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보수였어?"
극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가 주로 다루는 주제들이 난민, 무슬림, 페미니즘, 성소수자 그리고 불평등 해소인데 이게 극우가 가장 싫어하는 의제라서 그런 것 같다. 극우가 차별과 혐오를 결집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건 깊은 분석이 없어도 관찰되는 현상이니까 말이다. 답을 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진단이 쉽겠는가. 양극화,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정체성 위기, 극우 정치의 출현, 확증편향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알고리즘 등을 큰 그림으로 말할 수 있지만 찝찝하다. 그런다고 왜 그래? 이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다.
거시적 변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자신의 삶을 위기로 인지하고 억울하다는 추임새를 넣는다 해도, 그 억울함이 역차별 논리로 늘 확장되진 않는다. 무슬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짜증과 살벌한 적대행위로 나아가진 않는다. 촉발되는 무엇인가가 개인의 삶 속에 있어야만 한다. 그 미시적, 그래서 사람마다 같을 리 없는 일상 속에서 교집합을 포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그런다고 '왜 그렇게까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겹쳐지는 게 하나 있다. 극우가 되는 단서까지는 아닌데, '죽어도 진보가 싫다'는 입장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비슷한 증언이 있다. 바로 진보의 태도다. 보수의 태도가 싫어서 진보가 됐다는 사람은 드물지만, 반대는 정말 많다. 386 세대와 자녀 세대의 충돌도 비슷한 문법에서 발생한다. 지난 대선에서 자녀가 이준석이나 김문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386 세대와 그 언저리의 어른들이 꽤 있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한탄했지만, 전제부터가 틀렸다. 자녀가 왜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같아야 한다 말인가. 본인들은 부모님과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살았으면 말이다. 그러니 충돌한다. 자녀가 진보적이길 바라고 진보적 부모로서 솔선수범하는 것과, 나는 민주화 세대이니 너도 그런 정체성을 가져라는 건 간격이 너무 크다. 너무 비민주적이다.
그래서 자녀가 극우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 충돌은 누군가를 생각보다 강력하게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하는 연료가 된다. 한 번쯤이라면 변수가 되겠는가. 지속되니, 에너지로 전환된다. 386 세대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입장만큼은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반복 또 반복한다. 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전제에서 진행되는 숙의민주주의가 전혀 없다.
토론을 가장하지만, 평등하게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자녀가 일곱 살 때는 물론이고 열일곱 살 때도 말이다. 스물일곱 살이라고 다르지도 않다. 서른일곱 살이 되어도 분명 그럴 거다. 늘 듣기만 해야 하는 자는 어느 순간 선택한다. 강을 건너기로. 그리고 다짐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늘 말만 하는 이들은 이 상황을 나중에야 인지하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취조하듯이 묻는다. "너, 보수였어?"
티 나지 않게 티 내는 법을 모르는 세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모습도 비슷했다. 답답했고 투박했다. 충성을 맹세한 진영 안에서만 통할 말을 밖으로 내뱉는다. 유권자를 고민 끝에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이 아닌, 당연히 진보를 선택해야 하는 정치적 미숙아로 대한다. 내란 종식이란 말이 그렇다. 세상에나. 용지 여섯 일곱 장에 기표를 하는 지방선거에서 누가 하나의 의제로 투표를 한다 말인가.
설사 그게 중요하다 해도, 왜 자신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진솔하게 보여줘 상대가 진정성을 알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할 줄 모르고 사상검증에 능숙하다. 너, 보수냐면서 부모가 자녀를 의심하는 것과 닮았다. 이런 느낌이다. "내란 종식해야지? / 어, 그거 중요하지 / 그럼 민주당 찍어야지? / 아, 난 아직 잘 모르겠네 / 내란 종식하자며? / 어 그렇지 / 그러면서 국민의 힘 찍는다고?"
스스로를 너무 잘났다고 여기면, 옆 사람이 불쾌하다. 그 들뜬 모습을 마주하는 건 괴롭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저 괴이함 때문에, 겉으로 들어주는 척만 한다. '그래, 너 잘났다. 평생 그렇게 살아라'라는 속마음은 감춘다. 그러니 잘난 척을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지를 모르는 괴물이 된다. 세상 어디에나 마찬가지지만 권력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정치는 그 강도의 차원이 다르다. 그 안에서도 진보가 더 위험하다.
