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소년공' 출신으로, '비주류·변방의 장수'를 거쳐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 후보의 일생과 정치적 여정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이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대선에서 승리하며 '빛의 혁명'을 완수할 책무을 짊어지게 됐다.
"참혹하게" 가난했던 소년공… '억강부약'의 토대를 쌓다
이 후보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참혹했다"고 회상했다. 지난 4월 발간한 이 당선인 회고록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그는 "나와 우리 가족은 시장에서 버린 썩은 과일로 배를 채우며 살았다. 공장 일을 하다가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으깨져 장애인이 되었고, 앞날이 깜깜한 열여섯 이재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며 "내 인생은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고 했다.
1964년 경북 안동 화전민 마을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후보는 주민등록상 1964년 12월 22일생이지만, 실제 태어난 연도는 1963년쯤이다. 출생 신고를 늦게 할 정도로 불우한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아버지는 고향을 떠났고 어머니 혼자 남은 자식들을 건사했다. 안동 삼계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 성남 성대원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으나 가난 끝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동마고무'라는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나이가 너무 어려 동네 형의 이름을 빌려 위장취업했다. 시계공장에서는 스프레이 작업을 하다가 후각이 상했고,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왼팔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꼬리표처럼 붙어다닌 가난 때문에 치료를 받기도 어려웠다. 이 사고로 이 후보는 6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 탈출구는 공부뿐이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1980년 7월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그러면서도 평생 공돌이로 썩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일기에 적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주경야독'으로 고입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기름때 묻은 손으로 버텼던 소년공으로서의 시간은 그가 강조하는,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자를 돕는 정치 철학인 '억강부약'의 토대가 됐다.

인권변호사 이재명 '성남시의료원'을 계기로 정치를 결심하다
이 후보는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3년 등록금 전액 면제와 월 20만 원 생활비 지원이라는 혜택 덕분이었다. 장애 탓에 회사에 취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는 사법고시에 승부를 걸었다. 그리고 1986년, 4학년이던 이 당선인은 사법고시 합격증을 손에 쥐며 새로운 삶의 경로로 접어들게 된다.
사법연수원 시절 접한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을 계기로 그는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통해 꼭 판·검사가 아니어도 먹고살면서 공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됐다고 그는 술회했다. 이 후보는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를 맞아 페이스북에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남모르게 번민하던 연수원 시절, 노무현 인권 변호사의 특강은 제 인생의 방향에 빛을 비춰주었다"고 적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영등포구 유세에서 "처음에는 판·검사해서 그냥 배 두드리고 소위 큰소리 뻥뻥 치고 룸살롱 접대 받으면서 살려고 했다"며 "그런데 그거 다 접고 내가 일하던 성남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서 노동 인권 변호사로, 그 다음에는 시민운동가로 시립병원 설립 운동하다가 두 번째 구속될 뻔해서 '에이 이러느니 내가 직접 시장 돼서 내 손으로 하자' 고 정치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1989년 이 후보는 소년공 시절을 보냈던 성남에 변호사 사무소를 열었다. 구속노동자 무료 변론, 광주 노동상담소 개설 등 '노상 변호사'로 주로 노동·인권 사건을 맡아 변호했다. '성남시민모임'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가의 삶을 시작했고, 2002년 권력형 비리사건인 '파크뷰 특혜사건'에 몰두하게 된다. 당시 이 당선인은 파크뷰 특혜분양 의혹을 취재하던 KBS <추적 60분> PD와 함께 고(故) 김병량 전 성남시장을 취재하다 이른바 '검사 사칭' 사건으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에서 파생된 '위증교사' 사건으로 이 당선인은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다.
성남 구시가지 대형 병원들의 폐쇄로 의료 공백이 심각해진 2004년 성남 공공의료원 설립을 목표로 시민 2만 명의 뜻을 모아 주민 발의 조례를 만들었다. 하지만 성남시의회에서 47초만에 '심의보류'가 선포되며 날치기로 부결됐다. 오열하며 강하게 항의한 그에게 돌아온 건 특수공무집행 방해였다. 체포를 피해 성남 주민교회 지하실에 있던 그는 이 곳에서 성남시장이 되어 성남시의료원을 설립하겠다며, 처음으로 정치를 결심하게 된다.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지난 2일 주민교회를 찾은 이 후보는 "제가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에 이 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당시 시간까지도 생생하게 회상하며 "우리가 시장에 당선돼서 우리 손으로 시립의료원 만들자고 해서 정치를 시작했다. 저의 정치 첫 출발지"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치를 통해 성남시민들에게 건강한 삶을 보장해주는 게 정치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고, 한시도 이를 잊어본 적이 없다"며 초심을 언급했다.

'변방의 장수'가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하기까지
삼수 끝에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선출된 이 후보는 취임 11일 만에 성남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며 파격 행보를 폈다. 그리고 2013년 그의 정치 출발점이었던 시립의료원의 착공이 시작됐다. 3년만에 성남에 쌓인 4572억 원의 빚을 청산하며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에 성공한 이 후보는 3대 무상복지 사업으로 불리는 무상 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 배당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을 통해 '이재명 브랜드 정책'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 공약으로 불리는 기본소득, 기본사회 등 '기본 시리즈'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2016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에서 민주당 정치인 중 처음으로 '탄핵'을 요구하기도 했다. '변방의 장수'였던 그는 특유의 '사이다 발언'과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주목을 받으며 민주당 대선주자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문재인·안희정 후보에 이어 3위로 최종 후보가 되지는 못했다. 독보적인 캐릭터로 인지도와 함께 팬덤을 구축하는 정치적 성과를 달성했지만, 당내 친문계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이 대표는 지난 2월 한 유튜브 방송 인터뷰에서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을 언급하며 "'오버'하는 바람에 그 후과를 지금도 치르고 있다"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에겐 패배했으나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당내 경선에서 당시 경쟁자였던 전해철 전 의원 등을 공격한 '혜경궁 김씨' 논란,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등의 의혹이 제기되며 곤욕을 치렀지만 도지사 시절 계곡의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고,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는 등의 행보로 주목받았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적 정책이라는 비판도 따랐지만, 기본소득·기본금융·기본주택 등 '기본 시리즈' 윤곽을 완성하며 민주당 대권주자로서 자리를 굳혔다.
202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대선 패배 두 달 만인 2022년 6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같은 해 8월에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듬해인 2023년 백현동 개발 특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으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며 또다시 위기에 직면한다. 하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극적으로 구속 위기를 면했다.

이후 지난해 4월 실시된 제22대 총선에서 이 후보는 '비명횡사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171석 압승이라는 결과로 이를 돌파했다. 총선 유세 중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목을 찔리는 피습을 당하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이 후보는 같은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85%라는 득표율로 당대표에 연달아 당선되며 '이재명의 민주당'을 완성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89.77%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제21대 대통령선거 본선 후보로 선출됐다. 그리고 4일 새벽 현재 승리가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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