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세무조사할 때가 됐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전세계 노동자 웃고 울리는 크루즈의 마법

"GM이 멕시코에서 만든 쉐보레 크루즈를 미국 판매점에 보낼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 미국에서 차를 만들든지 아니면 무거운 세금을 내야 할 것!"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지 두 달째인 작년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워낙 괴짜 같은 양반이라 저런 기이한 짓도 했구나' 처음엔 그렇게 보고 넘겼다. 그런데 최근 GM이 벌이는 짓을 분석하기 위해 그때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니, 트럼프의 저 행동엔 꽤 의미 있는 맥락이 숨어 있었다. 오늘은 그 스토리부터 시작해볼까 한다.

크루즈 : 오바마 재선, 트럼프 당선의 공신

쉐보레 크루즈. 본래 이 차는 2008년 말에 ‘라세티 프리미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맨 먼저 출시된 차량이다. 대우자동차 시절에 개발한 라세티와 GM의 델타 플랫폼이 만나 탄생된 차로, 연구개발도 한국GM(당시 GM대우)이 도맡아 진행한 바 있다.

그런데 GM은 크루즈를 미국에서도 생산하기로 했다. 후보지로 오하이오 주의 로즈타운 공장이 선택된다. GM의 파산 위기로 문을 닫았던 공장이다. 직접 고용하는 인원은 4500명에 불과하지만, 완성차 공장은 부품 공급을 비롯해 전후방 고용 효과가 그 몇 배에 달한다. 오하이오의 일자리 8개 중 1개는 크루즈 생산과 관련된 것이라는 통계치가 나올 정도였다.

2011년, 드디어 크루즈 생산이 시작되었을 때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파산 위기의 GM을 막대한 구제금융(공적 자금 투입)으로 살려낸 오바마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았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어렵지 않게 재선에 성공했는데, 미국 대선의 전통적인 경합지역 오하이오에서의 압도적 지지 덕이었다. 그 일등공신은 당연히 크루즈였다.

쉐보레 크루즈

미국 판매량 ()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31,732

237,758

248,224

273,060

226,602

188,876

184,751


크루즈의 인기는 출시 직후부터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2014년에 판매량이 27만 대까지 치솟자 GM은 로즈타운 공장을 3교대로 돌려야 했다. 2015년에 GM은 차세대 크루즈를 멕시코에서도 생산하겠다고 발표한다. 공장을 팽팽 돌려도 미국 소비자 수요조차 맞출 수 없던 시절이라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하고 넘어갔다.

2016년 여름부터 멕시코에서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중 일부를 미국으로 수출한다고 발표했다. 아니, 로즈타운에서 이미 생산하고 있는데 이걸 멕시코에서 또 수입해? 미국 생산량·판매량도 점차 줄고 있던 차라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GM 자본은 별일 없을 거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대선이 치러지던 2016년 11월, GM은 마침내 중대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3교대로 돌리던 로즈타운 공장에 교대조 하나를 없애겠다고 말이다. 무려 1200개 일자리를 줄이겠다는 거다. "멕시코에 빼앗기는 일자리를 미국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꼴통 보수에 인종주의, 보호무역을 내세운 트럼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크루즈를 계기로 시작된 트럼프와 GM의 힘겨루기

2012년에 오바마를 지지했던 노동자들이 2016년에 힐러리가 아니라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하이오 노동자들은 트럼프가 로즈타운의 1200개 일자리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역시 전통적인 경합지역 오하이오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작년 1월 3일 트럼프의 트윗 글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자 GM도 작심하고 맞대응에 나섰다. 곧바로 "쉐보레 크루즈 수요 충족을 위해 로즈타운과 함께 멕시코 라모스아리즈페 생산시설을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낸 것이다. 로즈타운 공장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정리해고를 앞둔 1,200명 노동자들 분노는 대단했다.

▲ 지난해 1월 미국 오하이오주 로즈타운의 자동차 판매대리점 유리창에 붙은 광고. 멕시코 라모스아리즈페(RAMOS ARIZPE) 공장에서 생산해 수입한 크루즈도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하이오 주에서도 멕시코 산 크루즈가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유해 보자면, 일감이 없어서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군산공장 인근 대리점에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 크루즈 판매 광고가 붙었다고 해보자. 상상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일 아닌가.

