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600원 때문에 죽어야 했던 13명…적반하장 GM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57센트에 스러져간 고귀한 생명과 승객의 안전

57센트.

GM이 미국에서 여러 생명을 구하는데 필요했던 차 1대당 추가 비용 액수가 고작 57센트,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600원을 아끼려고 차량 결함을 쉬쉬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차 키를 고정하는 힘이 부족해서…

문제는 점화 스위치에 있었다. 스위치에 키를 꽂아 시동을 걸었을 때, 이 스위치가 키를 고정시켜주는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스마트 키를 사용하는 차들도 많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차량은 열쇠와 닮은꼴의 키를 사용한다.

▲ YouTube에 올라온 미국 CBS 뉴스 동영상 중 한 컷

게다가 자동차 키에는 으레 열쇠고리를 달아 다른 열쇠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곤 한다. 그런데 스위치가 키를 고정시키는 힘이 부족하다보니, 운전자가 별도로 조작하지 않았는데도 시동(On) 상태에서 열쇠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액세서리(Accessory) 모드나 시동 꺼짐(Off) 모드로 전환되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 참조)

그렇게 되면 결국 운전 중에 엔진이 꺼지거나, 에어백을 비롯한 전기장치들의 작동이 중단될 수도 있다. 결국 이러한 결함으로 의심되는 사고로 사망자가 13명이나 나왔으며,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충돌 사고로 다친 이들 역시 부지기수다. (관련 기사 :"GM, 13명 죽음과 연관된 결함 알고도 10여 년 쉬쉬")

게다가 더욱 괘씸한 사실은 GM의 경영진이 아주 오래전인 2001년, 즉 문제의 차량들이 출시되기 이전인 개발 단계부터 점화장치 결함과 불량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점화장치 결함으로 인해 올해 2~3월에 리콜된 차량만 무려 260만 대에 이르니, 수백만 명의 생명이 고장 난 점화 스위치에 내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최근 GM의 CEO 메리 바라가 미국 상원과 하원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나가고 있는데, 의회에 GM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결함을 가진 점화장치들을 문제없는 부품으로 교체하는 데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고작 57센트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나 민심은 더욱 들끓고 있다.

아예 안 만들거나 대충대충 만든 소형차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빅 3의 2000년대 초반 차량 생산의 특징을 보면, 이번 사태의 이면을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아래 표는 2000년대에 GM이 미국 시장에 출시한 승용차들을 연도별로 정리해본 것이다. (주로 위키피디아에 나온 정보들을 바탕으로 개별 차량의 연혁을 조사해 필자가 정리한 표이며, 승용차만 표기한 것이므로 SUV나 픽업트럭 같은 차량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000년대에 GM은 미국 시장에서 승용차 관련 5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 쉐보레, 캐딜락, 뷰익, 새턴, 폰티악. 이 중에서 새턴과 폰티악은 2008년 금융 위기와 2009년 파산 보호 신청을 겪으며 2010년에 브랜드 자체가 소멸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좀 복잡한 표이기는 하지만 초록색 선으로 그려넣은 박스를 중심으로 보면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미국에서 2003~2009년 사이에 소형차와 경차는 거의 생산하지 않았으며, 컴팩트 카(Compact Car) 역시 생산 차종이 중형차나 대형차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컴팩트 카는 한국식으로 말해보자면 '준중형' 급에 해당한다. 그러나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구분법 상으로는 컴팩트 카 역시 '소형차'로 분류한다. 따라서 GM은 미국에서 소형차 생산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생산 라인업은 주로 중·대형차에 집중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소형차만을 따로 뽑아보자. 위에서 분류한 소형차, 경차, 컴팩트 카에다 스포츠카 중에서 소형차를 추가하면 된다. 위의 표에 나타난 스포츠카 중에서 캐딜락과 쉐보레 카마로·콜벳은 모두 중·대형차에 해당하므로 이들을 제외하면 된다.


이제 새로운 표에서 더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소형차 범주 중 미국에서 그나마 소형 스포츠카와 컴팩트 카 몇 종류를 생산했는데, 최근에 점화장치 결함으로 리콜된 6개의 차종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점화장치 불량으로 인한 리콜 대상 차종은 다음과 같다. 2005~2010년식 쉐보레 코발트, 2006~2011년식 쉐보레 HHR, 2006~2010년식 폰티악 솔스티스, 2005~2010년식 폰티악 G5, 2007~2010년식 새턴 스카이, 2003~2007년식 새턴 이온. 위 표에는 노란 바탕에 어두운 색으로 표시되어 있음.)

