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폐광 옆 초등학교, 애들까지 환자 만들 수는…"

['석면 마을' 르포·上] 시름시름 앓는 주민들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사는 노형식(72) 할아버지가 말하는 내내 쇳소리가 났다. 목에서도 가래가 끓고 기침이 가시지 않았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고 했다. 노 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이 마을에는 숨이 가쁘다는 주민들이 많았다.

"여기 사람들 열에 일곱은 기침혀. 처음엔 잘 모르고 했는디 물어보니께 미세 먼지를 많이 마셔서 그렇대."

이 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석면광산이 있었다. 2014년에야 공식 폐광이 됐지만, 2001년 그 자리에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이 들어섰다. 석면의 폐해가 알려지기 전 청양군이 허가한 시설물이다. 전국에서 석면폐광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선 사례는 강정리가 유일하다.

2일 강정리 폐기물 처리장에서는 덤프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폐건축 자재를 빻는 과정에서 먼지가 날린다고 토로했다. 석면이 포함된 먼지로 주민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다. 석면이 가루가 되어 날리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호흡기로 들어가 조금씩 사람을 병들게 한다. 석면질환의 잠복기는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4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 석면폐광 자리에 들어선 건설 폐기물 중간처리장. ⓒ프레시안(최형락)

석면폐광 근처 초등학교

마을 주민들은 지난해 7월부터 상복을 입고 청양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석화 청양군수가 폐기물 처리장 사업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해 6.4 지방선거 기간 내내 유권자 300명이 있는 강정리를 한 차례도 찾지 않은 이 군수는, 2년째 주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고 있다.

폐기물 처리장 주변 1킬로미터 이내에는 초등학교도 있다.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바람이 불면 석면 가루가 윗마을로 가고, 재 넘어 학교로 갈 수도 있지."

▲ 마을 앞에 걸린 현수막. ⓒ프레시안(최형락)

"숨이 가쁜데 이유를 모른대…사람 미치는 거여"

평생을 강정리에서 살아온 마을 주민들은 시름시름 앓아갔다.

권오복(56) '강정리 폐기물 매립장 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은 폐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모친은 인근 홍성의료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다 2013년 12월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0월 부친이 뒤를 따랐다. 병원에서는 '원인 모를 폐 합병증'이라고 했다.

폐광 바로 근처에 사는 한상필(77) 할아버지도 아내가 병원에 자주 간다고 했다. "(아내가) 숨이 가쁜데 (병원에서) 이유를 모른대. 사람 미치는 거여"

지난해 12월에 숨진 이모(79) 할아버지의 사연은 비극적이다. 2011년 석면폐증 2급 판정을 받은 이 할아버지는 "밤에 자다가 기침을 하면 피를 한 바가지 쏟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암 투병까지 했던 이 할아버지는 결국 스스로 농약을 먹고 생을 마감했다.

주민들은 "옛날에는 돌아가시면 그냥 돌아가시는가 보다 했지, 석면 때문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민들이 석면의 폐해를 알게 된 건 2011년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고인이 된 이 할아버지도 2011년 석면폐증 2급 판정을 받았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충남에 있는 38개 석면폐광 지역 주민 건강영향 조사를 벌인 걸과, 조사 대상자 1만3795명 가운데 1068명(재조사 대상자 포함)이 석면질환 의심자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석면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권혁호 대책위 사무국장은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되기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며 "주민 자체 조사 결과, 석면광산이 있던 강정리와 양사리에 폐암 판정을 받은 주민이 30여 명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청양군 비봉면 일대의 마을 6곳과 불법 복토 현장 1곳을 조사한 결과, 비봉광산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한 석면 피해 주민만 6명이었다. 피해자는 이모(81·악성중피종·2010년 사망) 씨, 박모(74·악성중피종·2007년 사망) 씨, 윤모(80·석면폐증) 씨, 이모(79·석면폐증) 씨, 이모(78·석면폐증) 씨, 황모(81·석면폐증) 씨 등이다.

▲ 마을 회관에 모인 강정리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애들까지 환자 만들 순 없잖여"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평생 살아온 고향 땅에 석면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석면폐광을 완전히 봉해달라는 것이다. '건설폐기물의 재활용 촉진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행정관청은 사업자의 위법 행위에 대해 허가 취소, 영업 정지 등을 할 수 있다. 또 '토양환경보전법'과 '광산피해방지법'은 폐광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겪을 수 있는 광산 피해 방지, 오염토양 정화 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주민들은 청양군청이 폐기물 처리 사업을 중지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해당 폐기물 처리장에서 불법적으로 쓰레기를 매립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쓰레기를 불법적으로 소각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군청에 적발할 때마다, 군청에서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해당 업체 측은 지난해 6월 불법 매립 의혹을 제보한 주민의 인적 자료를 요구하며 "불법 매립이 허위로 밝혀졌을 경우 충청남도와 청양군이 피해 보상 문제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맞섰다.

충남도는 지난해 10월 '강정리 석면 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꾸려 1년 동안 운영하기로 한 상태다.

주민들은 일단 올해까지 특위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안행웅(74) 할아버지는 "국가가 여기를 광산 피해 복구 지역으로 지정해줘야 마음 놓고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상필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우리만 살려고 그러겠슈? 애들까지 환자 만들 순 없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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