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공장 폐쇄가 한국GM의 활로? 잘못 짚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 한국과 호주에 총공격 준비"

[연합뉴스] "GM, 한국 생산 20% 줄이고 한국 물량 호주 수출 계획"
[한국경제] '한국 감축' GM, "호주 홀덴 생산분 한국GM 맡아라"
[경향신문] "GM, 한국 생산량 20% 줄이고 일부 호주 수출"
[한국일보] 호주 수출 물량 확보 한국지엠 일단 숨통 - 현지 공장 2곳 폐쇄로

지난 12월 5일,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겠다는 GM의 결정이 공개되자, 한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돌연 위와 같은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유럽 수출 물량이 줄어들었지만, 조만간 호주 수출 물량이 새롭게 추가될 것이기 때문에 숨통이 트인다는 내용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외신 기사를 엉뚱하게 갖다 붙이기

이 기사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12월 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보도 내용 하나뿐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를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니 핵심 내용은 전혀 다르다. "GM이 아시아에서 생산을 바꾸려 하고 있다(GM to Shift Production in Asia)"라는 제목의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GM이 한국 공장에서는 엄청난 생산량 감축, 그리고 어쩌면 호주에서는 공장을 폐쇄하는 등 가장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해외사업본부(IO) 부문에 대한 총공격(Concerted Attack)을 준비하고 있다고, GM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들이 전했다." (General Motors Co. is preparing a concerted attack on its most troubled international operations that would entail big output cuts at factories in South Korea and likely an end to production in Australia, said people familiar with the auto maker's plans.)

ⓒ<월스트리트 저널> 해당 기사 화면 갈무리

이 기사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GM이 한국과 호주 생산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호주의 경우 아예 공장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남북 관계의 불확실성, 노사 관계 악화, 생산 비용 증가 등의 이유로 생산량을 20%가량 감축할 가능성이 크고, 호주의 경우 환율 상승, 즉 호주 달러의 강세로 인해 아예 생산 중단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데 만에 하나 호주 공장이 폐쇄될 경우, 여기에서 생산하던 차종이 한국GM으로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추정이 곁다리로 들어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런 추정 보도의 취재원은 익명의 'GM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people familiar with the auto maker's plans)'가 전해준 얘기 수준이다.

기사의 핵심은 한국과 호주에 대한 전면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인데, 기사에서 단지 "이럴 수도 있다"고 덧붙인 한마디를 놓고 한국 언론은 마치 이것이 확정된 것처럼 대서특필을 해댄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측이 이를 보았다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한국GM에 대해 '전면 공격'을 한다는데 한국 언론들은 이를 '전면 환영' 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암울한 호주 스토리, 남 얘기가 아니다

호주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깊이 다뤄보도록 하자. GM은 호주에서 '홀덴(Holden)'이라는 브랜드로 자동차 생산과 판매를 하고 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에 조립 공장이 있고, 빅토리아 주에서는 엔진 공장이 가동된다. 주요 생산 차종은 '코모도어(Commodore)'라는 대형 승용차와 '크루즈'이다.

호주 역시 2008년 9월 리먼 파산으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로 자동차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주력 생산 차종인 코모도어 같은 대형차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데 2009년 6월부터 한국GM에서 크루즈를 수입해 호주에서 판매했는데 꽤 인기를 얻었다. "그래, 우리도 경제 위기 흐름 속에서 소형차 생산으로 갈아타야 한다!"

크루즈 생산을 호주로 유치하기 위해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와 빅토리아 주는 물론이고 연방 정부까지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결국 2010년 말부터는 한국GM의 생산을 호주로 이전해 오는 데 성공한다. 당시 이것이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이전되는 생산 물량이 연간 2~3만 대 수준으로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정도의 물량이라도 받아오기 위해 호주 연방 정부는 '친환경차 개발 기금'을 통해 GM 측에 무려 1억4900만 달러의 지원금을 퍼주기도 했다.

