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피지컬AI, 그리고 AI 데이터센터를 한국 경제 성장의 3대 핵심 분야로 점찍었다. 투자를 주도할 민간기업 명단과 투자규모, 지역,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와 내용들이 제시되었다.
반도체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남권에 800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4기를 건설할 예정이고, 네이버(세종)와 SK(울산), GS(동해)가 총 550조 원을 투자해 8.4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짓는다고 한다.
때로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때로는 청와대 브리핑으로 반복해서 발표된 여러 수치와 내용 중 유독 찾을 수 없는 숫자가 하나 있다. 바로 '고용'이다. 몇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는지, 그 중 몇 개가 한시적인 일자리이고 몇 개가 상시지속적인 것인지, 그 어떤 보도자료와 브리핑에서도 이 질문에 답하는 숫자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재정투입과 전력공급은 '메가', 일자리 정보는 '제로'
일부 언론은 '702만 명'이라는 고용유발효과 수치를 유포한다. 한국은행의 반도체 고용유발계수(10억 원당 2명)를 투자 총액에 기계적으로 곱해 나온 것일 뿐,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수치에 불과하다. 그런 보도에 "업계에 따르면" "업계에선"이라는 미사여구가 붙는 이유다.
그나마 반도체 부문에선 이런 추정치 기사라도 나온다지만, 피지컬 AI와 데이터센터 부문은 아예 그런 보도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사이드경제>가 직접 검증해 보기로 했다. 다만 투자금액과 지역, 방식이 특정되지 않은 피지컬 AI 대신, 무려 550조 원이 투자된다고 하는 데이터센터 쪽에 초점을 맞춰보았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직접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핵심 기업(하이퍼스케일러)은 현재 사실상 아마존 AWS,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가 1군이라 할 수 있고, 그 뒤를 오라클이 따라붙고 있다. 아마존 AWS의 데이터센터만 100여 개로 추정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메타가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데이터센터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특히 메타는 미국에서 27개의 데이터센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각각에 대해 투자규모, 물과 전력 활용방식은 물론이고, 건설인력 및 상시운영인력 규모를 공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5GW 규모의 리치랜드패리시(Richland Parish) 데이터센터의 경우, 투자액은 총 500억 달러(70~80조 원)에 달한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동안 피크(peak) 시점에 투입된 건설 인력은 약 7500명 규모, 완공 이후 운영에 필요한 상시 인력은 1000명 규모라고 한다. (아래 사진)
1GW 돌리는데 사람은 200~300명
여기서 잠깐!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 데이터센터 총 용량이 8.4GW 아니었나? 그런데 메타의 5GW 규모 데이터센터의 운영 인력이 고작 1000명이라니? 1GW당 200명 수준이라는 얘기인데 그럼 단순계산으로 8.4GW는 1,700명이라는 답이 나온다. 아니, 무려 550조를 들여 창출하는 상시 고용인력이 고작 1700명이라고?
혹시 리치랜드패리시 사례만 특별한 게 아닐까 의문이 생겼다. 메가프로젝트의 경우 대부분 1GW 이상의 규모여서 메타의 데이터센터 중 1GW 이상의 컴퓨팅 용량을 가진, 비교적 최근에 착공을 시작한 곳 3곳의 수치 자료를 모두 모아봤다. (아래 표, 다만, 여기서 GW는 실제 AI 연산성능(FLOPS)이 아니라, 데이터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컴퓨팅 인프라의 전력기반 설계·계획 용량을 뜻하는 개념임. 앞으로는 '컴퓨팅 용량'으로 통칭.)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메타의 데이터센터들 모두 컴퓨팅 용량 1GW당 운영인력은 200~300명에 불과했다. 물론 데이터센터 건설과정 중 피크 시점에 4000~7500명의 고용인력이 발생하긴 하지만 건설이 종료되면 사라지는 한시적 고용이다.
'직접고용'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천문학적인 투자금액 대비 극도로 초라한 일자리 창출, 하지만 이 숫자조차 상당히 부풀려진 것이다. 메타가 리치랜드패리시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처음 발표하던 2024년 12월, 루이지애나 경제개발청(LED)은 다음과 같이 이 프로젝트를 홍보한 바 있다.
"Meta는 리치랜드패리시 데이터센터가 500개 이상의 신규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LED는 이 프로젝트로 1000개 이상의 간접 일자리가 추가로 창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루이지애나 북동부 지역에서는 총 1500개 이상의 잠재적 신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Meta projects the data center will support 500 or more direct new jobs in Richland Parish. LED estimates the project will result in the creation of more than 1000 indirect jobs, for a total of more than 1500 potential new jobs in the Northeast Region.)"
애초 이 프로젝트는 100억 달러의 투자를 예상했으나 그 사이 규모가 무려 5배로 증가해 500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그런데 2026년에 메타가 공개한 일자리 관련 정보는 은근슬쩍 이렇게 바뀐다. "운영이 시작되면 데이터센터는 1000명의 일자리를 지원하게 될 것이다. (Once operational, this data center will support 1000 operational jobs.)"
2024년 발표에서는 직접(direct) 일자리와 간접(indirect) 일자리를 구분해 총 1500개라 해놓고, 오히려 컴퓨팅 용량이 5GW로 늘어났음에도 고용 관련 수치는 줄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간접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지며 고용의 성격은 더 모호해졌다. 일자리 수가 실제 1000개가 될지도 의문이지만, 메타가 직접 고용하는 인원은 그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세금혜택 수천만 달러, 일자리는 한자릿수
비영리 독립언론 <뉴욕 포커스> 보도에 따르면 2024년 2월, 뉴욕주 록랜드카운티는 JP모건체이스 데이터센터 확장에 7700만 달러의 세금감면을 승인했다. 그 대가로 이 회사가 약속한 상시적 일자리는 꼴랑 1개였다. 승인을 결정하는 공청회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20분의 침묵 끝에 회의는 종료됐고, 2주 뒤 세금감면안은 수정 없이 통과됐다.