여론의 흐름은 GM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트윗 이후 꼭 2주만인 1월 17일, GM은 곧바로 트럼프 행정부에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다. “미국 내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이를 통해 1000개가 넘는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일단 GM과 트럼프의 일전은 트럼프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쉐보레 크루즈의 고향은 어디?

'Lordstown - Home of (to) the Cruze' 오하이오 주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형 광고판이다. 아래 사진은 GM의 로즈타운 공장에 붙어 있는 것인데, 이런 광고판은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로즈타운에 진입하는 입간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로즈타운이란 도시가 크루즈와 맺고 있는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루즈의 진짜 고향이 어디인지를 따지고 들자면, 앞서 <인사이드 경제>가 살짝 언급한 것처럼 한국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크루즈의 실체는 GM대우의 ‘라세티 프리미어’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말에 한국에서 맨 먼저 출시된 이 차량은 당연히 한국, 그것도 군산공장에서 가장 먼저 생산되었다.

그 뒤 러시아, 중국, 인도, 베트남 등에서도 생산되기 시작했지만, 상당 부분은 한국에서 CKD 형태로 부품을 공급받아 최종 조립만 하는 형태였다. 한국에서는 ‘GM대우’ 브랜드의 라세티 프리미어로, 해외에서만 ‘크루즈’라는 이름으로 (호주의 경우에만 ‘홀덴’ 브랜드로, 나머지는 ‘쉐보레’ 브랜드로) 판매되었다.

크루즈 연구·개발 역시 한국 엔지니어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물론 GM의 글로벌 소형차 아키텍쳐 중 하나인 ‘델타(Delta)’ 플랫폼을 사용하긴 했으나, 사실 델타 플랫폼 역시 한국 엔지니어의 손때가 묻은 것이기도 하다. GM의 소형차 개발은 주로 한국과 유럽(오펠)이 도맡아 왔으며, 북미 연구역량까지 힘을 합해 델타 플랫폼을 공동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 플랫폼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크루즈’, 오펠 브랜드의 ‘아스트라(Astra)’가 탄생했다. 당연히 크루즈는 한국 엔지니어들, 아스트라는 유럽 엔지니어들 역할이 컸다. 두 차량은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긴 하지만 상당히 다른 차라고 봐야 한다. 한국은 이 플랫폼에서 다목적차량(MPV)인 ‘올란도(Orlando)’를 추가로 개발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크루즈’란 이름이 생소해서 완전한 신차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소비자도 그렇고 엔지니어도 그렇고, 대우의 라세티를 업그레이드 한 것으로 여겼기에 매우 익숙한 차였다. 크루즈가 한국에서만 ‘라세티 프리미어(Lacetti Premiere)’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크루즈 출시 당시에는 군산공장에서 라세티가 함께 생산되던 시절이었다. 아래 표는 군산공장에서 생산된 라세티와 크루즈 생산량을 합산한 것이다. 2016년에 출시된 차세대 크루즈도 합산되어 있다. 해외 수출물량 규모도 같은 표에 나타내 보았다. 2010년에 24만 대에 육박하던 생산량이 2017년에 이르면 1/10 수준인 2.3만 대로 추락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요소들이 작동되었다는 얘기이다. 그게 무엇일까? <인사이드 경제>가 찾아낸 요소들을 ‘주요 이슈’로 표현해 보았다. 우선 2010~2012년까지 수출물량이 줄어든 이유는 주요 수출지역에서 크루즈를 직접 생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크루즈를 한국에서만 생산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일부 지역에서 판매가 급증할 경우 군산에서 다 소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러시아·중국·인도·베트남 등에서 크루즈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앞서 얘기한 것처럼 상당수 국가에서 한국의 CKD 부품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한국GM 완성차 수출은 줄어든 반면, CKD 수출이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에 미국도 현지 생산을 하게 되지만, 아예 판매를 하지 않다가 새롭게 출시된 사례라서 한국 수출물량 감소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호주’를 콕 집어서 표현한 것은, GM이 전략적으로 한국 생산물량을 호주로 넘긴 사례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크루즈 생산물량을 넘겨받기 위해 GM에 엄청난 지원과 특혜를 안겨준 바 있다.

