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놀이' 하던 친구들, 이젠 폐암 걸렸는데…"

['석면 마을' 르포·下] "'석면 오염 정화'는커녕 '폐기물 매립지'라고?"

2일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의 한 야산. 야산 꼭대기에 오르니 작은 움막이 나왔고, 움막에서 내려다보니 덤프트럭이 건축 폐기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매캐한 먼지가 바람에 실려 콧속으로 들어왔다.

마을 이장인 한상필(77)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건축 폐기물 처리 시설 바로 앞에 있는 집이었다.

"여기가 원래 큰 산이었는데, 얼마나 파먹었으면 산 하나가 없어졌어요. 그 산에 있던 석면을 다 판 거여. 그땐 아침저녁으로 발파를 해서 우리 집 지붕까지 돌이 날아 왔어."

주민들은 2013년부터 조를 짜서 이 움막을 지켰다. 권오복 강정리 폐기물 매립장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몸도 불편한 어르신들이 매일 산에 올라 폐기물이 불법 매립되지는 않는지를 감시했다"고 설명했다.

▲ 청양군 비봉면 주민들은 2013년부터 인근 야산에 움막을 치고 폐기물 처리장을 감시해왔다. ⓒ프레시안(최형락)

국가가 관리해야 할 석면 오염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

고령의 주민들이 움막까지 지어가며 감시하는 이유는 건설 폐기물 매립장이 석면 광산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전문가들은 "석면폐광은 국가가 관리해야 할 대표적인 석면 오염 지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석면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돼 건강과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석면 오염'이라고 하는데, 석면광산은 대표적인 석면 오염 지역이다. 국가가 관리하고 정화해도 모자랄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 것이다.

강정리에는 일제 강점기에 개발됐던 석면폐광인 비봉광산이 있다. 해방 이후 경기광업주식회사가 1978년부터 2003년까지 이곳에다 광업채굴권을 등록해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고, 2011년 휴지광산이 되기 전까지 석면과 석면이 들어간 사문석이 채굴됐다.

2001년부터는 '보민환경'이라는 업체가 건축 폐기물 중간처리 시설을 가동했다. 이 업체는 건축 폐기물을 처리하는 한편 사문석을 캐서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 공급했으나, 시민단체의 고발로 현대제철이 사문석을 다른 물질로 대체하면서 2011년부터 채굴을 중단했다.

정부가 모든 제품에 석면 사용(농도 0.1% 이상)을 금지했을 때는 2009년이었지만, 비봉광산은 지난해 5월에야 공식 폐광으로 등록됐다. 석면의 폐해가 알려지기 전에 청양군이 허가를 내준 건설 폐기물 중간처리 시설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전국에서 석면폐광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 곳은 강정리가 유일하다.

4대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노형식(72) 할아버지는 "당진 사람들은 석면 피해를 입으면 안 되고, 우리 주민은 입어도 된다는 말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 움막 위에서 내려다 본 폐기물 처리장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폐기물 처리장도 모자라 쓰레기 매립지까지

그동안 소음 피해, 소각 냄새 등을 참아온 주민들이 폭발했을 때는 2013년 12월이다. 그해 업체 측은 105만 제곱미터 규모의 쓰레기를 묻을 수 있는 일반폐기물 매립지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청양군청 측에 사업 허가서를 냈다. 청양군청은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사업 신청을 반려했지만, 이에 반발한 업체는 청양군청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주민들은 "그동안 건설 폐기물 처리로도 충분히 고통받았는데, 석면이 있는 곳에 일반쓰레기까지 들여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일반쓰레기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석면 가루가 날릴 수 있고, 석면으로 토양과 지하수 오염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안행웅(74) 할아버지는 지금도 장비 소음과 먼지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고령의 주민들은 시름시름 기침에 앓아 가고 있다. "건축물 쓰레기를 차로 싣고 갖다 부어서 빻아. 부을 때 꽝꽝꽝 소리 나고, 먼데기(먼지)가 엄청 날아다녀. 하루 놔두는 만치 여기 사람은 죽어가는 기여."

▲ 국가에서 석면폐증 진단을 받은 비봉면 주민 이모(79) 할아버지는 지난해 사망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주민 건강권을 보호할 유일한 방안은 더는 석면 가루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폐광 지역의 채굴적을 봉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석면 관련 법·제도에는 허점이 많다. '토양환경보전법'과 '광산피해방지법'은 폐광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겪을 수 있는 광산 피해 방지, 오염토양 정화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석면안전관리법은 폐광산 지역에 일정 규모 이하의 개발 사업을 허용할 근거를 제공하는 탓이다.

이미 승인한 폐기물 처리업의 허가를 취소할 권한은 충남도와 청양군청에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구 끝에 충남도는 지난해 10월에서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강정리 석면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폐기물 매립장 사업 허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도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권오복 대책위 위원장은 "10억, 100억 원을 준다고 해도 싫다. 고향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 무슨 소용이냐"며 "강정리를 광산 피해 복구 지역으로 지정하고, 오염된 환경을 복원해달라"고 호소했다.
▲ 강정리 마을회관. 그동안 '폐기물 매립장 반대' 활동을 벌여온 주민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안행웅 할아버지 뒤로 움막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석면광산에서 놀던 동갑내기 3명이 폐암"

석면질환의 잠복기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이다. 주민들은 석면이 발암물질인 줄 몰랐다고 했다. "평생 밭 맨 거밖에 없는" 한 할머니가 수년 전 '악성중피종(일명 석면 암)'이라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희한한 병에 걸려 숨을 거뒀을 때도, 그저 안됐다고만 생각했다.

마을 주민들은 비봉광산의 산 증인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부친이 광부였다던 노형식(72)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석면광산이 곧 놀이터였다고 회상했다.

"옛날엔 애들 놀이터가 부모 일터인 거여. 아버지가 광부면 애들도 (광산에서) 장난하는 거여. 석면을 빻아서 옷 속에 넣으면 까끌까끌하니까 서로 목에 석면을 넣은 거여. 따갑다고 팔팔 뛰는 재미로 그 짓을 한 거여."

1970년대에는 마을마다 초가지붕 대신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지붕이 올라왔다. 주민들은 지천에 널린 사문석을 주워다가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마당에 깔았다. 석면은 그만큼 주민들에게 친숙했다.

▲ 마을에는 아직도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지붕이 남아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환경부가 2011년 폐석면광산 주변 석면 오염조사를 하고, 비봉광산 주변 땅이 석면에 오염됐으며 토양 정화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그제야 주민들은 수년간 석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지 않은 청양군청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군에서는 석면 광산이 있는 걸 아는데, '석면이 있으니까 조심하십시오.' 이 한마디를 안 했어. 그래서 우린 군청이 너무 나쁘다 이거여."

지난해 비봉광산 주민의 석면 피해 실태를 조사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광산에서 생산된 석면 함유 골재가 마을 도로, 마당, 복토용 골재 등에 포설돼 지속적으로 석면 노출이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노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광산에서 같이 놀았던 동네 친구 세 명이 지금은 폐암에 걸렸다고 했다. "이제 나잇살 들어 보니, 그때 놀았던 친구들이 사경을 헤매니…. 우린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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