같은 지역에 모건스탠리·나틱시스은행과 AI클라우드기업 코어위브도 데이터센터 관련 별도의 판매세 감면 계약을 맺고 있다. 특히 모건스탠리는 최근 1900만 달러 세금 감면에 상시고용 4명이라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를 논의하는 공청회에도 참석자는 없었다. 일자리 몇 개 만들어 수십억~수백억 세금을 지원받는 일이 미국에선 몇 년 동안 벌어져왔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치권도 나서기 시작했다. 올해 6월, 뉴욕주 상·하원이 "책임있는 데이터센터 개발법(Responsible Data Center Development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20MW(메가와트) 이상 시설의 신규 허가에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적용한다. 즉,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뉴욕주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허가해선 안된다는 것.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이 법안에 아직 서명하지 않은 상태지만, 한 달 전인 7월 14일 행정명령 62호를 통해 50MW 이상 시설에 대한 데이터센터 인허가 심사를 최대 1년 간 보류한다는 선언을 단행했다. 의회가 승인한 문턱보다는 조건을 높이긴 했지만, 미국에서 주 단위로는 최초의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이라 할 수 있다.
세계는 '속도전' 대신 '운행규칙' 만드는 중
뉴욕주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작은 단편일 뿐이다. 전세계가 데이터센터 건설에 다양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관련 온갖 규제를 없애고, 전력과 물 사용을 국가가 나서서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한국의 메가프로젝트와 정반대 방향이다. 몇 가지만 모아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으려면 기업이 전력·물 등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대라"
미국 오리건주는 2025년 제정된 전력법(POWER Act)에 따라 20MW를 넘는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소비자는 별도 전력요금군으로 분류한다. 올해 7월, 오리건 공익사업위원회는 포틀랜드 제너럴 일렉트릭의 대형 고객 전기요금을 약 29.7% 인상한다. 반면 가정용 요금에는 인하 효과가 생겼다. 핵심 원칙은 단순하다. "Data centers should pay their own way(데이터 센터가 유발하는 비용은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 - 데이터센터 때문에 발전소·송전망·변전소를 더 짓는데 그 비용은 모두 그 기업이 대라는 것.
"지역사회가 원하면 기술설계를 변경하라"
칠레 세리요스의 구글 데이터센터는 원래 수냉식으로 계획됐지만 지역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과 가뭄 문제를 제기했고, 환경법원이 기후변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기존 허가를 문제 삼게 된다. 결국 구글은 2024년 기존 계획을 공랭식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지역사회가 프로젝트를 단순히 찬성·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설계 자체를 변경시킨 사례이다.
"세금혜택을 받으려면 노동·환경·지역편익 기준을 충족시켜라"
올해 6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판매세 면제 신청 접수를 중단하고, 전기요금·환경·공중보건을 보호할 보다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다. 데이터센터 정책은 흔히 '토지 제공 → 전력망 지원 → 세제감면 → 규제완화 패키지'로 가는데, 인허가 조건 없는 세제혜택 금지를 못 박은 것이다. 세금감면을 받고 싶으면 고용·전력·용수·탄소·노동·지역사회 편익 기준을 충족하라는 것.
수백조의 자본과 막대한 전력·물·토지, 국가의 세제·금융·인프라 지원까지 투입하는 일이라면 사회는 당연히 따져 물어야 한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는지, 그리고 같은 자원과 재정을 다른 산업과 공공서비스에 사용했을 때보다 더 큰 사회적 편익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1000조 원이 들어간다면 최소한 "1000만 가구에 1억 원씩 지급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는 더 나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1000만 가구 × 1억 원 = 1000조 원)
물과 전력에는 탐욕적, 고용은 증발시키는 AI 인프라
한국 정부가 던지는 질문은 이와 정반대다. 무엇을 얼마나 지을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고, 남은 질문은 오직 '얼마나 빨리 지을 것인가' 뿐이다. 브리핑과 보도자료에는 "1%대 잠재성장률이라는 한국이 직면한 현실"을 끊고 "대도약을 이룰 마지막 기회"가 바로 AI 전쟁이며, 여기서 승리해야만 "성장률 반등"을 통해 "전지역·전국민에 성과 확산"이 이뤄진다고 말한다.
성장률, 성과, 대도약이란 단어가 부지기수로 등장하는데 왜 '고용'과 관련한 얘기는 단 한마디가 없을까? 단순한 누락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점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가장 최근 워딩에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긴 한데, 이 성장의 회복이 좀 특이해서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그아먈로 고용 없는 성장이라고 할까? 이게 대세가 됐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이 미래 산업사회 중심이 되면서 이제는 성장을 해도 과거만큼 일자리가 생겨날지 의문인 사회입니다. 그래서 청년 세대들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으면 청년 세대들이 좌절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8월 14일, 청년정책 전문가 간담회 모두발언)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이런 문제를 누구보다 강조해왔고, 그래서 국가와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정책적으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그런데 수천조 원이 투입되는 3대 메가프로젝트에서 간단한 수치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정부와 기업 스스로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과 전력에는 극도로 탐욕적이고, 사람을 쓰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구의 동·식물 생존에 필요한 물, 인간생활 편익에 필요한 전기를 모조리 끌어다가, 고용과 일자리를 잡아먹는 AI 산업 육성을 위해 수천조 원까지 투자해가며 몰빵을 한다니, 메가프로젝트가 아니라 '메가 블랙홀'이란 이름이 걸맞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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