현지 생산 확대는 군산공장의 수출 축소로 이어졌지만, 물량 감소 규모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국면은 2012년부터 시작된다. 우선 2012~2013년에도 수출 물량이 상당히 줄어드는데, 이는 차세대 크루즈 생산을 둘러싼 갈등 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2013~2014년에 수출이 줄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마찬가지로 GM의 전략적 판단 때문인데, 갑자기 쉐보레 유럽을 철수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수출판매가 잘 이뤄지던 유럽 물량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면서, 군산공장 생산량이 전성기의 절반 밑으로 뚝 떨어지게 된다.

차세대 크루즈 위해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지만…

나머지 이슈들은 모두 2016년에 출시된 차세대 크루즈와 연관된 것들이다. 2012년 12월, GM은 갑자기 차세대 크루즈 생산에서 군산공장을 제외하겠다고 통보해온다. 일방적일 뿐만 아니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조차 듣기 어려웠다. 한국GM의 경영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란 “(글로벌) 본사 차원의 결정”이라는 얘기뿐이었다.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야 맞교대에 잔업특근으로 몸 축나가며 한해 20만대씩 크루즈를 생산해준 대가가 이거란 말인가? 2013년, 곧바로 수출물량이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 EU에 가입이 안 된 동유럽 국가들, 중동·아프리카 쪽 수출물량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특별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2013년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으로 2014년에는 생산량이 훨씬 줄게 된다. 2013~2014년, 노동자들은 줄기차게 싸웠고 크루즈 생산 배제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GM은 차세대 크루즈를 원한다면 노동조합에게 더 양보하라며 줄기차게 종용했다. 생산량이 너무 줄었으니 2교대를 1교대로 바꾸는 대신 비정규직을 내보내자는 것이었다.

2014년 초, 시간당 생산대수(JPH)를 줄이는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생산속도가 늦춰졌으니 인원도 줄여야 했다. 결국 3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군산공장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GM은 고삐를 더 죄었다. 1교대로 전환하지 않으면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2015년 2월 10일, 군산공장 1교대 전환 노사합의가 이뤄졌다. 이번에는 700명 가까운 비정규직이 쫓겨났으니, 1년 사이 1천명 비정규직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틀 뒤(2월 12일) GM 본사는 차세대 크루즈 군산공장 생산에 대한 비용을 승인하게 된다. GM은 차세대 크루즈를 빌미로 노조를 협박해 비정규직 1천명 해고와 1교대 전환 등 구조조정을 관철시킨 것이다.

어쨌건 노동조합이 요구한 ‘차세대 크루즈’의 군산공장 생산이 승인되었다. 그런데 왜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었을까? 글로벌 GM은 석 달 후인 2015년 5월, 멕시코에서도 차세대 크루즈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렇다.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비난했던 바로 그 멕시코의 크루즈 생산 말이다.

본래 멕시코에서 판매되던 크루즈는 전량 군산공장에서 수출되고 있었다. 멕시코 현지 생산은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상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GM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크루즈의 80%가 수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국GM이 잃는 수출시장은 멕시코 내수시장만이 아닐 것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끝이 아니다. GM은 곧이어 아르헨티나에서도 차세대 크루즈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칠레에서 판매되던 크루즈 역시 군산공장에서 수출되고 있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현지 생산으로 군산공장의 크루즈는 북미와 남미 수출물량 일체를 잃기에 이른다.

2018년, GM은 올해 군산공장 생산물량이 16,000대 가량이라고 얘기한다. 전성기인 2010년 대비 6.7%로 쪼그라든 규모이다. 비정규직 1천명이 쫓겨났고, 1교대 전환 등 노동조합은 양보를 거듭하며 차세대 크루즈 생산을 약속받았으나, 군산공장은 회생이 아니라 또다시 구조조정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GM의 교섭 시작, 그런데 노동자들은?

"현재의 (한국GM) 비용구조는 어려워지고 있으며, 독자생존 가능하도록 조치들을 취해야 합니다.(the current cost structure has become challenging and we are going to have to take actions going forward to have a viable business.)"
"한국의 경우 …… 추가적인 구조조정과 합리적 조치가 필요할 것(In Korea, …… additional restructuring and rationalization actions may be required.)"

