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 GM 회장께서 북한 문제 때문에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니 철수가 아니라 투자를 더 확대하러 오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는가?
애커슨 : 엔저 현상과 상여금을 포함하는 통상임금 문제,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절대로 한국 시장을 포기(abandon)하지 않는다.
박근혜 :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갖는 문제이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가겠다.
위 내용은 작년 5월 8일, 박근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대니얼 애커슨 당시 GM 회장과 나눈 대화를,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정리한 내용이다. 글로벌 GM이 통상임금 문제 관련 한국 자본가들의 최선두에 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GM의 공세는 말 그대로 '파상적'이었다. GM은 무려 3000억의 적자가 났다고 2012년 실적을 발표했다. 2000억대의 영업이익이 났던 2011년에 비해 매출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난 이유는 통상임금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통상임금 문제를 빙자한 '회계 수법'이 동원되었다.
2012 회계연도에만 무려 8140억의 돈을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비용'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 항목만 없었다면 영업이익이 무려 5000억이 나올 멀쩡한 기업을, 통상임금을 빙자한 회계 수법을 동원해 3000억 적자 회사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래서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도 면제받았다.
대법원 판결 이후, 통상임금 '비용'을 다시 '환입'!
틈만 나면 통상임금 문제 때문에 비용이 올라 못해먹겠다고 협박했던 GM은, 작년 12월 갑을오토텍 관련 대법원 판결이 GM에 매우 유리하게 나왔음을 알아챘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GM은 놀라운 일을 벌였다. 2012 회계연도에 비용 처리했던 소송 관련 비용을, 2013 회계연도에는 다시 환입해 플러스 계정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아래 그림은 글로벌 GM이 지난 2월 6일, 2012년 실적 발표를 한 자료의 일부이다. 이건 사측의 기밀문서가 아니다. 글로벌 GM의 홈페이지(www.gm.com)에 접속해 투자자 정보(Investors) 카테고리에서 'Earnings Release' 항목에 들어가면 누구나 내려 받을 수 있는 공개된 문서다.
그 문서에서 '특수 항목(Special Item)' 부분만 따로 정리한 부분을 캡처한 것이 아래 그림이다. 재무 파트에는 워낙 문외한이라 귀동냥으로 들어온 것이 내 지식의 한계인데, 여하튼 필자가 알기로는 '특수 항목'이란 일반회계에서 예상치 못했던 비용 또는 수익이 발생했을 경우에 기입하는 항목이다.
그림을 보면 2개의 표가 있는데 위쪽이 2013년의 특수 항목 표이고, 아래쪽이 2012년의 특수 항목 표이다. 숫자에 괄호 처리된 것은 마이너스(-), 즉 비용(지출)을 의미하고, 괄호가 없는 것은 수입(수익)을 뜻한다. 필자가 비록 영어도 잘 못하고 재무에는 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대목들에 붉은색 밑줄을 그어놓았다.
우선 2개의 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항목이 있다. "GM Korea wage litigation accrual"이란 항목인데, 그대로 직역하면 "한국GM 임금 소송 가액"이라 할 수 있다. 즉, 통상임금 소송에 걸려 있는 판돈, 지난 3년간의 체불임금 등을 의미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약간 다르게 적시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2012년 항목에서는 "GM Korea wage litigation accrual"이란 제목으로 3억3600만 달러의 비용(지출)이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2013년 항목을 보면 "Reversal of GM Korea wage litigation accrual"이란 제목으로 5억7700만 달러의 수익(수입)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개 항목 모두 GMIO 부문에서 수익 또는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GMIO란 글로벌 GM에서 한국GM이 속한 International Operations, 즉 해외사업본부를 의미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간단하다. 2012년에는 통상임금 소송 때문에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3억3600만 달러의 비용을 회계장부에 반영한 GM은, 작년 갑을오토텍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2013년 회계장부에는 반대로 비용 처리한 금액을 슬그머니 환입(Reversal)해놓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GM에 유리하게 나왔다는 사실을 GM 스스로 인정한 것 아니겠는가!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또다시 '비용' 처리!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 첫째, 왜 두 금액이 서로 안 맞는 것일까? 둘째, 환입한 금액이 무려 2억 달러(2000억 원) 이상 많은데, GM이 미치지 않고서야 비용 계정에 비해 수익 계정을 이렇게 높게 잡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즉, 최초에 비용에 산입할 때에는 4000억이 좀 안 되는 금액을 반영했는데, 도로 환입할 때에는 6000억이 넘는 돈이다. 이렇게 할 이유가 있었을까?
