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만 하는 SNS? '거리의 해커'들은 어떻게 앙숙들을 대화하게 만들었나?

[세계의 공론장] 대만 'vTaiwan' 사례로 본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

2026년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하여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집회를 둘러싸고 SNS에서는 거센 논쟁이 이어졌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누군가는 시민의 정당한 집회이며 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런 시위가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를 '부정' 선거로 프레이밍하며 극우 세력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각자의 SNS 공간에서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게시물이 끊임없이 등장했고, 반대편의 주장은 그것을 반박하거나 조롱하는 형태로 인용되어 나타났다.

이러한 갈등의 이유로 흔히 필터 버블 현상이 지목되어 왔다. SNS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정보만 보여주기 때문에 SNS를 사용할수록 원래 생각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정' 선거 관련 SNS 논쟁에서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의견도 수도 없이 접했다. 다만 그것을 충분히 검토하고 대화해볼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다. 이때 대화의 어려움은 대화의 과정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데 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고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대만의 디지털 공론장 vTaiwan 사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vTaiwan은 대만 행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에 저항하는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되었다. 2013년 대만의 마잉주 정부와 중국이 양안 서비스무역협정(CSSTA)에 서명하자, 시민들은 이 협정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그럼에도 국회 상임위원장은 협정을 심사 없이 통과시키겠다고 선언하며 절차를 강행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입법원을 점거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한 시민이 시위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해바라기 꽃다발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해바라기가 운동의 상징처럼 사용되며 이 운동은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점거는 3주 동안 이어졌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76%의 국민이 여당인 국민당에 불만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014년 11월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은 제1야당이던 민진당에 참패했다. 이 결과는 해바라기 운동이 만들어낸 나비효과로 평가되었고, 여당은 시민사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운동 이후 대만 정부는 시민 개발자 커뮤니티인 거브제로(g0v)와 협력을 시작했다. 거브제로는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시민활동가들이 모여 정부 정보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활동하던 시민 해커 커뮤니티다. 이들은 해바라기 운동 당시 온라인에 시위 소식을 공유하거나, 시위대의 인터넷 연결을 지원했다. 이외에도 서비스 무역 협정이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온라인 도구를 개발해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의 불투명성을 없애기 위해 분투했다. 정부는 거브제로에 정책을 이성적으로 토론하고 숙의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을 제안했고 그 결과 vTaiwan 운영이 시작되었다.

vTaiwan의 'v'는 비전(vision), 목소리(voices), 투표(vote), 가상(virtual)을 의미한다.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이에 대해 투표하며 시민들 사이에서 합의된 비전을 모색해나가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이 플랫폼은 단순히 시민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방적으로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고 정부가 답하는 청원이나, 개인들의 선호와 태도를 조사하여 보여주는 여론조사와는 다른 시도였다.

vTaiwan은 미국에서 개발한 폴리스(Pol.is)를 핵심 도구로 활용했다. 폴리스는 극단적 양극화와 부족주의로 공론장이 위협받는 시대에 사람들 사이의 합의점을 찾겠다는 목표로 설계되었다(Megill, 2022). 폴리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운영되었다. 첫째, 다른 사람의 글에 댓글을 달 수 없다. 참여자는 자신의 의견을 게시하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의·비동의·건너뛰기로 반응할 수 있다. 둘째, 참여자들의 투표 패턴을 분석해 의견이 어디서 갈라지고 모이는지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셋째, 서로 대립하는 집단이 함께 동의한 의견을 우선적으로 제시한다(양지수, 2026).

이러한 특징이 실제 갈등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2015년 대만의 택시 업계와 우버(Uber)를 둘러싼 논쟁에서 잘 드러난다. 우버는 일반인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차량 공유 플랫폼으로 대만 진입 이후 기존 택시 산업과 강하게 대립해왔다. 스스로를 IT 기업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기존 택시 산업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운송업체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사한 이유로 우버는 다른 국가에서도 이미 지방 규제 당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vTaiwan은 이 논쟁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먼저 약 한 달간 Pol.is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9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3만 건이 넘는 찬반 투표가 진행되었다(Hsiao et al., 2018). 알고리즘은 "정부가 이 기회를 활용해 택시 산업과 그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문장에 전체 참여자의 95%가 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우버가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위험하다고 느낀다."는 문장에는 한 군집에서 79%가 비동의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집단 간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합의 가능한 의견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양지수, 2026).

4주간 수집된 합의점들은 이후 생중계된 공개회의에서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 회의에는 우버 측을 포함해 대만의 택시산업 이해관계자, 정부 부처 담당자 등이 참석했고 생중계에는 2000명 가까이 접속했다(Hsiao et al., 2018).

