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자화자찬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등 주권이 확대되었다는 것입니다. FTA 체결 같은 문제에서는 주권을 스스로 포기해 온 정부가 유독 핵 문제와 관련해서만 '주권' 운운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주권이 확보된 것이 아니라, 핵마피아들의 이권이 확보된 것입니다. 원전(핵)과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 즉 핵마피아들의 생각은 속이 훤하게 보입니다. 국내에서 원전반대 여론이 점점 높아지자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정부는 협정 개정 덕분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뿐만 아니라, 원전연료의 안정적 확보, 원전수출 촉진 등이 쉬워졌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정부는 지금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라는 기구를 구성해서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의견수렴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의견수렴도 끝나지 않았는데, 미국과는 서둘러 협상을 끝낸 것입니다. 만약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지 않기로 국내에서 의사결정이 된다면, 미국과의 협상은 쓸데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바꿔서 미국과의 협상부터 먼저 타결한 의도는 뻔합니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공식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재처리는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재처리를 하면, 원전(핵)과 관련된 이해관계집단들이야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서 이익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이익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재처리가 가능해졌다면서 원전을 늘리고, 원전관련 사업에 더 많은 국가예산을 투입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원전이 사양산업이 되고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핵마피아들은 오늘 또다른 '거사'를 계획했습니다.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 문제를 마무리하려고 한 것입니다. 신고리 3호기는 지금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허가를 앞두고 있는 원전입니다. 만약 가동이 되면 대한민국의 24번째 원전이 됩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제어밸브라는 핵심부품의 문제 때문에 운영허가를 못 받게 된 것입니다. 부품제조회사인 미국의 GE사가 부품에 문제가 있다며 '리콜'을 하겠다고 통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4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를 심의하다가, 이 문제 때문에 5~6개월 의결을 미루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불량부품이 장착된 상태에서 원전이 가동될 뻔한 것입니다.
신고리3호기는 그동안 숱하게 논란이 되었던 원전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했다고 자랑했던 모델이 바로 신고리 3호기 모델(APR-1400)입니다. 그리고 경남 밀양에서 주민들의 눈에 피눈물을 나게 했던 원전이 바로 신고리 3호기입니다. 정부는 신고리 3호기가 완공되면 새로운 송전선이 필요하다면서, 2013년 10월에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공사시작 직후에 신고리3호기에 장착된 '제어케이블'이라는 핵심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완공을 앞두고 있다던 신고리 3호기의 가동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밀양 주민들은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3호기의 제어케이블을 전면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교체해야 하는 제어케이블의 길이는 무려 674km에 달했습니다.
제어케이블 교체작업이 끝나간다던 시점에 신고리 3호기에서는 큰 안전사고가 일어났습니다. 2014년 12월 26일 신고리 3호기 공사현장에서 질소가스가 누출되어 노동자 3명이 숨진 것입니다. 숨진 노동자들은 원전건설 공사를 수주한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고용노동부는 신고리 3,4호기 공사현장을 특별 근로감독했습니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28건을 적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억울하게 죽은 목숨을 되살릴 수 없습니다. 신고리 3호기는 부패하고 위험한 원전사업의 본질을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신고리 3호기를 밀어붙입니다. 그러나 불안합니다. 제어케이블은 교체했다고 하지만, 신고리 3호기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많은 우려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부품공급업체가 '자진신고'하는 바람에 문제가 드러났지만, 또다른 문제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자체적으로는 원전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환경단체와 녹색당은 신고리 3호기의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신고리 3호기 모델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사전심사만 통과했을 뿐이고 본심사는 아직 통과하지 못한 상태라고 합니다.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곳에 많은 원전을 몰아서 짓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신고리 3호기까지 가동을 하게 되면,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서는 7개의 원전이 가동되게 됩니다. 이렇게 한 곳에 원전을 밀집해서 지으면 사고위험도 크다는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도 10개의 원전이 밀집해있던 지역이었습니다. 만약 정부의 계획대로 신고리 4,5,6호기까지 들어서면 고리-신고리 원전단지에도 10개의 원전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원전에 대해 위약금을 물지 않으려면 신고리 3호기를 빨리 가동해야 한다면서, 운영허가 절차를 밀어붙이려 합니다. 올해 9월까지 신고리 3호기를 가동하지 못하면 매달 공사비의 0.25%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와 체결한 원전수출 계약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약서가 공개되어야 어떤 식으로 계약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조차도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을 '위약금'으로 협박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이번에 터진 문제로 신고리 3호기 가동은 지연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신고리 3호기 가동을 서두를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력상황은 발전소가 전혀 모자라지 않는 상황입니다. 작년 겨울에 정부는 원전 10기 분량의 예비력이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전력수급 때문에 신고리 3호기 가동을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진짜 아랍에미리트와 체결한 계약이 문제라면, 계약서부터 공개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론에 붙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졸속으로, 밀실에서 일을 추진하다보니 이런 엉터리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안전이 생명인 원전이 부패로 찌들었습니다. 그리고 '리콜' 대상인 불량부품이 공급된 상태에서 원전이 가동될 뻔 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돈보다는 생명과 안전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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