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에 뒤통수 맞은 산업은행이 지금 해야 할 일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 본사와 체결한 CSA, 무슨 내용 담겼나

날이 갈수록 의혹만 깊어지는 한국GM의 재무구조, 이번엔 정말 낱낱이 밝혀낼 수 있을까? <인사이드 경제>는 그 중 핵심은 턱없이 높은 매출원가율이라고 주장해왔다. 한국GM의 93~94%에 달하는 매출원가율은 국내 동종사는 물론이고 GM 글로벌 내 다른 사업부에서도 찾기 힘든 수준이다.

현재까지 언론들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매출원가율을 높게 만드는 요소는 과도한 연구개발비, 그리고 이전가격(Transfer Price)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전가격 문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그 중에서 과도한 연구개발비 문제를 파헤쳐볼 생각이다.

CSA(비용분담협정)가 도대체 뭔데?

연구개발비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선 먼저 CSA(Cost Share Agreement)라는 것부터 알아야 한다. 즉 비용분담협정이란 뜻인데 무슨 비용(Cost)을, 누가, 어떻게 분담(Share)한다는 걸까? 우선 '무슨 비용'인지는 명확하다. 오늘 우리가 다루려는 것, 신차를 내놓기 위한 연구개발 비용이다.

'누가' 분담하는 것인지도 크게 어렵진 않다. CSA는 한국GM만이 아니라 전세계 GM 자회사들이 본사와 체결한 협정으로, 신차개발비용을 GM 자회사들이 분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GM(당시 GM대우)은 2006년 말에 본사와 CSA를 체결했다. 대부분의 자회사들도 2007년부터 적용하고 있다.

여기저기 어디를 검색해봐도 ‘자회사들이 분담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본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거 혹시 본사는 돈 한 푼도 안 내고 모조리 자회사들한테 떠넘기는 것 아닐까? 에이, 거기까지 의심하지는 말자. 본사가 부담하는 비율이 좀 낮을 수는 있겠지만 설마 한 푼도 안 내기야 할까.

그럼 본사는 얼마나 분담하고 있을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도대체 ‘어떻게’ 신차 개발비용을 분담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하나도 없다. 이런 난관에 부딪히면 <인사이드 경제>는 무식한 방법을 동원한다. GM대우, CSA 등의 키워드를 넣고 각종 검색 엔진을 돌리는 거다. 그러던 중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했다.

"하지만 2008년 약 2.2조 원에 달하는 과도한 환헷지 손실이 발생하고, GM대우가 자체개발한 기술의 소유권을 GM에 이전하고 GM으로부터 기술의 제한적, 한시적 국내 무상사용권만을 부여받는 Cost Share Agreement의 체결로 인하여 GM대우가 부담하는 연구개발비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기업가치의 악화가 초래되었다."

대한상사중재원이 발간하는 <중재> 341호(2014년)에 실린 글인데, 2009~2010년 산업은행 법무실에 근무하면서 GM대우 관련 법률자문을 전담했던 이지은 변호사가 필자였다. 그렇다면 당시 GM 본사와 산업은행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갈등과 교섭을 경험한 담당자임에 틀림없다.

이 글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2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① 2006년 말에 체결된 CSA로 인해 GM대우 연구개발비가 급증했다는 것, ② CSA가 체결되면서 GM대우가 자체개발한 기술의 소유권이 모두 GM 본사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래, 바로 이게 우리가 찾던 내용 아닌가.

2009~2010년, GM과 산업은행 사이 숨 막히는 교섭

그렇다면 산업은행은 매우 일찍부터 GM대우가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일까? 물론이다. 이지은 변호사의 글을 읽어보면 산업은행은 CSA 체결 직후부터 불공정한 협정이란 점을 알고 있었으며, 2009년 3월부터 9월까지 GM 측과 CSA 개정을 위해 무려 30차례의 협상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9년 9월, GM이 4912억의 유상증자를 단독으로 실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애초에 GM은 산업은행도 참여하는 유상증자를 제안했으나, 산업은행은 GM이 먼저 장기 발전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선제조건을 제시하며 거절한 바 있다. 그러자 GM이 단독으로 진행한 것인데, 이로 인해 산업은행 지분율이 28%에서 17%로 낮아지며 소수주주권(비토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산업은행 측은 당연히 노발대발 하게 된다. 불공정한 협정 CSA를 개정하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GM이 협상 파트너이자 2대 주주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유상증자는 최소한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나름 정당한 논리적 근거도 갖추고 있었다. 그때부터 산업은행은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지 치열하게 연구하기 시작한다.

