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중국과 환경 협상을 시도조차 해 보지 않았고, 국내 요인에 대해서도 우선 순위에 관한 판단 없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발표하는 내용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국내 요인 중 하나인 석탄 화력 발전소만 해도 그렇습니다. 감사원은 지난 5월 10일 '수도권 대기 환경 개선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감사원은 충청남도 서해안에 있는 석탄 화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가 수도권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했습니다. 각각 수도권 대기 오염에 관한 기여율이 3~21%(미세 먼지), 4~28%(초미세 먼지)라는 것입니다.
이 감사 결과는 수도권 대기 환경 개선 정책에 대한 감사 결과였기 때문에 충청남도 지역 발전소의 수도권 영향만 거론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석탄 화력 발전소가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비(非)수도권에 사는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자 정부는 노후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겨우 3개의 낡은 석탄 화력 발전소를 폐쇄하면서, 2029년까지 무려 20기의 새로운 석탄 화력 발전소를 짓겠다고 합니다. 미세 먼지를 줄이겠다는 의지가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요즘 미세 먼지가 화두여서 상대적으로 묻혀 있지만, 핵발전소를 둘러싼 상황도 심각합니다. 지금도 25기나 되는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건설 중인 핵발전소까지 완공되면 대한민국의 핵발전소 수는 28개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라는 새로운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오는 6월 9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 6호기에 대한 건설 승인 심사를 할 예정입니다.
신고리 5, 6호기가 들어서면 고리-신고리 핵발전소 단지는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핵발전소 단지가 됩니다. 가장 낡은 고리 1호기가 폐쇄된다고 하더라도 9개의 핵발전소가 가동하게 되기 때문입니다(고리 2~4호기, 신고리1~6호기). 이렇게 여러 개의 핵발전소가 한 곳에 들어설 경우에는 안전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고리 5, 6호기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지적하면 어떤 분들은 묻습니다. '당신은 노후 석탄 화력 발전소는 폐쇄하고, 새로운 석탄 화력 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짓지 말자는 말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인 월성1호기까지 함께 폐쇄하자고 얘기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전력 공급에 문제가 없느냐?'라고 추가로 묻는다면, 역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정부가 폐쇄를 검토 중인 40년 넘은 석탄 화력 발전소의 설비 용량은 625메가와트에 불과합니다. 수명이 끝난 월성 1호기의 설비 용량도 679메가와트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지난 겨울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점(피크 타임)에도 대한민국의 예비 전력은 1만1821메가와트에 달했습니다. 이것은 전력 거래소 자료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40년 넘은 석탄 화력 발전소들과 월성1호기를 당장 폐쇄해도 대한민국 전력 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당장은 그렇다고 해도 앞으로를 생각하면 새로운 석탄 화력 발전소와 핵발전소를 지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있는 발전소와 완공 단계에 있는 발전소만 하더라도 발전소가 넘쳐나는 상황입니다. 2016년 5월 26일자 <에너지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올해 8월 피크 타임 기준 예비 전력은 1만7000메가와트에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발전소가 남아 돌아서 문제인 상황이므로, 새로운 발전소를 짓지 않더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전력 공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안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력 정책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미세 먼지를 줄이고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전력 정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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