진보는 성향 자체가 기존의 문법을 깨는 것이기에, "내가 알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권력이 없을 때, 이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양심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권력을 과하게 가지면 타인의 접근을 봉쇄하는 바리케이드가 된다. 자기만 안다는 사람에게는 늘 본인만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가오니, 그는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살아간다. (웃긴 건, 이게 윤석열의 인생이었다는 거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검사였고,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부산 북구 보궐선거의 결과는 진보 진영의 잘난 척을 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정우란 사람을 청와대에서 끌고 와 선거판에 집어넣는 것부터 너무 소란스러웠다. 정청래 대표는 영입 과정이 힘들었다고 훗날 자서전에 한 줄 정도로 적으면 될 일을, 삼고초려가 아닌 삼십고초려라도 하겠다는 소문을 동네방네에 내기 바빴다. 오른손이 한 일을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이 사람들은 늘 이렇다. 티 나지 않게 티를 내는 법을 모른다.
그런데 청와대 AI 미래기획수석비서관은 보통 사람의 입장, 특히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저 요즘 시대와 어울리는 전문가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알 수 있는 조각은 되겠지만, 그걸 이유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면 그게 이유가 되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작부터, 거물을 어렵게 모시고 왔다는 느낌이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뭐야? 고마워라도 하라는 건가?
웃긴 건 정청래 대표 스스로가 하정우 전 비서관을 거물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빠라 해봐요"라는 꼴불견 에피소드가 등장했겠는가. 정치 신인을 도와주려다가 벌어진 일이라 해명하겠지만, 정확히는 하정우란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낮춰보니, 본인 태도가 엉망이 된다. 유권자를 어리게 보니 거물 모셔왔다고 난리를 치는 거고, 하정우를 어리게 보니 저딴 말을 농담이랍시고 한다. 이런 태도는 진보 진영에 넓게 퍼져있다. TV 토론이 끝나고 하정우와 한동훈이 토론하는 영상이 여기저기 부유했는데, 진보 쪽 평론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잘했다, 예리하다 이런 게 아니라 어린이집 장기자랑 시간에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49세(1977년생) 성인에게 말이다.
젊은 때 젊다고, 늙어선 늙었다고 주류가 된 세대
객관적으로 사람이 젊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정청래는 39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유시민 작가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탁됐을 때의 나이가 47세다. 왕 어르신 같은 대우를 받는 김부겸은 43세에, 추미애는 38세에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 역사 자체라는 고(故) 이해찬 총리는 36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42세에 의원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에 당선됐을 때의 나이가 46세였다. 보수도 비슷하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39세에 국회의원, 45세에 서울시장이 됐다. 김문수는 45세, 홍준표는 43세에 배지를 달았다.
20년 전에도 40대 정치인을 젊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어린애 취급을 하지 않았다. 패기가 있다고 했지, 젊은 사람이 패기가 있는 모습이 흐뭇하네 따위의 관전평이 드물었다. 참고로 국회의원 당선자 중 49세 이하 비중이 2004년 선거에는 43%였는데, 2024년에는 15%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16%였던 60대 이상 국회의원은 35%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들은 젊은 때 젊어서 주류였고, 늙어선 늙었다고 주류가 됐다.
그래서 대선후보로 291만 표를 얻은 41세 이준석 의원을 언제나 애처럼 대한다. 본인들이 그 나이 때 얼마나 거들먹거렸는지는 잊은 채 말이다. 그들이 존중받았던 건, 많은 이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구누구 보좌관 출신이라는 경력만으로도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라면서 깍듯하게 대했다. 그런 시대였고, 그렇게라도 민주화 세력이 커지고 단단해지길 간절히 원했다.
지금은 이 부채의식이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으니 늘 저런 태도다. 본인이 설득하지 못한 걸 죽어도 반성하지 않고, 내란 세력에 동조한 거냐는 따위의 말만 한다. 장담컨대, 다음 선거에서도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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