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후공정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스태프칩팩코리아에서 일하다 19살에 독성 간 질환이 발병한 노동자가 산재 불승인 취소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산업안전보건 단체는 "부실한 조사 및 의학적 감정에 기댄 부당한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27일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성명을 내고 "법원은 실제 생산 현장에서 취급한 수많은 화학물질을 조사하지 않고, 사업주가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와 작업환경측정결과만을 근거로 노출수준이 낮다고 판단했다"며 "첨단산업의 불확실한 위험을 간과한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 행정8단독 신옥영 판사는 지난달 16일 스태프칩팩코리아 전직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 선고공판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원고는 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 재생불량성 빈혈, 무과립구증 등을 진단받고 2022년 7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으나 2024년 5월 기각 처분을 받은 뒤 그해 8월 소송을 제기했다.
신 판사는 법원 감정의(서울의료원) 의견서를 근거로, 원고가 일한 공정의 물질안전보건자료를 검토한 결과 트리클로로에틸렌(TCE), 톨루엔, 비소, 납 등 급성 독성 간염을 일으킨다고 알려진 물질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소프로필알코올, 아세톤, 주석, 구리 등이 포함된 물질은 취급했으나, 작업환경측정결과 등을 보면 대부분 한계 농도 미만으로 검출됐거나 불검출됐다고도 밝혔다.
또 같은 자료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노출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고, 원고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기 전 화학물질의 노출량 등의 뚜렷한 변화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질환과 업무 간의 인과 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신 판사는 '원고가 2021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직후 재해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근로복지공단 측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질환이 "오히려 백신 접종과 관련된 것으로, 업무 외 면역학적 요인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반올림은 법원이 "회사에서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만을 가지고 "화학물질 성분과 노출 수준"을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주문형 반도체 생산 특성상 매일 혹은 매주 다른 화학제품을 교체해 가면서 작업했고, 이의 종류와 구성성분이 무엇인지" 원고로선 확인할 길이 없는데, 근로복지공단이 역학조사에서 이를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공단 역학조사 자료에는 사업주가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따라 고작 플럭스(납땜 등을 돕는 접합 촉매제) 1종류, 페이스트(금속 분말·화학물질 등을 섞어 만든 접착제) 4종류, 세척제 2종류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라며 "극히 일부의 물질로만 판단한 부실한 역학조사"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사업주의 통제 하에서 이뤄지는 작업환경측정결과에만 기대어 (위험 물질) 노출 수준이 낮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며 "이 결과는 실제 노출수준보다 매우 낮은 측정치를 보이므로 신뢰도가 낮은 자료라는 게 많은 판결에서 언급됐다"고 지적했다.
반올림은 "오히려 원고와 동료들의 진술처럼 거의 맨손으로 약품을 다루고 매일 사용한 세정실에서 코를 찌르는 유기용제 냄새와 유기폐액 냄새로 가득했던 사실, 얇은 비닐장갑을 꼈지만 세척 도중 찢겨 손 피부가 벗겨질 정도였던 사정만 고려해도 화학물질 노출수준이 낮다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을 언급한 데 대해 반올림은 "원고가 발병 이전에 맞은 백신까지 언급하며 산재를 부정하는 1심 판결은 상식적이지 않다"며 "이미 2017년 대법원은 불확실한 위험이 큰 첨단산업에서 발생한 희귀질환에 대해 행정청의 부실 조사나 사업주의 비협조 등을 노동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고 밝혔다.
원고는 지난 14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2002년생인 원고는 2020년 10월 스태프칩팩코리아에 입사해 일하던 2021년 12월 급성 간 독성을 포함한 재생불량성 빈혈, 무과립구증 등의 희귀질환을 진단받았다. 원고 측은 "주석, 구리, 에틸렌글리콜, 이소프로필알코올, 엑스선, 야간작업 등 유해위험요인 복합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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