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500명 중 35명이 폐암 사망, 그 마을은 왜?

[토론회] "석면 폐광에 쓰레기 매립지? 주민은 어떻게 살라고…"

"산재 환자들은 입원 치료까지 정부가 책임진단 말이에요. 근데 주민 석면 치료는 관리를 안 해. 2년 동안 병원 왔다 갔다 하고 그 뒤에는 죽게 내버려둔단 말이오. 팔십 먹은 늙은이가 석면폐증 2급을 받고, 그것 때문에 수술하고 집에 와서 고통스럽게 항암 치료 받다가 마지막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요? (힘들어서 스스로) 농약 먹고 죽었어요."

충청남도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사는 노형식(72)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노 할아버지는 4대째 이곳에서 살아왔다.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석면과 석면이 함유된 사문석을 채굴하기 위해 개발한 '비봉광산'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석면이 일급 발암물질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다 2009년 주민들이 집단으로 폐질환에 걸리면서 강정리 석면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환경부는 2011년 폐석면광산 주변 석면 오염조사를 한 결과, 비봉광산 주변 석면 농도가 0.25~1%인 곳은 26.5헥타아르에 달하고, 1% 이상인 곳도 1.4헥타아르라고 밝혔다.

이후 석면 피해자 10명 가운데 6명은 세상을 떠났다. 강정리 주민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봉광산 인근 녹평 1, 2리까지 포함해 주민 500여 명 중 폐암 사망자는 35명에 달한다.

석면의 위해성이 알려지기 전에 강정리에는 한 업체가 청양군청으로부터 건설폐기물 중간처분장 허가를 받아 2001년부터 건설 쓰레기를 처분해왔다. 처분장에서는 먼지와 운반차량 소음, 폐기물 소각 냄새 등이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폭발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다. 이 업체는 2013년 일반폐기물 매립지로 사업을 확장하려 했고, 청양군청은 환경오염을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반려 처분에 반발한 업체는 청양군청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 29일 국회에서 열린 '석면폐광 관리의 문제점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충남 청양군 비봉면 주민들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석면 피해자 6명은 비봉광산 반경 2킬로미터 내 거주

강정리 마을 주민 수십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29일 국회에서는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 주관으로 '석면폐광 관리의 문제점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해 4월부터 2개월간 '비봉광산의 석면분포와 주민피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청양군 비봉면 일대의 마을 6곳과 불법 복토 현장 1곳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지역에서 석면 농도가 0.25~3.35%까지 검출됐다고 밝혔다. 특히 독성이 강해 2003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각섬석계 액티놀라이트석면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석면 피해자 주민 6명이 비봉광산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 거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는 이모(81·악성중피종·2010년 사망) 씨, 박모(74·악성중피종·2007년 사망) 씨, 윤모(80·석면폐증) 씨, 이모(79·석면폐증) 씨, 이모(78·석면폐증) 씨, 황모(81·석면폐증) 씨 등이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비봉광산은 2011년부터 채굴을 하지 않아 최소 3년 이상 주민들이 석면골재 위를 밟고 다니거나 차량, 오토바이, 농기계 등이 통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석면 비산이 발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석면폐광에 폐기물 매립지 건설은 모순"

비봉광산에 쓰레기 매립지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임 팀장은 "폐광 석면은 폐기물이기에, 광산에 쓰레기 매립지를 세운다면 매립 면적만큼 광산 안의 석면을 폐기물로 버려야 한다"며 "석면 폐기물을 다른 데 버리고, 그 사업장을 일반폐기물 처리장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폐기물 매립장에 붕괴 사고라도 난다면 환경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례로 2012년 12월 폭설로 충청북도 제천시 왕암동 폐기물매립장 에어돔 붕괴사고가 벌어졌지만, 처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3년째 방치된 상태다. 게다가 비봉광산 안에 사업장폐기물 조성 신청은 붕괴 사고가 난 제천 왕암동과 같은 에어돔 형태로 계획됐다.

임 팀장은 "사업장들은 폐기물 석면 허용 기준치가 1% 미만이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개발 행위를 할 때는 농도뿐 아니라 총량도 같이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2년부터 2008년까지 비봉광산에서 채광된 사문석이 35만 톤이고, 이를 농도 1%로 계산하면 3500톤에 달한다.

지질학 박사인 이인현 환경보건센터 운영위원은 "석면이 위험할 때는 잠자던 석면을 채굴해 깨웠을 때"라며 "광산 가동 중에는 머리카락 수십 분의 일 크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석면 분진이 바람에 흩날린다. 따라서 폐광 후에는 채굴적을 막아서 석면이 더는 대기 중에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석면안전 방치하는 석면안전관리법?

현행 '석면안전관리법'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흥규 팀장은 "일반적으로 석면을 해체·제거할 때는 밀봉해야 하지만, 석면안전관리법에서 비산 방지책이라곤 물 뿌리기 말고 대책이 없다"며 "석면안전관리법이 법률적으로 미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회 소속 노승진 변호사는 "석면안전관리법상 석면관리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을 하려는 자는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석면 관리지역이더라도 작은 사업이면 승인받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석면안전관리법은 '토양환경보전법'과 '광산피해방지법' 등과 충돌한다고 노 변호사는 지적했다. 나머지 두 법은 폐광산 지역에서 주민들이 겪을 수 있는 광산 피해 방지, 오염토양 정화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와 반대로 석면안전관리법은 비봉광산에 폐기물 처리장 사업을 승인해줄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주민들 "정부가 주민 생존권 보장해 달라"

▲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은 청양군 비봉면 주민들. ⓒ프레시안(김윤나영)
비봉면 마을 주민들은 울분을 토했다.

권오복 강정리 폐기물매립장 반대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법률적인 건 잘 모른다. 중요한 건 마을에서 석면 피해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피해자가 나올 텐데 우리도 불안하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석면 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다"며 "석면폐증 2급을 받은 환자 분이 지난 3년 동안에 병원에서 치료한 기록이 단 세 번이다. 국가가 석면 피해를 인정해줬는데, 병원에 제대로 간 기록이 없다. 치료비나 약값이라도 충분히 보전해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주민들의 석면 피해 조사 지역도 현행 광산 반경 2킬로미터에서 범위를 확대해 달라"며 "허울 좋게 법만 있으면 뭐하나. 정부가 우리가 마음 편히 놓고 살 수 있도록,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강조했다.

환경부 정관직 사무관은 "지난해 석면 피해 구제금액으로 98억 원을 집행했고, 1177명 수급자 가운데 충청 지역 수급자 453명(38%)로 1위였다"며 "새 환자를 발굴하지 못한 데다, 석면 피해자에게는 2년만 금액을 집행하다 보니 예산 150억 원이 남은 상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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