중형차나 대형차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결함이 보고된 바가 없다. 즉, GM은 미국에서 소형차를 아예 생산하지 않으려 했으며, 그나마 만들어진 소형차 대부분이 대충대충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에 출시된 소형차 상당수는 쉐보레 아베오·소닉이나 새턴 아스트라처럼 한국GM과 벨기에 공장으로부터 수입해서 미국 시장에서 내놓은 차량들이다.

이윤을 내는 지름길을 좇은 결과

사실 이런 현상은 GM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빅 3 대부분이 안고 있던 문제였다. 특히 2000년대 초반은 미국에서 부동산 거품이 형성되던 시기이다. 임금은 오르지 않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았지만, 신통하게도 집을 사고파는 것만으로 쏠쏠한 수입이 생기게 된 것이다.

"집값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이 신념처럼 굳어졌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기름을 끼얹듯 미국 연준(FRB)이 금리를 1%대로 유지해 주었으니 이자 부담도 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미국인들의 씀씀이도 커지게 된다. 어차피 집집마다 승용차 한 대씩은 가지고 있으니, 좀 더 큰 차종으로 눈이 옮겨간 것이다.

레저용 차량인 SUV가 각광받기 시작하고, 실용적인 지프 차량이나 픽업트럭도 인기를 얻는다. 빅 3의 주요 생산품 역시 트럭이나 미니밴, SUV와 다목적차량(MPV)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빅 3 자본가들 역시 안전하고 튼튼한 승용차를 만드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픽업트럭 같은 경상용차(Light Commercial Vehicle)는 개발하는 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생산 기법도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빅 3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같은 금융 사업이었다. 자동차를 팔아서 남는 이윤보다 '돈놀이'를 해서 벌어들이는 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GM의 금융 자회사인 GMAC은 엄청난 이윤을 만들어냈다. 그러다보니 GM의 고위 경영진들도 자동차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튼튼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재무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특히 소형차는 빅 3의 관심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개발 비용은 다른 차종과 비슷한데, 차량 크기가 작다보니 가격도 싸게 책정되어야 하고 따라서 이윤의 크기도 작은 편이었다. 중·대형차나 SUV, 픽업트럭은 차량 크기만큼 이윤도 많이 남았다.

그러니 빅 3는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소형차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 업체들이 잘 만들잖아? 하지만 거기서 돈이 얼마나 남겠어? 아시아 업체들은 푼돈이나 벌라고 하고, 우린 큰 차 만들어서 돈벼락을 맞아보자구!" 이런 마음가짐으로 만들어진 컴팩트 카들이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자본가들이 '돈 버는 지름길'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가 얼마나 쉽게 내동댕이쳐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차량 1대당 57센트의 비용을 더 지불하느니, 차라리 나중에 들키더라도 보상금이 싸게 먹힐 것이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물에서 건져줬더니 보따리 쌀 채비부터…적반하장 GM

빅 3는 미국에서 소형차 부문을 등한시한 대가를 그 뒤에도 톡톡히 치르게 된다. 2008년 금융 위기가 닥치며 GMAC와 같은 금융 자회사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내게 된다. 이 사태는 결국 2009년에 모기업인 GM을 비롯한 빅 3를 파산 직전으로까지 몰고 갔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구제 금융으로 간신히 생명은 건졌지만, 경제 위기 시기에 소비자들의 눈은 소형차와 중고차 시장으로 쏠렸다. 그러나 빅 3는 소형차를 만들어낼 재간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앞마당에서 현대기아차가 소형차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단숨에 10%까지 올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그 상황에서 글로벌 GM엔 구원 투수가 있었다. 바로 한국GM이 대우차 시절부터 갖고 있었던 소형차 라인업이었다. 라세티, 젠트라, 마티즈. 이들 소형차 3총사는 각각 쉐보레 크루즈, 아베오, 스파크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2009년 이후 미국 시장에 출시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위기에 빠진 글로벌 GM을 구해내는 일등 공신이 된다.

앞서 보았던 미국 소형차 라인업 표를 보면, 2009년 이후 소형차 생산 차종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아베오의 경우 소닉(Sonic)이라는 미국 명칭을 달고 생산되고 있다. 스파크는 아직 미국에서 생산되지는 않고, 여전히 한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에 수출되고 있다.) 심지어 중·대형차의 대표 브랜드인 캐딜락마저 컴팩트 카 2~3종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GM의 소형차 3총사의 파워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한 게 엊그제 일인데, 한국GM 사업을 축소하고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이윤을 좇는 지름길을 찾으려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벌써 잊었단 말인가? 망각은 자유이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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