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는 아리송한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은 대체적인 완승을 거뒀으나 서울을 빼앗기고 평택 재보선에서 국민의힘에 어부지리를 안겼으며, 전북에서 무소속 후보에 고전했다. 서울 한강벨트와 경기도의 핵심 중산층 지역을 모두 빼앗긴 것도 뼈아픈 일이다. 다음 전당대회를 두고 여권 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두 세력이 계파 전쟁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국민의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어쩜 '승자의 저주', 혹은 '승자의 역설'일지 모른다. 특히 송파 등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크리티컬한 이슈로 키운 건 국민의힘의 전술적 고려로 인한 것이겠지만, 전략적으로 보면 완전한 패착이다.
가정은 현재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번째 시뮬레이션은 민주당이 서울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투표 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을 경우다.
여권에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지만, 부정선거론을 부여잡고 있던 장동혁 지도부에게는 최상의 경우다. 만약 서울에서 패배했다면 지도부 사퇴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장동혁 지도부는 '부정선거'와 '재선거' 프레임으로 돌파를 시도했을 것이다. 아마도 '올공 시위대'나 '극우 유튜버'와 완전히 결합하고, 패배한 오세훈 시장(다시 말하자면 시뮬레이션 상)이 장동혁 지도부의 주장에 이끌려갈 경우 정국은 아수라장이 된다. 보수 정당 개혁은 완전히 물건너 가는 것이다.
두번째는 민주당이 서울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지지 않았을 경우.
이건 반대로 장동혁 지도부에겐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보수 정당엔 회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당 지도부는 즉각 사퇴하고 '언더 찐윤'이 청산 수순을 밟으면서 보수 당 내부에서부터 정계 개편이 시작됐을 것이다. 독자적 힘으로 생존해 들어온 한동훈은 '언더 찐윤'을 청산하고 새로운 보수 정당의 리더로 설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을 것이고, 패배한 오세훈 역시 정당 득표율에 비해 선전했다면, 다음 총선을 도모하며 당내 입지를 키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을 지 모른다.
세번째는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지지 않았을 경우.
아마 지금 정청래 지도부가 겪고 있는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청산 대상인 장동혁 지도부는 '선전했다'는 자평 하에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시장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내부 개혁 세력이 힘을 받으면서 팽팽한 계파 투쟁이 전개됐을 것이다. 그리고 '영남 토호 세력'과 '수도권 세력'이 맞서게 될 것이다. 저항은 극심하겠지만 '지도부의 무능으로 서울 빼고 다 졌다'는 프레임이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윤어게인'과 같은 퇴행 세력은 힘을 잃어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네번째 시뮬레이션은 이미 현실이 된 이야기인데, 국민의힘이 서울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진 경우다.
정치란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4개의 시나리오 중 가장 애매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부실 선거'와 야당의 승리가 하필 겹쳐버렸으니 그렇다. 지금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전국 전면 재선거"를 외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내가 오세훈이라면 재선거를 선언했을 것'이라며 자당의 숨통을 틔워준 승리자를 오히려 압박하는 희한한 일을 벌이고 있다.
가정이란 건 부질없는 일이지만, 오세훈 시장이 개인기로 아슬아슬하게 생환하면서 장동혁 지도부는 패배의 책임을 희석하고 버틸 명분을 쥐게 됐다. 재보선에서 의석수를 늘린 것도 한 몫 했다. '친윤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점식 원내대표가 선출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오세훈의 승리가 당의 철저한 인적 쇄신과 지도부 교체(패배 책임론)를 막아서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어렵게 생환한 한동훈 역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매우 좁아졌다. 오히려 당내 갈등은 '보수 정당 재건'이 아니라 '이겼어도 재선거'와 같은 소모적인 이슈로 옮겨 붙어버렸다.
벌써부터 '공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차기 당권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 사정을 잘 아는 보수 정치평론가 장성철은 "친윤들이 장동혁 대표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버팀목인데, 그분들이 지금 (차기 당대표) 서류 면접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당을 지탱하고 있는 '언더찐윤'들에게 공천을 보장할 수 있는 인물, 그가 장동혁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당권을 재창출할 수 있수만 있다면 장동혁 대표는 기꺼이 그 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승리한 오세훈이 당내 입지가 약한 것도 문제다. '송파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지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터졌더라도 장동혁 지도부가 이렇게까지 이슈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세훈은 차기 대권 주자로 입지를 다지게 되고 당 내에서 자연스레 계파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장동혁의 '몽니'가 이런 구상과 전망을 헝클어뜨리고 있다. 지금 오세훈 시장은 오히려 상당히 외로운 상황일 것이다. 우군들은 숨을 죽이고, 적군들은 '재선거'를 외친다.
어쩜 오세훈 시장의 당선은 보수 진영의 파멸을 막은 승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갈등을 점화시키고 개혁의 타이밍을 놓치게 만든 '승자의 저주'가 될 가능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유권자는 장동혁과 윤석열을 심판하며 차기 주자들을 살리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움직였지만, 예측 못한 새로운 불씨들이 만들어졌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기도하지만, 주어진 환경의 종속 변수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이, 국민의힘이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이라는 존재 때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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