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조 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정치인들이 그 사업을 막기는 커녕, 그 사업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요즘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영남권 신공항' 또는 '동남권 신공항'으로 불리는 사업이 바로 그 사업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부산에서 당선된 5명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신공항대책본부'를 만들어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겠다고 합니다. 유력 대권주자라고 하는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6월 9일 가덕도 현장을 방문해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대구에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은 이를 두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한마디로 신공항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입지 선정을 따지기 이전에 따져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봤을 때는 '영남권에 신공항이 과연 필요한가?'부터 따지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하고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국가적인 판단은 뒷전으로 하는 행태를 더이상 보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남권 신공항' 또는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시작된 것은 꽤 오래 되었습니다. 1992년 부산시는 '부산권 신국제공항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고, 2000년에 중앙정부에 대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건의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12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 검토를 공식적으로 지시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3월에 건설교통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관한 타당성조사 용역을 국토연구원에 발주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총선에서도 계속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당시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당선 이후인 2008년 9월에는 동남권 신공항을 30대 광역 선도 프로젝트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들이 압축되면서, 가덕도를 신공항 부지로 하자는 측(부산)과 경남 밀양으로 하자는 측(대구, 경남, 경북, 울산) 간의 유치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신공항 건설의 타당성 문제는 사라지고, 오로지 지역민심을 동원해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정치인들, 그리고 지역의 토건세력들이 달라붙여 '이전투구'를 하는 양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2009년 9월에 발표하기로 했던 국토연구원의 용역결과는 3차례나 발표가 연기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나온 국토연구원의 용역결과는 부정적이었습니다. 가덕도의 경우에 1단계 공사비가 7조8000억 원, 2단계 공사비(2조 원)까지 합치면 총 공사비가 9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경남 밀양의 경우에도 1단계 공사비가 7조6000억 원, 2단계 공사비(2조7000억 원)까지 합치면 총공사비가 10조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처럼 막대한 공사비가 소요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대되는 수익은 못 미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비용편익(B/C) 분석에서 밀양(0.73), 가덕도(0.70)으로 모두 1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기대되는 수익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제적 타당성도 없는데다가, 공항 건설은 산을 깍아내는 등 막대한 환경 훼손을 가져올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 그래서 2011년 3월 30일 정부로부터 위임을 받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남권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는 가덕도와 밀양 모두가 신공항 입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위원회의 표현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단계 절대평가 결과, 3개 평가분야별 총점을 합산한 점수는 가덕도 38.3점, 밀양 39.9점이며, 위원회는 두 후보지 모두 불리한 지형 조건으로 인한 환경 훼손과 사업비가 과다하고 경제성이 미흡하여 공항 입지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절대평가 점수가 50점은 되어야 하는데, 두 곳 모두 낙제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이로써 논란이 되어 왔던 신공항 건설은 백지화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다시 박근혜 대통령이 신공항 건설을 들고 나왔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투어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신공항 건설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정해진 수순처럼 신공항 건설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4년 8월 국토교통부는 영남권 항공 수요 조사 용역 결과를 발표합니다. 항공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므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불과 3년 전에 타당성이 없어서 백지화하기로 했던 신공항이 다시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때부터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 곳에서 국제선 수요 예측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국토교통부는 다시 입지 선정을 포함한 용역을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발주해 줍니다. 그 결과가 다음주인 6월 24일에 발표될 예정인 것입니다.
이처럼 영남권 신공항은 추진과정 자체가 논란거리입니다. 타당성이 없다던 사업이 다시 타당성있는 사업으로 포장되어서 추진되고 있습니다. 입지 선정이 문제가 아니라, 사업 자체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10조 원 남짓한 예산이 낭비될 수 있습니다. 최근 부산시는 활주로를 줄여서 사업비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남 밀양시는 깍아내야 하는 산의 갯수를 27개에서 4개로 줄여서 사업비를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성을 짜맞추기 위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서 놀고 있는 공항들이 수두룩합니다. 35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강원도 양양공항은 국제공항으로 개항했지만, 하루 한편 정도의 국내선(김해-양양)만 운행되다가 최근에 주2회 중국과의 노선이 개항을 한 정도입니다.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연간 약 193만 명이 이용할 것이라고 예측됐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였습니다. 1160억 원이 투입된 경북 울진공항은 아예 개항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이곳 역시 연간 49만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공항입니다.
한국항공대 허희영 교수(경영학)는 2015년 5월 27일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 국토 면적에 두 개의 환승 공항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현재대로 추진된다면, 가덕도이든 밀양이든 신공항은 개항과 동시에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아마도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적자는 국고로 메워야 할 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가기 : "동남권 신공항 수요 조사의 오류 - 허희영 교수")
4대강 사업의 실패로 인해 강이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다시 세금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 사업을 벌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남권 신공항은 입지 선정이 문제가 아니라, 사업타당성에 대한 공론화부터 진행되어야 합니다. 최근 부산 녹색당은 성명서를 내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임있는 정치인 또는 정치세력이라면 '하늘로 간 4대강 사업'이 탄생하지 않도록 신공항의 타당성 문제를 검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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