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멀쩡한 논밭을 수장하는 이명박 정부가 한 편으로는 외국의 논밭을 확보하는 중이다.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탄자니아 등의 논밭을 확보해서 쌀, 보리, 밀, 콩 등을 안정적으로 들여오겠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논밭을 다 없애도 이렇게 안정적으로 먹을거리만 공급된다면 무엇이 걱정이냐, 이런 발상이다.
이런 생각은 공교롭게도 월든 벨로가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김기근 옮김, 더숲 펴냄)에서 소개한 미국의 레이건 정부 때 농무부 장관이었던 존 블록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축산 업체의 사장이었던 블록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게 '식량 안보(food security)'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식량 자급은 과거에나 통용되었던 시대착오적 발상이야. 미국 농산물을 언제 어디서나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식량을 자급해?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은 미국의 농산물을 믿고 의지하는 게 식량 확보를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 (이게 바로 '식량 안보'라네!)"
과연 그럴까? 벨로는 2008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먹을거리 가격의 폭등 사태를 분석하면서 이런 블록의 말을 그대로 믿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2008년 국민에게 먹일 쌀이 없어서 벼랑 끝에 몰렸던 필리핀의 사정부터 살펴보자. 필리핀은 블록의 말을 믿었다 지옥으로 떨어진 경우다.
필리핀의 전철을 밟는 한국?
▲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월든 벨로 지음, 김기근 옮김, 더숲 펴냄).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필리핀의 그 많던 쌀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필리핀은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의 체질을 바꾸자면서 개방에 박차를 가했다. 세계은행의 압박을 못 이긴 코라손 아키노와 같은 민주화를 이끈 정치인이 경제의 빗장을 풀면서 외국 상품, 외국 자본이 필리핀을 덮쳤다. 이런 과정의 말로는 뻔하다. 결국,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애초 경제의 체질이 약했던 필리핀은 곧바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외채 상환이 국가 예산의 맨 앞에 오면서 1994년에는 정부 지출의 24퍼센트가 이자로 나가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공무원 급여를 제외한 다른 정부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농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런 상황을 의도한 세계은행 등은 정부가 사라진 자리를 시장이 채우리라 전망했다.
"예산이 가장 많이 삭감된 항목 중 하나가 농업이었다. 농업 예산은 1982년 마르코스 집권 당시 정부 지출의 7.5퍼센트를 차지했지만, 1988년 아키노 정부에서는 3.3퍼센트로 절반 이상 줄었다. 여기에 세계 경제 침체까지 겹치자 농민은 농촌을 떠났다. (이렇게 농민이 떠난 자리를) 시장은 메우지 못했다."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한 농업은 1995년 필리핀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완전히 죽었다. 우선 국내 생산이 소비를 감당하지 못한 쌀의 수입이 늘었다. 쌀 수입량은 1995년 26만3000톤에서 1998년 210만 톤으로 늘었다. 옥수수, 채소 등과 같은 다른 먹을거리도 싼값으로 시장을 먹어치우는 미국 등의 외국산 탓에 고사되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필리핀은 쌀을 비롯한 먹을거리의 자급을 포기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 싼 먹을거리를 무한정 공급하겠다, 이런 블록의 약속을 미국은 물론 다른 어떤 나라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의 조국 필리핀의 미래를 벨로는 이렇게 암울하게 전망한다.
"지금의 상황이라면 필리핀은 앞으로도 영원히 쌀 수입국으로 남게 될 것이고, 다른 농작물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 농촌이 국가 경제 재건의 핵심 요소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외국 기업에 임대할 농장이 소재한 곳으로만 보고 있다."
소농이 대안이다
벨로가 내놓는 대안은 블록이 말하는 '식량 안보'와는 다르다. 그는 대신 '식량 주권(food sovereignty)'을 강조한다. 이 식량 주권의 첫 번째 목표는 '식량 자급'이다. 한국이 쌀을 자급하듯이, 또 필리핀이 1980년대 중반까지 그랬듯이, 한 나라의 농민이 그 나라에서 소비되는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눈여겨봐야 할 열쇳말이 또 있다. 이렇게 한 나라 먹을거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농민은 누구인가? 벨로는 수천 년간 인류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온 '소농(영세농)'을 그 일의 적임자로 간주한다. '농민의 소멸'을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믿고, 기존의 영세농 대신 기업농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먹을거리 부족 문제의 해결책을 기업농에서 찾을지, 영세농에서 찾을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 적은 농토에 기대어 노동 집약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기업농보다 훨씬 더 높은 생산성을 올림으로써 영세농이 사라져야 한다고 역설했던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의 농업을 분석한 결과, 소규모 농가의 1에이커(약 1200평)당 생산량이 기업농에 비해 적게는 세 배에서 많게는 열네 배에 이를 정도로 높게 나타났다. (…) 남반구, 북반구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농민이 종잡을 수 없는 자본의 논리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소박한 농부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이런 주장에 '낭만주의' 딱지를 붙이고 싶은 지식인이 많으리라. 이런 이들은 제1세계에 포박된 자신의 좁은 시야부터 탓해야 할 것이다. 소농은 여전히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다. 수백 년 전부터 진행된 산업화에도 소농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더구나 생산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이 소농은 여전히 인류의 먹을거리 대부분을 생산한다.
"남아메리카에서는 약 1700만 명의 소농이 6050만 헥타르의 땅을 경작한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양은 내수 소비를 기준으로 할 때, 옥수수는 51퍼센트, 콩은 77퍼센트, 감자는 61퍼센트에 이른다. 아프리카는 약 3300만 명의 소농이 전체 농지의 80퍼센트를 경작한다. 대부분이 여성인 이들 소농은 기초 곡물의 상당량을 생산한다." (미구엘 알티에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약 2억 명의 농민이 벼농사를 짓는데, 그 중 극히 일부만이 2헥타르(약 6000평) 이상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소농이 없다면, '소농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의 주장에 낭만주의 딱지를 붙이는 지식인은 당장 자신과 가족이 풀칠도 못할 것이다.
먹을거리 전쟁은 시작됐다!
한 나라 혹은 한 지역에서 먹을거리의 자급을 꾀하는 이런 소농이 탈세계화 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이들 소농은 최근 10년간 자본에 멱살을 잡혀 기를 못 펴는 노동자 대신 세계화에 맞서는,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조직적인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들은 미국을 등에 업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카길, 몬샌토 등 세계에서 가장 힘 센 권력은 물론이고, 이들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각국 정부에 맞서서 공동체의 먹을거리를 지키고자 목숨을 건 싸움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몇몇은 생명을 헌신하기도 했는데, 2003년 9월 10일 멕시코 칸쿤에서 자결한 고 이경해 씨가 그렇다.)
반갑게도 들의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먹을거리에 불안을 느낀 도시 사람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들의 싸움을 거들고 나섰다. 그들은 소농과 다양한 방식으로 직접 거래를 함으로써(농민장터, 생활협동조합, 공동체 지원 농업 프로그램 등) 먹을거리를 둘러싼 전쟁에 나섰다. 감히 말하건대, 이 전쟁의 결과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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