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의 말이다. '스타 강사' 출신인 이 부원장은 교육평론가로도 활동했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정책보좌관, 2012년 안철수 대선캠프 교육정책포럼 총괄역을 맡았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부설 정책연구소다.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정부·여당은 수능시험 수험생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야권과 진보 진영은 물론,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등 보수 성향 언론까지 국정화에 비판적 반응을 보이면서 학부모들이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지지해 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1일 당정협의에서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여론 조사에서 학부모 중 56.2%가 국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수능 필수 과목인 한국사 교과서 통합으로 수능 부담이 최소화 되길 바라는 대다수 학생들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범 부원장은 그러나 이같은 여권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밝혔다. 그는 14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2017년부터 수능 필수 과목이 된 한국사는 9등급 절대 평가"라며 "교과서가 한 종류든 여러 종류든, 절대평가제 도입으로 (수험생) 부담은 이미 많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 부원장은 "결과적으로 1등급이 전체의 몇 퍼센트가 될지는 설계하기 나름이겠지만, 저는 15%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며 "그러면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교과서(국정화)로 인한 차이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의 반응은, 냉소적으로 보면 '국사는 어차피 암기 과목'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교과서가 검정이든 국정이든 학생들 부담이나 (교사의) 수업 부담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봐요. 그러니 '이런 방향으로 해야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이 줄어든다'는 식의 논의는 큰 근거가 없는 겁니다. 그보다 학생들 부담감을 줄이는 데에는 9등급 절대평가 등 수능 제도 변화가 더 효과적입니다."
이 부원장은 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등 교육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부분에서 보면, 잘못해서 '뉴라이트' 부실 교과서가 나온다면 논란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행 교과서 검정 제도 '대안'일 수는 없어…자유 발행제 해야"
이 부원장은 한편 같은 당 전병헌 최고위원이 '교과서를 국정화하면 오히려 학생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관련 기사 : 새정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수능 더 어려워져")
"'교과서가 여러 권이면 공통적인 내용만 공부하면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솔직히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떤 게 공통적인 내용이고 어떤 게 이 교과서에만 있는 내용인지 구분을 못 해요. 척 보기만 해도 아는 건 아니니까요. 그걸 잘 구분하는 사람은 학원 강사들이나, 고3 담당을 오래 해본 학교 선생님들 정도일 겁니다."
이 부원장은 나아가 "국정 교과서의 대안이 '검정'이라는 것도 아닌 것 같다"며 "검정 역시 국가가 하는 것 아니냐. 지금 검정 기준이 얼마나 빡빡한가 하면, 소단원 제목까지 다 (정부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유럽은 대부분 자유 발행제나 인정제를 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수포자(수학 포기자)' 논란과 함께 교육 현장에서 화제가 된 '핀란드 수학 교과서'를 언급하기도 했다.
"핀란드 수학 교과서, 그거 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 가르치려고 만든 거에요. 교사에게 교과서 집필권까지 주는 거죠. 물론 국가에서 '몇 학년 때 두 자릿수 곱셈을 가르쳐라' 이 정도 지침은 주지만, 그걸 어떻게 하느냐는 알아서 하라는 거죠."
이 부원장은 이런 맥락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알맞은 교과서 제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해온 보수·극우 단체 쪽에서 늘 내세우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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