이전까지는 우버 문제에 대해 어느 부처도 소관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았지만, 이 회의에서 교통부, 경제부, 재정부가 한자리에 모여 시민들의 합의점을 검토하고 토론했다. 회의를 거쳐 우버는 운전자들이 영업용 면허를 따도록 독려하고 책임 보험을 재검토하기로, 택시기사 단체는 협력 의지를 밝히고 서비스를 개선하기로 약속했다. 갈등하던 양측이 서로 한발 양보하면서 구체적인 문제 해결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교통부도 폴리스에서 도출된 합의를 수용해 규정을 수정하기로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Pol.is의 설계는 갈등의 방향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논쟁의 초점이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의견에 함께 동의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답글을 달 수 없었기에 논쟁이 의제를 등록한 특정인을 향하지 않았고, 의견 지형이 시각화되었기에 참여자들은 어떤 의견이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지 볼 수 있었으며, 대립하는 집단 사이에서 동의가 높은 항목이 먼저 드러났기에 합의 가능한 경계가 분명해졌다. 이런 측면에서 vTaiwan은 온라인 공론장을 통해 보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갈등을 다룬 성공적 사례로 거론된다.

그러나 합의 이후에도 우버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었다. 공개회의 이후 택시 규제 정책 변화가 이어졌지만, 2016년 우버 운전자에 대한 벌금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우버 측의 반발을 샀다. 우버는 대만에서 철수했고 운전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시작했다. 택시 산업 기사들이 2015년 교통부를 에워쌌던 장면이 뒤집혔다. 이후 우버는 렌터카 회사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재개했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2014년 해바라기 시위 당시 입법원 담장 밖에서 자신의 휴대폰으로 생중계 회선을 잇던 해커가 있다. 2년 뒤 그는 정부 청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브제로의 활동가 중 한 명이었던 해커 오드리 탕(Audrey Tang)이다. 그는 2016년 차이잉원 정부의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으로 발탁되었고, 2022년에는 신설된 디지털부의 초대 장관을 맡았다.

탕의 입각은 개인의 출세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정부의 정책 집행을 비판하는 위치를 넘어 국정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탕은 먼저 디지털 정무위원으로서 각 행정부처가 서로 고립되지 않고 연결되어 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개방형 정부 운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vTaiwan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개발한 숙의 및 참여의 방법을 공식 청원 플랫폼이었던 조인(Join)과 연계했다. 시민들의 실험적 시도가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vTaiwan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2016년 정권이 교체되며 정부는 계류 상태의 법안을 모두 철회하였고, vTaiwan에서 합의되었던 법안들은 제정되지 못했다. 2018년 이후에는 새로운 의제를 다루는 활동이 줄어들었고, 조인이 시민참여 통로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주요한 사회적 합의에 활용되지 않으면서 활동은 침체되어 갔다. 2023년 OpenAI에서 지원금(그랜트)을 받으며 재가동되어 사기범죄피해방지법, AI 기본법 등의 숙의를 진행했지만 현재는 정부와 협력하고 있지 않다.

공식 제도화 이후 기존 플랫폼이 힘을 잃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제도화된 숙의의 방식이 기존의 시민 숙의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하고 유지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vTaiwan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합의를 형성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Join은 정책을 제안하고, 지지하는 정책에 서명하면 정부의 공식 답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있다. 반면 정책 제안이나 청원 과정에서의 충분한 논의나 시민 의견 반영에는 상대적인 한계가 있었다(Chen, 2016; Roch et al., 2022).

오드리 탕의 입각과 vTaiwan의 변화는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공론장이 제도화되는 과정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시민사회에서 출발한 공론장 실험이 정부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채택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독립적인 시민사회 플랫폼은 약화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vTaiwan 사례를 단순히 성공 혹은 실패로 보기는 어렵다. 이 사례는 온라인 공론장을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제도와 연결되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온라인은 한국 사회에서도 일상적인 공간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하루 평균 3시간 가까이 인터넷에 머무르며(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2026),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뉴스 소비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25a; 2025b). 누구나 온라인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접하고, 자신의 의견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의견에 노출된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서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하지만 정작 그 정보를 신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주장이 왜곡되거나 편향된 정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을 진지한 대화 상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2025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뉴스가 허위정보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한국언론진흥재단, 2025a).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인지를 검증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기존 의견에 부합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이제 다양한 입장의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는 정보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거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다. 서두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반대 의견은 조롱과 반박의 대상으로 계속 등장했다. 상대의 주장을 검토하기보다 드러난 정치적 선호를 통해 상대방의 민주주의 인식과 지적 수준을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견을 바꾸는 것은 토론을 통한 변화보다 논쟁에서의 패배로 여겨지기 쉽다. 다른 의견을 접하는 기회를 넘어서, 어떤 맥락에서 접하고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공론장들이 여러 부분적 공론장으로 나뉘어 있더라도 서로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하버마스, 2007). 오늘날 온라인 공간은 누구나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린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게시된 의견들이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검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공론장의 개방성은 단순히 누가 입장할 수 있는가를 넘어 어떤 규칙과 태도 아래서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떻게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서로를 변화시키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vTaiwan 사례가 주는 시사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의견 표시의 방식을 특정하게 제한함으로써 우리가 더 많은 공통점을 찾아내는 데 기술을 활용하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대만의 사례는 기술 발전의 비관적 결과를 단순히 관망하지 않고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온라인이 이미 우리 삶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면, 어떻게 그 공간에서 합의와 신뢰를 만들어나갈 것인지는 기술을 설계하고 활용하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vTaiwan은 이런 사회에서 온라인 공론장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버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갈등이 해결되거나 합의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조건은 무엇이며, 그 조건은 왜 지속되기 어려웠을까?