그렇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GM 사측으로부터 분명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GM 사측이 절대로 만족할 만한 답을 해주지 않으려 하겠지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두들기고 또 두들겨야 한다. 회계 문제와 관련한 의혹은 GM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 전반의 문제 아니던가!
그래서 부족하나마 <인사이드 경제>가 추정하는 이유를 말해보려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글로벌 GM 회계 자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앞서 언급한 2가지 항목 말고, 필자가 밑줄을 그어놓은 다른 항목 하나를 더 살펴보자.
2013 특수 항목 중 2번째에 위치한 'costs related to our plans to cease mainstream distribution of Chevrolet brand in Europe', 뭐 길긴 하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유럽에서 쉐보레 철수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한 비용"이라는 뜻이다.
이게 도대체 뭘까? 그렇다! 지난해 12월 5일, 한국GM 이사회에서 쉐보레 유럽을 2015년 말까지 철수한다는 의사결정을 내린 직후, GM은 이와 관련한 비용을 이미 작년 회계장부에 다 반영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려 6억21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7000억 가까운 비용을 말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실타래가 꿰어지게 된다. GM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통상임금 비용 처리했을 때보다 환입할 때 돈을 더 많이 집어넣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그건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무려 7000억 가까이 이미 비용 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만일 통상임금 환입 등의 조치를 하지 않고 쉐보레 유럽 철수만 비용으로 처리해 버리면, 한국GM의 2013년 실적은 아마도 수천억의 영업적자라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 작년 내수 시장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린 한국GM이 또다시 수천억의 영업적자? 이런 결과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경우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될 만한 중량감을 갖고 있다.
뭐, 회계장부상 영업적자가 나더라도 박근혜 정권은 가만히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GM에 퍼주기로 작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권 아닌가?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인 국민들의 들끓는 정서까지 박근혜 정권이 대신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차라리 적자도 흑자도 아닌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즉 본전만 했다고 얘기할 수 있도록 통상임금 관련 플러스 계정을 조정하자. 흑자가 아니니까 세금도 안 물고, 적자가 아니니까 여론도 잠재울 수 있지 않겠나.'
