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진,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

[프레시안 뷰] 누가 이 땅을 '지진 안전 지대'라고 하는가?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리히터 규모 5.8의 지진 이후에 시민들의 불안감이 큽니다. 최소한 한반도가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한반도는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한반도가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라면, 그동안 한반도가 지진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전제로 했던 모든 일들을 재점검해야 합니다. 국민안전처도 범정부 차원의 '지진방재 종합개선 기획단'을 구성해 시설물 내진 보강 방안, 대국민 신속 전파체계 개선, 지진 매뉴얼 정비와 교육훈련 강화 등의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가 지진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한반도 동남쪽에서 원전 건설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 대책이 제대로 세워지기 위해서라도, 먼저 제대로 된 인식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단 지진의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반 시민들이 지진을 의식하느라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저도 지진 문외한이었지만, 경주 지진 이후에 한반도 지진에 관한 자료들을 들여다보며, 세 가지 정도는 우리가 반드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정책을 다루는 정치인들, 행정관료들은 지진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첫째, 역사 기록에 나타난 지진 기록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역사 기록 속에 지진에 관한 내용들이 심각하게 담겨 있었지만, 그동안 이런 기록들이 무시당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한반도가 지진 안전 지대라는 얘기가 유포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보면, 한반도가 지진 안전 지대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반도 지진 연구의 선구자인 김이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쓴 <모든 사람을 위한 지진 이야기>를 보면, 역사 기록이 남은 이후에만 리히터 규모 6.4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29번이나 한반도에서 발생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리히터 규모 6.4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중종 때 관료인 김안로가 쓴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를 보면 아래와 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소리가 우레와 같았으며, 천지가 동요했다. 건물이 위로 오르고 흔들렸다. 마치 작은 거룻배가 풍랑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며 장차 전복하려는 것같았다. 사람과 말이 놀라 쓰러졌으며 이로 인해 기절하는 자가 많았다. 성과 건물이 무너져 내렸으며, 나란히 있던 항아리가 서로 부딪쳐 깨지는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김안로가 이렇게 적은 지진은 1518년 7월 2일(양력 기준)에 발생한 지진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지진은 얼마나 컸던지 조선 팔도 전체가 흔들렸다고 합니다. 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쓴 글에도 나옵니다. 여진도 한 달 동안이나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 1518년 지진의 진앙과 영향 범위. <한반도 역사 지진 목록 작성 및 DB구축(1)>(기상청, 2009) 129쪽에서 인용. ⓒ기상청

김이화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지진활동이 일어난 시기는 15~18세기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서울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리히터 규모 6.4 이상의 큰 지진이 일어난 해만 꼽아보더라도, 1436년, 1518년, 1546년, 1643년(2차례), 1681년(2차례), 1692년, 1702년, 1707년이 있습니다.

물론 한반도 동남쪽에서 일어난 지진도 많습니다. 경주 부근에서 리히터 규모 6.4 이상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해를 꼽아보면, 100년, 304년, 458년, 510년, 779년이 있습니다. 779년의 지진에서는 집이 무너지고 100여 명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643년 7월에는 울산 근처에서 리히터 규모 6.7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역사 기록들을 보면, 그동안 한반도가 지진 안전 지대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둘째, 지진 관련 논의에서 원자력계의 입김을 제거해야 합니다.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 지진 위험성 평가에서 원자력계의 영향력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활성단층의 존재를 부인하고 지진 위험성을 축소해 온 것은 원자력계입니다. 그리고 정부 정책도 원자력계의 손에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이번 경주 지진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보는 양산 단층의 경우에는 김이화 교수 등 지질학계에서 1983년부터 활성 단층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계는 그것을 부인해 왔습니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나서서 비활성 단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1998년에 한국자원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는 양산 단층은 활성 단층이 아니라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의 위탁을 받아 수행한 용역 연구 결과에서 그렇게 발표한 것입니다. 이것은 월성원전 건설을 밀어붙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이라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질학자들도 얘기해 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수력원자력은 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인지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고, 활성 단층이라고 해도 내진 설계가 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 속에서도 양산 단층 인근에서 지진들이 다수 발생한 것이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양산 단층이 활성 단층이라는 것(특히 대규모 지진발생위험이 큰 활성단층이라는 것)을 전제로 부근에 있는 원전들의 안전성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이번 지진을 계기로, 양산 단층 인근의 노후 원전들을 조기 폐쇄해야 한다거나 새로 지으려고 하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 정도의 결정도 하지 못한다면, 지진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셋째, 동해안의 원전 중에 지진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경주에서 지진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지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2004년 울진 앞바다에서 일어난 지진입니다. 2004년 5월 31일부터 6월1일까지 네차례에 걸쳐 일어난 지진은 최대 리히터 규모 5.2.를 기록했습니다.


이 지진은 이번 경주 지진 이전에는 지진 관측 사상 남한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 지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울진은 양산 단층의 끝자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울진에는 울진원전 6기에 더해서 신울진 1, 2호기를 건설 중이고, 3, 4호기까지 짓겠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모두 10개의 원전을 한 곳에 몰아짓겠다는 것입니다.

신울진1, 2호기와 관련해서는 당초에 연약한 지반에 건설을 하려다가 문제가 되자, 위치를 50미터 정도 옮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2011년 3월 30일 MBC가 이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사 : 건설 중인 신울진 원전 1, 2호기 지반 부실)

이처럼 원전을 짓는 지반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동해안 원전 전체에 대해 신규 건설을 중단하고, 안전성에 대한 검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울진1, 2호기의 경우에는 지반에 문제가 없는지, 바닷가 쪽으로 50미터 정도 원자로 위치를 옮기는 과정이 정상적이었는지 등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신울진 3, 4호기도 중단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도 정부가 '원전은 안전하다'는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지진의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었던 이번 경주 지진을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은 일본의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 지진이었습니다. 재난은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닥칠 수 있습니다. 경고가 있을 때 받아들이고 대비해야 합니다.

▲ 지난달 21일 오후 경북 경주시 황남동에서 기술자들이 잇따른 지진에 파손된 기와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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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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