그런데 크루즈 현지 생산이 시작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6월, GM은 "정부 지원이 지속되지 않으면 크루즈 생산을 중단할 수도 있다"면서 호주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다. 친환경차 개발 기금 지원이 2011년 초에 종료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호주 정부는 이를 부당한 압력이라 생각해 지원에 소극적이었으나, GM 측의 지속적인 압박과 공장 폐쇄 협박에 못 이겨 결국 조건 없는 지원에 나서게 된다. 작년 3월, 연방 정부와 2개의 주정부 합동으로 향후 10년간 10억 달러 지원을 약속하고, 먼저 2억7500만 달러를 지원하게 된다. 대신 GM은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10년 동안, 그러니까 2022년까지는 호주에 남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악재가 계속되었다. 그동안 효자 노릇을 했던 크루즈 판매가 급속히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호주 달러의 강세가 지속되자 호주에서 만든 자동차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수입한 차 가격이 더 싸게 매겨진 탓이다. 환율 효과는 엄청났는데, 2012년에 호주 자동차 내수 시장의 무려 90%를 수입차가 점유하는 상황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러자 GM은 곧바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작년 2월, GM은 조립 공장에서 2교대를 1교대로 바꾸고 교대조 하나를 없애면서 150명의 계약직·임시직 노동자를 정리해고 한다. 그리고 2조에 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1조로 전환배치 해서 라인 속도를 높여 더 빠른 속도로 차량 생산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GM은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크루즈 판매가 되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에는 이른바 '시장 대응 기간(market response day)'이라는 이름으로 공장 가동을 줄이게 된다. "시장 대응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기존 임금의 60%를 받고 휴업을 하게 된다.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작년 11월 GM은 추가로 170명을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희망퇴직 방식으로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내쫓게 된다.

크루즈 판매가 잘나갈 때에는 2700명까지 늘어났던 조립 공장 생산직 노동자들의 숫자는 이제 2000명 밑으로 떨어졌다. 엔진 공장 노동자들의 숫자도 이에 비례해 줄어들었다. 수천억을 퍼줬는데도 구조조정을 막아내지 못한 호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도 극에 달하게 된다. 결국 올해 9월 치러진 선거에서, 지난 6년간 집권한 노동당이 실각하고 자유당의 토니 애벗(Tony Abbott)이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 코모도어를 만들고 있는 GM 호주 공장의 노동자들. ⓒmedia.gm.com

호주 공장 폐쇄가 한국엔 기회? 어찌 그런 이기적인 발상을!

토니 애벗은 집권하자마자 GM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에 지급해오던 보조금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한다. 그러자 곧바로 포드가 2016년 10월까지 호주에서 2개의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GM은 얼마 전까지도 호주 공장에 대한 계획 발표를 내년으로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토니 애벗 총리는 "GM은 호주를 떠날 것인지, 남을 것인지 분명히 밝혀라"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작년 희망퇴직으로 170명이 쫓겨난 지 꼭 1년 만인 지난주(12월 11일), GM의 댄 애커슨 회장은 호주의 2개 공장 생산을 2017년에 중단하겠다는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홀덴에 대한 사망 선고를 내린 것이다.

자, 그런데 한국 언론들은 뭐라고 쓰고 있는가! 호주 공장을 폐쇄하면 한국으로 생산 물량이 넘어올 테니, 이것이 바로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4000명에 달하는 조립 공장과 엔진 공장의 노동자들, 1만 명에 달하는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공장 폐쇄'와 '사형 선고'를 내리는 GM이 아닌가!

그런데 호주 물량이라도 한국에 주면 "고맙습니다"라고 노예처럼 받아먹으란 말인가? 게다가 호주와 함께 한국에 대한 '총공격'을 펼치는 GM 입장에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한국의 생산 공장 하나쯤은 쉽게 날려버릴 수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닌데!!!

GM 자본의 논리를 적용하면 가능성도 희박

이런 기본도 되지 않은 이기적인 발상의 언론 기사들을 상대해주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내친 김에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겠다. 호주 공장이 폐쇄된다 하더라도 그곳 생산 물량이 한국으로 오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① 물류비용 면에서 볼 때, 한국보다 중국·인도·베트남·태국이 더 유리하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크루즈를 생산하고 있는 국가들 중 어떤 나라가 호주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말이다. 한국보다는 중국과 인도, 베트남과 태국이 훨씬 가까운 위치에 있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 비용과 물류비용 때문에 한국과 호주의 생산을 줄이겠다고 하는 마당에, 더 싼값에 수입할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굳이 한국에서 수입할 이유가 GM에 있을까?

