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워싱턴서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 피살…용의자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스라엘군, 서안지구서 EU 등 외교관들 향해 경고 사격·각국 분노…"분위기 변했다" 이스라엘 내부서 반전 목소리 커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세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2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이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친 용의자에 의해 숨졌다. 같은 날 이스라엘군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둘러보던 유럽연합(EU) 외교관을 포함한 수십 명의 대표단에 경고 사격을 가했다. 유럽은 가자지구 식량 봉쇄를 비판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을 키우는 중이다. 각국은 이스라엘에 분노를 표하며 조사를 촉구했다.

<뉴욕타임스>(NYT), 미 CNN 방송 등에 따르면 21일 오후 9시께 워싱턴DC 유대인 박물관 인근에서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이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출신의 용의자 엘리아스 로드리게즈(30)는 사건 직후 붙잡혔다. 경찰은 로드리게즈가 총격 뒤 박물관에 진입했다가 경비원에 붙들렸고 구금 뒤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다고 밝혔다.

이날 해당 박물관에서는 미국유대인위원회가 주최한 젊은 외교관 대상 행사가 열렸다. 피해자들은 행사장을 나서던 길에 총에 맞아 숨졌다.

피해자 신원은 즉시 공개되지 않았지만 예히엘 레이터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피살된 남녀 직원이 연인 관계로, 남성이 여성에게 곧 청혼할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을 단독 범행으로 보고 추가 위협이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범행 전 박물관 밖을 서성이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덧붙였다. 용의자는 이전에 경찰에 위험 인물로 특정된 적은 없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번 사건을 "반유대주의"로 규정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 사건이 "반유대주의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거친 선동의 끔찍한 대가"라며 전세계 이스라엘 공관의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사건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강경책을 취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극우 파트너들에게 정치적 탄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최근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을 강화 중인 서방 동맹국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워싱턴 DC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두 명의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과 그들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며 "우리 정부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야만적인 범죄행위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서안 인권 상황 살피던 EU 등 외교관 수십 명 향해 경고 사격…유럽 압박 커진 상황서 마찰 심화

유럽이 이스라엘의 최근 가자지구 공세 확대 및 장기 식량 봉쇄에 대한 압박을 키우는 가운데 이날 앞서 서안지구를 둘러보던 EU 포함 수십 명의 외교 대표단이 이스라엘군에 경고 사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 <AP> 통신 등을 보면 21일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주관 아래 서안지구 제닌에서 공식적으로 인도주의 상황을 살피던 EU 및 영국, 이집트 등 20개국 이상의 외교 대표단을 향해 여러 발의 경고 사격을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부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약 20명 규모의 대표단이 제닌 난민촌 현장을 둘러보고 언론 인터뷰를 하던 중 최소 7발의 총성이 들렸고 외교관들은 황급히 대피했다.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팔레스타인 외무부는 외교관을 향한 발포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대표단이 "승인된 경로를 이탈해 허가 받지 않은 지역으로 진입"해 경고 사격이 이뤄졌다고 설명하며 "불편을 초래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만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제닌 시장 모하마드 자라르는 대표단 방문 경로는 이번 주 초 이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이 합의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현장엔 외교관과 언론인만 있었고 방문 계획은 공식 초청장에 첨부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각국은 이스라엘에 항의하며 조사를 촉구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용납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에 이 사건 조사와 외교관들의 생명을 위협한 이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이탈리아 외무부도 사건에 항의하며 이스라엘 대사를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외무부도 성명을 통해 "정당한 이유 없는 총격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스라엘 정부에 "즉각 조사"를 촉구했다. 스페인 외무부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제법 존중"을 요구했다.

튀르키예(터키) 외무부는 이번 사건이 "이스라엘의 국제법과 인권에 대한 체계적 무시"를 드러낸다며 조사 및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이집트 외무부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모든 외교 규범을 위반했다"며 설명을 요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진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외국 파트너들 간 마찰을 심화시켰다고 평가했다. 20일 영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 확대와 식량 봉쇄가 "혐오스럽다"며 강력히 비판하고 이스라엘과의 무역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스라엘의 최대 무역 상대방인 EU는 이스라엘과의 무역 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작전 종료 뒤 가자 모든 지역 이스라엘이 보안 통제"…구호 빌미 주민 남부 이동도 시사

네타냐후 총리는 유럽의 압박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유럽국들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안보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우리 핵심 목표를 포기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강력히 반대"하며 군사 작전이 끝나면 "가자지구의 모든 지역이 이스라엘의 보안 통제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종전 조건으로 "모든 인질이 귀환하고 하마스는 무장 해제하고 권력을 내려 놓으며 지도부는 가자지구에서 추방될 것, 가자지구가 완전히 비무장화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에 더해 "트럼프(미국 대통령)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를 미국이 소유해 휴양지로 개발하고 주민들은 인근 중동국들로 이주하는 구상을 밝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의 비판을 받는 구호를 빌미로 한 가자 주민 이주 또한 시사했다. 그는 가자지구에 "기본 식량"을 허용하고 곧 미국 주도 민간 기업들의 구호 배분이 시작되면 "하마스로부터 자유로운" 가자지구 남부 "살균 구역"에서 "가자 주민들이 완전한 인도적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분위기 바뀌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서 반전 여론 크고 날카로워져…가자선 하마스 반대 시위

최근 이스라엘 내부에선 가자지구 전쟁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21일 영국 BBC 방송은 이스라엘 방송 채널12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인들의 다수(61%)가 전쟁 종식 및 인질 귀환을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응답자의 25%만이 전투 확대 및 가자지구 점령을 지지했다.

이스라엘 좌파 정치인 야이르 골란은 19일 현지 방송에 "제정신인 국가는 민간인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취미로 아기들을 죽이지 않는다"며 자국 정부의 가자지구 작전을 거칠게 비판했다. 이에 더해 21일 이스라엘 국방장관을 지낸 모셰 야알론은 "이는 '취미'가 아니라 정부 정책"이며 "이것이 우릴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개탄했다. BBC는 이러한 발언은 가자지구 전쟁 초기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BBC는 지난 주말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스탠딩 투게더'가 이스라엘 남부 스데롯에서 가자지구 국경까지 행진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약 500명가량의 시위 참가자들은 "가자지구의 공포를 멈추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이스라엘 공습으로 살해 당한 어린이 사진을 손에 들었다. 방송은 이 단체 활동가 우리 웰트만이 전쟁 지속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해로운 동시에 (이스라엘) 인질, 군인, 우리 모두의 생명에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내부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21일 BBC는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하마스 반대 시위가 3일째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시위에 수백 명이 모여 "하마스는 전부 나가라!"고 외쳤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비판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지만, 시위를 시작한 사람 중 하나인 알라는 BBC에 "사람들은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하마스의 시도에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굶주림, 대피, 폭격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9년에도 하마스 반대 시위를 벌여 투옥된 적 있는 알라는 "저항은 하마스와 함께 태어난 게 아니다. 하마스가 사라져도 다른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저항의 모습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21일(현지시긴) 밤 미국 워싱턴DC 유대인박물관 인근에서 주미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 2명이 총격으로 사망한 가운데 22일 한 남성이 사건 현장 근처에 이스라엘 국기를 몸에 두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