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당선에 여의도 몰린 시민들…"12월 그날, 마침내 끝났다"

[현장] 李, '당선 확실'에 계양→당사→여의도광장…수락연설에 5000명 운집

30대 남성 A 씨는 지난해 12월 3일 밤 국회를 찾았다. 늦은 퇴근 후 집에서 쉬던 중, 여자친구로부터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니 국회의원과 시민들이 '계엄을 막기 위해 국회로 이동 중'이라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이 되진 않았지만 "그냥 일단 국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대체 어떤 일이 대체 무슨 이유로 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벌어진 것인지 그는 끝까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에 국회를 찾았고, 그 불안감은 국회 상공을 지나가는 군용 헬기를 보고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새벽 한 시가 넘어 '계엄이 해제됐다'는 소식이 나오자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그 후로는 다시 분노와 초조함이 그를 쫓았다.

A 씨는 소위 말하는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었다.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까지도, '분노와 초조함'은 계속됐지만 딱히 탄핵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특별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정치집회보다는 생업이 급했다. 그랬던 그가 4일 새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 연설을 듣기 위해 여의도광장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날 밤의 계엄이 마침내 끝났다"는 생각 때문이다.

3일 밤 자정께, 6.3 대선의 개표율이 47%가량 진행된 상황에서 이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이 후보는 인천 계양구 자택에서 "국민들의 위대한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는 짧은 소감을 밝힌 뒤 서울 여의도로 출발, 민주당사에서 선대위원들과 당직자들에게 격려를 전한 뒤 다음날 오전 1시 12분께 여의도광장을 찾아 수락연설에 나섰다.

이 후보의 당선 소식에 광장을 찾은 A 씨는 이 후보의 연설이 끝난 직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날의 계엄이 마침내 끝났다는 생각에 다시 국회를 찾았다"며 "이재명 후보를 원래부터 지지하진 않았다. 다만 이 계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작년 12월 3일 '내란의 밤'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풍찬노숙하면서 간절히 바랐던 것", 이 후보가 당선 일성으로 전한 이 말은 A 씨가 느껴온 '분노와 초조함'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3일 자정 기준 민주당 측 추산으로 여의도광장에는 5000명가량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4일 1시 26분께, 이 후보가 연설을 마치고 퇴장한 광장에는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국민통합", "민생회복", "내란종식" 등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시민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다. A 씨 또한 "무엇보다 내란을 확실하게 종식해야 한다"고 본인의 염원을 강조했다.

그는 "계엄 이후 보수적인 성향의 친구들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국민통합' 과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계엄 전엔 스스럼 없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내 생각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비상계엄 선포에도 불구 '이재명은 안 된다'고 화를 내자 "정치구조 자체가 뭔가 잘못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법적인 절차는 확실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이재명은 윤석열과 달라야 한다. 다르기를 기대하고 뽑았다"고 말했다. 일산에서 온 70대 여성 B 씨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국민통합"이라고 국정과제를 꼽았다. B 씨는 "국민의힘에서 이재명을 향해 '괴물독재'라고 하지만 진짜 괴물은 윤석열이었다"며 "이재명은 잘 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인 50대 여성 C 씨는 "고생이 너무 많았다, 정치인들도 정치인들이지만 국민들이 너무 고생이 많았다"고 "오늘의 정권교체가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에도 이 후보를 지지했던 C 씨는 "(이 후보가) 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할 일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자영업자인 C 씨는 특히 "경제는 각별히 신경 써야한다"고 이재명 정부의 앞으로의 과제를 짚었다. 그는 "내란도 내란이지만 윤석열 정부 하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며 "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희망이 보인다"고 이 후보 당선에 대한 소희를 전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건 등 내란사태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 또한 이날 연설에서 "내란을 확실히 극복하고 다시는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을 겁박하는 군사 쿠데타는 없게 하는 일",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회복시키는 것", "대한민국 국가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평화롭고 공존하는 안정된 한반도", "편을 갈라서 서로 증오하고 혐오하고 대결하게 하지 않겠다"고 본인의 과제를 꼽은 바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벌어진 이번 대선에선 당선인 신분의 인수위원회 절차가 없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7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교부 받는 즉시 대통령직에 취임, 그로부터 곧바로 이재명 정부의 임기가 시작된다. 이날 오전에는 대통령 취임식이 예정돼 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국민개표방송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대선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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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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