2002년 대우차를 GM에 매각할 당시 산업은행과 GM 본사는 ‘주주간 계약서’를 체결한 바 있다. 만일 이 계약과 관련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ICC(국제상업회의소) 중재로 해결을 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산업은행은 바로 이 분쟁해결조항에 주목했다. ICC 국제중재제소를 위해 해외 로펌에 자문을 구한 결과,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답을 얻게 되었다.

GM의 단독 유상증자로 소수주주권을 상실한지 6개월 만인 2010년 4월 28일, 산업은행은 ICC 중재신청의 사전절차인 분쟁통지서(dispute notice)를 GM 앞으로 발송하게 된다. 파산보호신청 이후 구제금융으로 회생에 성공한 GM 본사는 2010년 11월에 다시 주식상장(IPO)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IPO는 기업공개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 중요 분쟁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산업은행이 정말로 국제중재제소에 이르게 될 경우 GM은 만만치 않은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이었다. GM도 여기서 시끄럽게 분쟁을 끌고 갈지, 아니면 산업은행과 협상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30여 차례 협상 이후 유상증자 사건으로 막혔던 GM과의 교섭이 재개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8개월가량 숨 막히는 협상 끝에 2010년 12월 8일, 산업은행과 GM 본사는 ‘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발표에 나선 당시 산업은행 김영기 수석부행장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아래와 같이 자신있게 얘기했다.

“만일의 경우에 GM이 GM대우를 떠나더라도 GM이 여기에 기술적 기반도 갖고 있고 생산시설도 여기에 있으니까 GM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만들어 놓자는 게 CSA(비용분담협정) 개정의 목표입니다. … 저희도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상당히 만족합니다.”

그렇다. 2010년 12월에 체결된 것은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만이 아니었다. 애초 이 협상이 시작된 배경이었던 CSA 협정내용도 크게 개정되었다. 그렇다면 GM대우가 개발한 기술까지 본사로 귀속되고,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이 이뤄지게 만들었던 불공정한 내용도 개선되지 않았을까.

비용 얘긴 쏙 빼고 기술사용권 항목만 개선

산업은행은 힘주어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GM대우가 독자생존 할 수 있도록 만든 합의”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GM이 철수해도 독립적인 자동차회사로서 생산·수출·연구개발 등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애초 산업은행은 GM대우와 공동으로 개발한 신차의 경우 ‘공동소유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종 합의는 공동소유권이 아니라 ‘소유권에 준하는 사용권’이었다. 즉, GM대우와 공동으로 개발한 신차에 대해 일정기간(7년) GM대우가 생산·판매·수출을 위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으로 개발한 신차의 소유권, 즉 라이센스는 누가 갖게 되는 것일까? 공동소유권을 얻어낸 것이 아니므로 라이센스는 모조리 GM 본사가 갖게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2011년 10월 5일 이후 특허청에 한국GM의 이름으로 출원된 특허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일체의 지적소유권은 한국GM이 아니라 본사가 독점하게 된 것이다.

GM이 철수하더라도 독자생존을 위해 신차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내용도 중요하긴 하다.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에 대한 소유권 대신 사용권으로 마무리한 것도 일단 눈감아 주도록 하자. 하지만 더 중요한 내용, 즉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과 관련한 부분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산업은행의 설명 어디를 들여다봐도 ‘연구개발비용’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지은 변호사의 글에서도 분명히 CSA의 핵심 문제 중 하나로 거론된 것이 ‘비용’ 문제, 특히 GM대우가 과도하게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도록 만든 문제라고 적시되어 있는데 말이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산업은행은 분명히 CSA가 GM대우에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분담시키는 협정임을 알고 있었다. 이지은 변호사의 글에 따르면 GM과의 협상과정에서 산업은행은 기술실사를 포함해 2차례의 실사도 거쳤다고 한다.

GM대우에 사외이사와 함께 감사를 파견하고 있었던 산업은행은 과도한 연구개발비 지출이 매출원가율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비용 분담’에 대해서는 아무런 손질을 하지 않은 채 2010년에 ‘비용 분담 협정’을 합의해준 것이다!

그런 산업은행이 이제 와서 GM에게 실사를 통해 턱없이 높은 매출원가율을 들여다본다고 한다. 이미 산업은행은 2010년에 2차례나 실사를 한 바 있다. 매출원가율 상승의 원인이 연구개발비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비용분담 방식을 바꾸지 않고 합의서를 작성한 당사자가 바로 산업은행이다.

꾀를 낸 산업은행, 그러나 되치기로 받아친 GM

산업은행은 2009~2010년 협상 당시 GM에 ‘장기간 생산물량 보장’을 함께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GM은 끝까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자 산업은행은 한 가지 꾀를 냈다. 2002년 대우차 매각 당시 GM의 인수자금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은 12억 달러의 우선주를 떠안은 바 있다. 주주 간 계약에 따르면 GM은 이 우선주에 대해 10년간 2~2.5%의 배당을 한 뒤, 2013~2017년에는 7%의 현금배당과 함께 분할하여 상환을 해야 한다.