이렇게 글로벌 GM이 머리를 굴린 게 아닐까? 통상임금 관련 비용 처리를 미리 해놓음으로써 2012년 회계장부를 5000억 영업흑자에서 3000억 영업적자로 둔갑시킨 '전과'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만일 이번에도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미리 처리해서 또다시 수천억 영업적자로 둔갑시키면,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를 상계할 수 있는 조치, 즉 통상임금 관련 비용을 환입해 문지르자', 이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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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수입·지출은 단 한 푼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통상임금 소송 관련 비용 처리를 한 것이나, 이걸 다시 환입한 것이나,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미리 반영한 것, 세 가지 모두 실제 돈이 지출되거나 들어온 것은 단 한 푼도 없다. 쉽게 말해 통장 잔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데 "그런 비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측 하나만으로 회계장부에서는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한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 아니다. 갑자기 멀쩡한 흑자 기업을 적자 기업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법인세 비용 등 세금을 물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이런 행위의 결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쌍용차의 사례에서 처절하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은 작년 말에 난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이와 관련한 제반 비용은 발생할 이유가 없다. 쉐보레 유럽 철수와 관련한 제반 비용은, 실제로는 올해와 내년에 모두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도 GM은 또다시 7000억 가까운 비용을 - 아마도 한국GM 재무제표에 - 반영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글로벌 GM이야 투자자들을 위해 실적을 발표해야 하고 이와 함께 회계장부의 일부를 2월에 공개했다지만, 한국GM의 경우에는 '비상장기업' 즉 자신의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거의 없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비밀로 자신을 은폐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의 입으로 작년 실적을 발표하게 될 3월 말이나 4월 초를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되어야 아주 대강의 회계장부를 '감사보고서'란 형식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주 대강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이나 쉐보레 유럽 철수 관련 비용이 어떤 항목에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를 그 장부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영 설명회에서 드러난 진실들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지난 2월 27일, 한국GM지부 합동간부 수련회 자리에 세르지오 호샤 사장, 미네르바 한국GM CFO(최고 재무책임자) 등이 방문해 간략한 경영 설명회를 열었다. 한국GM 노사관계는 매우 독특한데, 1년에 한 차례 간부 합동수련회에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방문해 간단한 경영설명회와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그 자리에서 노조 집행부와 대의원들이 통상임금 관련한 질문을 하자, 미네르바 CFO가 2012년에 비용 처리했던 것을 작년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환입했음을 시인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GM의 작년 영업실적 역시 아주 소액의 흑자 또는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측의 경영 설명 내용 중에는 "한국GM 인건비가 너무 높게 상승해서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2009년 이후 노동 비용이 무려 48%나 상승했다"라는 부분이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고선 그 밑에 아주 깨알 같은 글씨로 "임금 소송분 포함"이라 적어놓았다는 것이다!
아니, 이건 반칙 아닌가?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판결이 GM에 유리하게 났다고 판단해 이미 비용 처리한 것을 다 환입해 놓고서, 아직까지도 통상임금 부분을 포함시켜 '노동비용'에 반영하다니? 그렇다. GM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통상임금 효과를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그 필요란 무엇일까? 한국 노동자들의 등골을 뽑아먹고, 한국 정부로부터 규제 완화와 각종 특혜를 제공받는 것!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정권과 대법원에도 한마디 해두자. 당신들의 특혜 제공과 판결이 글로벌 GM에 미친 효과를 한번 똑똑히 보시길 권하고 싶다. 통상임금 관련 비용을 다시 환입해 놓고도 여전히 임금소송 때문에 장사 못해먹겠다는 저 태도, 쉐보레 유럽 철수 비용을 미리 처리함으로써 또다시 흑자폭을 확(!) 줄여놓은 실정을 똑똑히 보시란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경영 설명회 자리에서 GM 사측은 "부평 1공장과 2공장을 통합해 단독 공장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여전히 군산공장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이제 서서히 부평공장 구조조정까지 획책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2월 말로 종료 예정이었던 사무직과 현장 관리자(공장)들에 대한 희망퇴직 시한을 갑자기 3월 10일까지로 연장해 버렸다. 처음에 GM은 "구조조정이 절대 아니다. 목표 인원 그런 것 없다"며 부정했지만, 결국 이번 희망퇴직은 목표 인원이 분명히 있는 구조조정이며 현재 그 수치에 미달한 상태임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한번 물어보자. 박근혜 정권과 대법원이 원하는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었나?
사족
영국 총리를 지낸 벤자민 디즈레일리가 했다는 설도 있고,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런 격언이 있다. "세상에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Lies, Damn Lies, and Statistics)."
이제 이 격언을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4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 그리고 회계. <인사이드 경제>의 눈으로 볼 때, 대기업 회계는 모조리 사기처럼 보인다.
그런 사례에 대해 '진리'를 파헤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진행되기를 갈구한다.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하려는 기자들의 날카로운 취재, 깨어 있는 시민들의 토론, 대기업 내부에서 더 이상 양심을 팔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정의로운 이들이 함께 나서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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