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백남기 부검 영장, 누가 법원을 움직였나?

[프레시안 뷰] '조건부 영장', 사법부 독립성에 치명상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어제(9월 28일)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돌아가신 고인의 시신을 가해자인 경찰에게 내맡기는 결정이었다.

유족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반대했고, 의료 전문가, 법률 전문가들도 "부검의 필요성이 없다"고 얘기했건만, 법원은 그런 목소리를 무시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면서 조건을 붙이기는 했다. 부검 장소, 부검시 참관인 참석, 부검 절차 등에 대해 유족과 협의하라는 조건이다. 아마도 당연히 기각해야 하는 영장을 발부하면서, 스스로도 부끄럽기는 했나 보다. 그러나 조건을 붙인다고 해서 말도 안되는 영장을 발부했다는 책임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불과 이틀 전에 "부검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된 영장인데, 이틀사이에 갑자기 부검의 필요성이 생길 수가 있는가?

'조건'의 효력도 의심스럽다. 만약 경찰이 법원이 제시한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물리력으로 부검을 밀어붙일 경우에 그것을 막을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원의 결정은 참으로 비겁한 결정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과정을 한번 되짚어 보자.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시점이 9월 25일(일) 오후 1시 58분경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경찰은 기다리기나 한 듯이 서울대병원 정문과 후문을 3500명의 병력으로 가로막았다. 심지어 환자 보호자들의 출입도 통제하고, 일반 빈소에 온 조문객들도 출입을 통제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이 '병사'했다고 적은 사망진단서가 등장하게 된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다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이 '병사'했다고 하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외인사'라고 적는 것이 맞음에도, 굳이 '병사'라고 적은 그 사망진단서는 의료계에서 작성하는 진단서 작성 지침에도 위반된 진단서였다. 사망 시점에 맞춰 등장한 수천 명의 경찰들과 이상한 사망진단서의 등장이 서로 무관한 것이었을까?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어디선가 치밀하게 사전 계획을 세운 것이 틀림없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게 되면 부검을 하고, 그것을 통해 사인을 '경찰의 물대포에 의한 뇌손상'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직후에 벌어진 일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의사의 사망진단서 작성,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깔리는 대규모 경찰 병력 배치일 수 있는가?

그리고 경찰은 25일 밤늦게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26일 새벽에 영장을 발부받아 새벽 6시~7시 쯤에 집행에 들어가겠다는 속셈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부검의 필요성이 없는 것이었기에 법원도 영장을 기각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 상황이다. 경찰은 영장이 기각되자마자 검찰과 협의해서 영장을 재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JTBC의 취재 결과 드러난 사실은, 검찰이 나서서 경찰에게 '이러저러하게 자료를 보완하고 논리를 만들어서 재신청하라'고 지휘했다는 것이다. 경찰만이 아니라 검찰도 깊숙이 개입된 기획임이 드러난 것이다.

부검 영장의 재신청은 26일 밤늦게 이뤄졌다. 역시 다음날 새벽에 영장이 발부되면 곧바로 집행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법원이 보기에는 여전히 부검의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원은 당연히 그 시점에서 재신청한 영장을 기각했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고 경찰과 검찰에게 추가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것 자체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영장을 어떻게든 발부해주기 위해서 명분을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위였다.


그리고 경찰과 검찰이 소명 자료를 제출하자, 법원은 조건을 붙여서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조건'의 효력도 애매하다. 결국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부검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것에 불과하다.

지난 며칠 간의 과정을 보면, 한편의 막장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죽게 만든 주체(경찰)가 한 일은 사과가 아니라, 수천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고인의 시신을 탈취하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부검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사망진단서가 등장했다.

그나마 법원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틀 만에 법원은 입장을 뒤집고 영장을 발부했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이고 비겁한 판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기획되고 통제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경찰청장이 물러나고, 더 나아가 국정의 최고책임자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거꾸로 고인의 유족들을 정부가 겁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끝내 백남기 농민의 시신에 대한 부검이 강제로 이뤄진다면, 이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법원이 발부한 '조건부 영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 고(故) 백남기 씨의 딸 백민주화 씨.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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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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