지난 2월 6일, 글로벌 GM의 실적 발표 자리에서 최고경영자(CEO) 매리 바라(Mary Barra)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척 스티븐스(Chuck Stevens)가 각각 한 얘기이다. 글로벌 경영진들이 한국GM을 콕 집어 언급한 것을 이례적인 일로 봐선 안 된다. GM은 지난 100여년 동안 전세계 정부를 상대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안 철수하지)~"라는 협박을 벌여왔다. 이를 통해 각국 정부들로부터 엄청난 지원과 특혜를 제공받으며 이윤을 뽑아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GM 경영진들이 청와대, 기획재정부, 산업자원부, 산업은행 등을 만나 한국 정부의 포괄적인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GM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다음 <인사이드 경제>에서 상세하게 다뤄볼 생각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모종의 방안을 놓고 청와대와 GM 사이에 교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응원해야 할까?

잠깐만 앞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미국에서 GM과의 일전을 벌여 판정승을 거둔 트럼프, 그렇다면 그는 당시 해고 위기의 로즈타운 공장 1200명 노동자들을 구제했을까? GM은 트럼프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GM도 트럼프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지 않았다. 참으로 역설적이지만, 그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날(1월 20일)에 결국 해고되고 말았다.

일자리(고용)를 강조한 트럼프가 판정승을 거뒀지만, 누가 이기느냐와 관계없이 결국 노동자들의 고용은 지켜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GM 사이의 교섭도 마찬가지이다. 청와대가 이기든 GM이 이기든, 스스로의 요구를 내걸고 싸우지 않는 한 결국 지는 쪽은 노동자가 되고 말 것이다.

GM은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양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앞서 군산공장 사례에서 본 것처럼, 양보가 결코 회생을 담보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GM은 그 양보는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추가적인 양보를 요구한다. “양보가 없으면 회생도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양보를 하더라도 결코 회생에 충분하지 않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결국 군산공장 가동 중단이니, 장기 휴업이니, 폐쇄 위기 등의 말이 난무하는 상황 앞에 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양보를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들의 요구를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내고 집단화할 것인가이다.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힘은 약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내면 집단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사족 : 물론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일자리를 강조하며 노동자들 지지를 얻어 당선된 트럼프,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지지한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지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최소한 그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얘기를 공개적으로 터뜨리기는 했다. 멕시코에서 수입되는 크루즈에 느꼈을 미국 노동자들의 감성을 말이다.

최근 GM이 한국 정부와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취하는 태도는 트럼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일체의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적 없다”는 해명만 하고 있을 뿐, 한국GM 노동자들이 처한 일자리(고용) 위기에 대해 어떤 대책이 있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권은 2012년 연말부터 국세청을 동원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여 르노삼성의 ‘이전가격’ 문제를 밝혀낸 바 있다. 즉, 르노 본사로부터 부품을 수입할 때엔 비싼 가격을 적용하고, 르노에 수출할 때에는 싼 가격을 적용해 이윤을 본사로 빼돌리는 수법이다. 이를 적발해 1천억(추후 700억)에 달하는 세금 추징을 한 바 있다.

박근혜 정권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기간(2013년 초)에 한국GM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인천지방세무서가 나서면 지역 대기업과의 유착 어쩌고 하는 의혹이 있을까봐, 당시 세무조사에는 중부지방세무서가 동원되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세무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고, 한참 뒤에야 (이유를 알 수 없는) 265억의 추징 사실만 알려졌다. 르노삼성 세무조사 직후였기에 추징의 이유가 ‘이전가격’이었으리라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 시절 그 얘기를 지금에 와서 진상조사를 하자는 건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을 상대로 한 세무조사는 통상 5년 주기로 이뤄진다. 2013년 초에 한국GM에 세무조사를 벌였으니, 5년이 지난 바로 지금이 세무조사의 결정적인 타이밍 아닌가. 없는 세무조사를 일부러 만들어서 하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해야 할 세무조사라면 이번에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비록 그게 빈 말에 불과한 것이었을지언정 트럼프는 GM을 상대로 ‘무거운 국경세 부과’라는 칼을 꺼내들었다. 당선되자마자 범정부 차원의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자리 대책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 아닌가. 일자리 정부라면 자신들이 강구할 수 있는 수단들부터 동원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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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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