ⓒ오민규

② 호주 생산 물량이 이전되는 것은 빨라야 2017년! 그때까지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한국-호주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관세 장벽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국GM이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호주에서 생산이 중단되는 것은 2017년이다. 그때까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을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권역의 다양한 국가들 사이에서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될 것이다. 점점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이 강해지는 추세인데, 2017년에 한국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③ 호주 생산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모도어 차량 생산에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대형 승용차 코모도어는 한국에서 구경하지 못한 차량이라 어떤 차인지 느낌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차량은 '제타(Zeta)'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데,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의 범블비(Bumblebee) 역할로 유명한 '쉐보레 카마로(Camaro)'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차량이다. 쉐보레 카마로는 GM의 대표적인 스포츠카로서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캐나다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제타 플랫폼 차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은 미국·중국·캐나다 정도에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제타 플랫폼 차량 제작이 가능한 생산 라인이 없기 때문에, 만약 코모도어를 한국에서 생산하기로 한다면 상당한 설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생산 비용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차세대 신차 생산지에서 배제한 한국GM에 추가 투자를 한다니? GM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한국GM의 미래를 걱정하는 일 따위는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GM, 노동자들이 정신 바짝 차려야!

며칠 전 한국GM의 세르지오 호샤 사장이 직원들과 웹 챗(웹상에서 직원들과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현장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뭐, 솔직히 그 얘기를 듣고 현대기아차나 쌍용차 같은 사업장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풍경이라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사장이랑 격의 없이 계급장 떼어놓고 인터넷 채팅방에서 대화를 한다니!

현재 한국GM 주위에 도는 흉흉한 소문들 때문에, 이번 웹 챗에는 사상 최대 인원인 1478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호샤 사장은 처음으로 희망퇴직 실시를 기정사실화했다. 내년 1분기에 사무직만을 상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이다. 생산직은 절대로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며, 연구 개발 업무량은 내년에도 올해 수준이 유지될 것이고, 희망퇴직 관련 사항은 노동조합과 논의한 후에 상세한 내용을 발표하겠노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웹 챗이 이뤄진 바로 그날부터 이미 <로이터 통신>, <월스트리트 저널>, <이코노믹 타임스>를 비롯한 각종 외신에서 "한국GM, 인력 감축에 나서다"라는 기사를 다루고 있다. 그것도 한국GM 사측의 공식 대변인의 실명 인터뷰를 실어가면서, 내년 1분기에 사무직을 상대로 희망퇴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외신 기사에 나온 대변인은 희망퇴직 대상에 연구 개발 부서와 디자인 부서도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직접 하고 있다. 아니, 연구 개발 역량을 보호하는 것을 바탕으로 희망퇴직 계획을 짜겠다고 얘기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그리고 노동조합과는 일언반구 논의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수많은 외신에 이 얘기를 기정사실로 발표한 것이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자본 GM이 어떤 존재인지 단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호주 공장이 폐쇄되면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얘기들, 이건 모두 노동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저항의지를 약화시키는 데 활용될 뿐이다.

앞선 글에서 이미 논박한 것처럼, 내수 시장을 강화하니 러시아·CIS 시장을 공략하니 하는 얘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이런 활로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생산에 전념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으로 뭉치고 단결해 싸우는 길이 아니라, 회사를 믿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하지만 진실로 고용을 보장받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헛된 주장을 믿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믿어야 할 것은 오직 노동자 자신의 힘뿐이다. 이것을 믿는다면 의외로 자신의 힘이 엄청나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이다.

호주 공장 폐쇄 발표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반응은 "그럼 호주 생산 물량이 한국으로 올지도 모르겠네" 하는 발상이 아니다. 호주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한순간에 박탈한 GM의 사망 선고를 규탄하고, 호주 노동자들에게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한국 노동자들도 여러분의 투쟁에 함께하겠노라고 하는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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