먼저, vTaiwan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을 제한했다. 일반적인 SNS에서는 누군가 의견을 게시하면 댓글 기능을 통해 반박과 조롱이 가능하다. 심지어 해당 게시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면 논쟁이 이루어지는 장소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이동한다. 이러한 구조는 의제의 빠른 확산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분산된 게시글에 흩어진 의견을 하나의 논의로 모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Pol.is에서는 사람들이 명제의 형태로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동의나 비동의만을 표시할 수 있는 조건으로 참여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참여자들이 어떤 지점에서 합의를 이루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가보다 어떤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의견을 게시한 개인을 겨냥하는 대신 하나의 주장을 검토하고 서로의 교집합을 찾아낸다.

물론 이 방식으로 충분한 숙의를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의 주장에 동의하더라도 그에 대한 근거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간결한 의견표시는 의견이 형성된 맥락이나 판단의 근거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을 설득할 기회나, 설득되어서 의견을 수정할 기회 또한 거의 없다.

게다가 다수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각화되면, 소수의 주장이지만 아주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위험도 있다. 예컨대 장애인의 이동권은 비장애인 다수에게 시급하지 않은 문제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사안이다.

vTaiwan은 이러한 한계를 온라인과 대면 논의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완했다. Pol.is에서 확인한 공통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 관계자들과 이해관계자들이 각자의 판단 근거를 설명하고 정책 대안을 논의하도록 했다. 온라인에서 대화의 문을 열었다면, 대면 회의에서 그 대화를 깊이 있게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둘째로, vTaiwan은 시민들의 논의가 실제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게 운영되었다. g0v가 정부와 협력하여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정부는 디지털 경제 의제에 관해 수렴된 의견을 입법에 활용하기로 협의했다(CrowdLaw, 2020). 2017년부터는 각 부처가 참여담당관을 두고 온라인에 의견이 제시되면 일주일 내로 답변하도록 했다(CrowdLaw, 2020). 시민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할 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와 함께 검토하고 정책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내 의견이 우리 공동체의 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시민들이 시간을 내어 참여할 이유가 된다.

하지만 정부의 응답 약속이 합의된 내용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vTaiwan의 절차에는 논의된 사항의 관련 부처가 결정된 사항을 입법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단계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정부가 그 결론을 제도화할 의무는 없었다. 2019년에 vTaiwan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한 정부 책임성을 강제하려던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공식 책임이 약속되지 않은 구조에는 정부가 시민참여를 근거로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도 그 결과를 이행할 책임은 지지 않는 이른바 '오픈 워싱(Open-washing)'을 만들어낼 위험이 내재해 있다. 절차에 따라 논의하더라도, 그 결과가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시민들의 참여 동기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로, vTaiwan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만들고 운영한 플랫폼이었다. 정부와의 협력에서 출발했지만 플랫폼을 구축하고 유지한 것은 g0v의 자원활동가들이었고, 운영에서도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는 큰 장점이기도 하다. 무엇이 공적으로 논의될지를 시민사회가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정부가 제시한 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러나 시민 해커들의 자원활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vTaiwan의 운영이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플랫폼을 유지·보수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춘 활동가들이 많지 않아 안정적인 인력과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또 vTaiwan 사례처럼 시민사회가 공적인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 논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때는 그 권한과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출되지 않은 시민사회 행위자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운영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vTaiwan을 잘 작동하게 한 세 가지 조건은 동시에 한계가 되기도 했다. 대안적 공론장은 온라인에서 의견을 모으는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서로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그 대화를 숙의와 실제 정책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지속될 뿐만 아니라 반복될 수 있는 조건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vTaiwan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가장 주목할 점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발언의 형식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서두의 투표지 논쟁에서 문제는 다양한 의견을 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대하는 태도였다. vTaiwan은 서로 다른 집단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드러내고, 그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의 출발점을 마련했다.

물론 대화가 시작된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되거나 충분한 숙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vTaiwan의 의의는 완성된 공론장을 구현했다는 데 있기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 대화를 보다 깊은 숙의와 실제 정책 결정으로 연결하려면,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규칙만큼이나 그 대화를 헛되게 만들지 않는 제도적 책임도 필요할 것이다.

단순해보일지 모르지만, 오늘날 이러한 대화의 출발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고, 서로의 주장을 제대로 들어보기도 전에 적대가 앞서는 상황에서는 대화의 시작이 어렵기 때문이다. vTaiwan은 의견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의견을 접하는 일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연결을 어떤 대화로 이어갈 것인가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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