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경북 영덕에 최소 2개의 원전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주민들 사이에서는 반대 여론이 높습니다. 급기야 지역구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강석호 국회의원이 원전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조차도 주민투표에 찬성할 정도로 주민들의 반대여론이 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사기극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자신이 속한 집권여당이나 박근혜 정권의 입장은 원전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별 국회의원이 이것을 뒤집고 주민투표를 가능하게 할 정도의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주민투표 찬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면피용으로 얘기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박근혜 정권은 원전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를 할 생각이 전혀 없고, 지방자치단체가 시도하려고 해도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작년 10월에 강원도 삼척에서 원전 찬반 주민투표를 하려고 할 때에 행정자치부가 나서서 가로막았습니다. 원전은 국가사무이므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주민투표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투표관리 업무를 거부했습니다.
물론 이런 입장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원전에 대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만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어쨌든 정부의 방해로, 강원도 삼척의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가 아니라, 민간차원에서 독자적으로 하는 '법외 주민투표'로 치러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강석호 국회의원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2일 윤상직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회에서 '주민투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강석호 의원이 진정성 있게 주민투표에 찬성한다면,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정부의 입장을 바꿔내든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주민투표 추진에 앞장서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영덕군수의 입장은 더욱 웃깁니다. 2일자 <영남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희진 영덕군수는 "중앙정부가 허락하면 주민투표를 통해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을 묻겠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정부는 이미 '주민투표 불가' 입장을 밝혔는데, '중앙정부가 허락하면 주민투표를 하겠다'니, 이런 말장난이 어디 있습니까?
문제는 이런 식의 말장난이 지역주민들을 혼동시킬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군수, 군의회가 뭔가를 해 주지 않겠느냐? 는 헛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을 포함한 원전추진 세력들은 이미 영덕에 홍보관을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도 이들은 핵발전소나 핵폐기장과 관련해서 돈을 뿌리면서 지역여론을 호도하는 작업을 수없이 했습니다. 이들은 지역주민들이 힘을 모으지 못하도록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일들을 벌일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은 주민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민투표를 정말 하려고 한다면, 어렵더라도 민간차원에서 주민들이 추진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영덕 주민들은 아직도 원전이 들어설 경우에 지역사회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 감이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닥치지 않은 미래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전이 들어선 영덕은, 지금까지의 영덕과는 전혀 다른 곳이 될 것입니다. '영덕 대게'는 더 이상 사람들이 선호하는 수산물이 아닐 것입니다. 지역의 농민들에게도 타격이 있을 것입니다.
원전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는 방사능물질은 영덕의 바다와 땅, 지하수를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원전에서는 매년 500조 베크렐이 넘는 방사능물질이 배출됩니다. '방사능 유출물'이라는 이름으로 배출되는 방사능 물질은 액체와 기체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영덕에 설치될 원전에서도 역시 방사능 물질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주간 프레시안 뷰'에 제가 쓴 적이 있습니다.
(☞관련 기사 : 정상가동 원전은 안전? 천만에)
문제는 영덕 주민들이 아직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모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주민투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이 문제를 영덕 주민들에게만 맡겨놓을 일은 아닙니다. 원전이 영덕주민들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원전을 더 이상 지을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주간 프레시안 뷰'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발전소가 남아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경기도의 남경필 도지사가 2030년까지 경기도의 전력자급률을 현재의 29.6%에서 7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경기도에서 필요한 전기는 경기도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해안에 새로운 원전을 지을 이유는 전혀 없게 됩니다.
정부는 이런 사정까지 의식해서 원전 건설을 서두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경북 영덕이 참 중요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탈핵(탈원전)이냐, 원전 확대냐가 결정되게 생겼습니다. 영덕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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