에서 조금 더 많은 음식 재료를 길러내는 것이, 그래서 조금 더 신선한 음식을 먹는 것이 진정한 신토불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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