이 우선주를 GM대우가 상환하도록 명시하자는 게 산업은행의 꾀였다. 2017년까지 배당금을 합한 우선주 상환 총액은 2조3000억이었다. 매년 4000~5000억씩 상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매년 GM대우가 그만큼의 영업이익을 내도록 하지 않겠냐는 것. 결과적으로 GM이 생산물량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 내용은 3월 2일 MBC가 입수해 보도한 산업은행 내부 보고문건을 통해 확인된 것.)

▲ 3월 2일, MBC 저녁 뉴스 캡쳐 장면

이 요구에 GM은 흔쾌히 동의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GM대우가 상환할 능력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GM 본사가 지급을 보증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GM은 이 조건에 대해서도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꼭 2년 뒤, GM은 산업은행이 제시한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되치기에 나선다.

2012년 말, GM은 우선주를 조기에 상환하고 싶다는 의사를 산업은행에 전달한다. 2013년부터 7%의 높은 현금배당을 해야 하니 빨리 갚아버리고 싶은 것이었다. 산업은행은 우선주 조기 상환에 동의해 주었다. 그런데 한국GM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를 갚을 것인가? 7%의 현금배당을 안하더라도 1조7000억을 상환해야 하는데 말이다.

GM은 정확히 합의문구대로 시행한다. 우선 한국GM에 두 차례(2012년 12월, 2013년 4월)에 걸쳐 1조7000억의 현금을 빌려주게 된다. 한국GM은 본사로부터 차입해온 현금을 받자마자 산업은행으로 송금해 우선주를 상환한다. 본사는 한국GM에 빌려준 1조7000억에 연 5.3%의 높은 이자율을 적용해 매년 1000억 이상의 이자를 현금으로 챙겨간다.

그렇다. GM의 고리대금업이자 고금리 대출의 역사, 한국GM이 본사로부터 막대한 차입금을 끌어오게 된 그 흑역사의 시작이 바로 이것이다. 2011년까지 한국GM은 본사로부터 원화차입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수시로 발생하는 거래에 일부 외화차입금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2012년부터 막대한 원화차입금이 회계장부에 기록되기 시작한다.

▲ 한국GM 2016년 감사보고서 중 ‘원화차입금’ 항목. 2011년까지만 해도 본사로부터의 차입금은 외화차입만 있었으나, 2012년부터 처음으로 원화차입금이 발생함.

리뷰와 치유방안을 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여러 해에 걸친 계획이기 때문에 해마다 저희들이 리뷰(review)를 해서 계획 이행에 문제가 있다면 GM과 저희가 협의를 해서 점검을 하고 필요하다면 치유방안까지 서로 협의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2010년 12월 8일, 당시 산업은행 김영기 수석부행장이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신있는 표정으로 내뱉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8년 동안 산업은행이 도대체 무슨 리뷰를 했고, 무슨 치유방안을 내놓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인사이드 경제>가 보건대 산업은행은 한 가지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2010년에 저토록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산업은행 아닌가. 만일 그들이 무슨 리뷰를 하거나 치유방안을 내놓았다면, 생방송 기자회견을 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산업은행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나중에 되치기를 당할 것까지 충분히 예측했어야 했다는 비판은 과한 것이다. 하지만 2012년 말과 2013년 초, 우선주 상환을 위해 본사로부터 대규모 차입이 발생했고, 5.3%의 고금리가 적용되었다는 점을 산업은행이 몰랐을 리 없다.

당연히 산업은행은 당시에 위험신호를 인지했을 것이다. 더구나 2012년 12월이 어느 때인가. GM이 돌연 차세대 쉐보레 크루즈를 군산공장에서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당시 다시 한 번 GM 철수설이 끓어오른 시점이기도 하다.

산업은행의 잘못은 바로 여기에 있다. GM의 되치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되치기가 시작되었음이 분명함에도 리뷰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치유방안도 내놓지 않은 점. 2010년 협상을 벌일 때에는 ICC 국제중재제소까지 밀어붙였던 산업은행이, 오히려 2010년 합의서 체결 이후부터는 완전히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런 산업은행이 실사를 통해 GM의 부당함을 밝혀낸다고? GM과 교섭을 통해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인사이드 경제>는 차라리 수퇘지가 애를 뱄다는 말을 믿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산업은행이 정말 해야 할 일은, 2010년에 체결된 장기발전 협약의 내용, 그리고 그때 개정된 CSA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명목으로 본사가 돈을 뜯어가는지, 어떤 황당한 원칙과 기준으로 연구개발 비용을 분담하는지 밝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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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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