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했다. 미군이 인도양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잠수함 어뢰 공격으로 이란 군함을 격침했고 튀르키예를 향하던 이란 미사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공망에 격추되는 등 확전 긴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4일(이하 현지시간) 바티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 명분으로 든 이른바 "예방 전쟁"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만일 국가들이 초국가적 법적 틀 없이 자체 기준에 따른 '예방 전쟁'을 벌일 권리를 인정 받게 된다면 전 세계가 불타오를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한 국제법 침식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정의가 무력에 밀려났고 법의 힘은 무력의 법으로 대체됐다"고 개탄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국가 간 다자외교 체계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며 "그 이유 중 하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제약하는 법적 구속력에 불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태도는 권력의지의 또 다른 측면"이라며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신의 질서를 다른 이들에 강요하려는 욕망은 논의, 협상, 자기 이익 추구, 타인에 대한 양보로 이뤄진 정치적 수고를 피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또 각국이 "편의에 따라" 국제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제사회가 분노하며 움직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거나 매우 약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처벌 받는 법 위반과 용인되는 법 위반, 애도해야 할 민간인 희생자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로 간주되는 희생자가 따로 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고 덧붙였다.
파롤린 추기경은 2013년부터 교황청 최고 외교 책임자인 국무원장을 맡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파롤린 추기경이 평소 발언에 매우 신중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교황청이 특정 군사 작전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잠수함에서 어뢰를 사용해 이란 군함을 격침하며 군사 긴장은 더 커지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4일 언론 브리핑에서 "인도양에서 미국 잠수함이 국제해역에서 안전하다고 믿던 이란 군함을 침몰시켰다"며 "그건 어뢰에 의해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어뢰로 적 함정을 격침한 사례"라고 밝혔다.
함께 브리핑에 나선 댄 케인 합참의장도 "1945년 이후 처음으로 미 해군 고속 공격 잠수함이 마크 48 어뢰 단 한 발로 적 전함을 즉시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다"고 했다. 케인 의장은 "역외에서 전개 중인 적을 추적, 발견, 섬멸하는 건 미국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잠수함의 마지막 어뢰를 발사 적함 공격은 1945년 USS 토르스크가 일본 함정을 침몰시킨 사례라고 설명했다.
4일 스리랑카 인근 인도양에서는 이란 군함 '아이리스 데나'호가 침몰했다. <AP> 통신을 보면 4일 스리랑카 해군은 해당 함정에서 주검 87구를 수습하고 32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법률 전문가들이 이번 공격을 일단 국제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미국의 이란 공격 구실이 즉각적 위협 제거를 위함이라면 이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함 공격이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미사일이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를 향하며 확전 긴장이 커지기도 했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4일 이란에서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이라크와 시리아 영공을 거쳐 튀르키예 영공을 향하던 중 동지중해에 배치된 나토 방공망에 의해 격추됐다고 밝혔다. 해당 미사일의 목표물이 무엇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뉴욕타임스>는 미 고위 군 관계자와 서방 관계자를 인용해 미군 및 다른 동맹국 병력이 주둔 중인 튀르키예 인지를르크 공군기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나토 동맹국은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나토 헌장 5조 집단방위 조약의 보호를 받는다.
나토 대변인 앨리슨 하트는 성명을 통해 동맹국을 표적으로 삼은 행위를 규탄하고 "이란이 역내 전역에서 무차별 공격을 지속함에 따라 나토는 튀르키예를 포함한 모든 동맹국과 굳건히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튀르키예 <아나돌루> 통신은 외무부 소식통을 인용해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 이번 사건 관련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해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치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이번 사건 관련 자국 주재 이란 대사를 소환해 우려를 전달했다.
다만 헤그세스 장관은 4일 취재진에 해당 사건이 "(나토 헌장) 5조를 발동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확전 위험을 차단하려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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