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벗은 GM, 물먹는 박근혜? 노림수는 따로 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한국GM의 미래, 안녕하십니까?

"GM이 2015년 말까지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키로 결정했다. 현지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사업 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됨에 따른 것이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차량 대부분이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어 한국GM의 앞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마침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5일부터 GM과 관련한 뉴스가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동안 <인사이드 경제>가 집중적으로 탐사와 분석을 진행했던 글로벌 자본 GM이, 이제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끊이지 않는 GM 철수설 : 구조조정의 밑자락 깔기

그동안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것 아니냐" 하는 루머가 이따금씩, 끊이지 않고 돌았다. 이런 루머는 지난해 11월, 차세대 쉐보레 크루즈를 한국에서 생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있은 직후 돌기 시작했다. 올해 초 북한과 갈등이 고조될 때에는 GM의 CEO인 댄 애커슨 회장이 한국에서 철수할 경우를 대비한 '비상 계획(Contingency Plan)'을 세우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올해 5월 8일에는 백악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환율과 통상임금 소송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에서 철수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이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철수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커슨 회장 앞에서 "잘 해결하겠다"는 약속까지 해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한국GM 임금 교섭이 한창이던 지난 6월에는 차세대 쉐보레 아베오 생산에서도 한국이 배제될 것이라는 경영진의 통보가 있었다. 한 달 뒤인 7월에는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어 유럽으로 전량 수출되는 오펠 모카의 생산을 내년 하반기부터 스페인 사라고사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GM 유럽 법인(오펠)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8월부터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해외의 굵직한 언론사들이 "GM이 한국에서 점진적인 철수를 하려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고 나서 100여 일이 지난 지금, GM은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에서 팔리는 쉐보레 차량의 90%가 한국GM에서 생산해 수출되는 차량임을 감안할 때,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GM 측은 "한국에서 철수는 없다"고 입장을 밝힌다. 사실 <인사이드 경제> 역시 '철수' 문제라면 비슷하게 생각한다. 위에서 사용된 '철수'라는 말은 사실상 한국에서 사업 일체를 접는다는 것인데, 이는 4개의 생산 공장을 모두, 일거에 폐쇄하겠다는 뜻이 된다.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만 1만 명에 비정규직도 수천 명에 이르고, 사무직과 판매·정비 노동자들도 1만 가까이 되는 사업체를 한방에 없앤다? 유사 이래 전쟁 시기를 제외하곤 이런 수준의 자본 철수는 존재한 적이 없다. 제아무리 GM이라 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경제적·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철수냐 아니냐"를 입증하기 위한 논쟁은 지금으로선 무의미하다. 당장 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기적으로, 점진적으로 철수할 것이라는 주장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철수는 없다"는 GM 사측의 말 역시 당장은 큰 의미가 없다. 그 말을 믿고 안도할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조리 부정해서 당장 철수를 기정사실로 볼 상황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사이드 경제>가 그동안 일관되게 견지해온 논리가 있다. GM의 자본 철수냐 아니냐를 떠나서, 지금 GM은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 공격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그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애커슨 회장이 언급한 통상임금 문제 역시, GM이 바라는 것은 소송 뒤집기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위한 명분 쌓기였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

그런데 이번엔 스케일이 다르다. 유럽에서 쉐보레를 철수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GM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없는 이들까지도 쉽게 '구조조정'과 '철수'란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철수는 없다"고 진화에 나서긴 했지만,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 12월 10일자 <파이낸셜 뉴스>의 보도. 심지어 입사 연차별로 구분해 보상 내용과 인원을 결정해 희망퇴직을 실시할 것이라는 추정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파이낸셜 뉴스> 갈무리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대목에서 회사 측 스텝이 꼬인다. 이미 몇몇 언론들은 익명의 사측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희망퇴직 실시'를 기정사실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마찬가지로 익명의 관계자 멘트를 빌려 "구조조정은 없다"는 얘기를 쓰고 있다.

사실 이건 현재 상황에 대해, 그리고 향후 한국GM의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미래 전망과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면 사측 관계자들 역시 일관된 언론 대응 방침대로 움직일 텐데 말이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좀 어이없는 얘기가 된다. 한국GM의 미래에 대해 회사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그렇다. 미국 본사나 해외사업본부 수준에서는 뭔가 구체적인 방침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나, 오히려 한국GM 측은 이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해외 자본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기업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수출 물량 수치가 왜 이래?

이를테면 <한국경제>를 비롯한 한국 언론들은 이번 쉐보레 유럽 철수 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한국GM의 생산 물량이 18만6872대에 달할 것이라 보도하고 있다. GM 사측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해 한국GM의 전체 판매량이 80만639대였고 그중에서 유럽 수출 물량이 그 정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매월 발간하는 '통계월보'의 데이터를 참조하면 <한국경제>가 제시한 데이터와 뭔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래 표는 통계월보 데이터를 활용해 2011년부터 올해까지 한국GM의 각 지역별 수출 물량을 정리해본 것이다. (올해 수치는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의 수출 물량을 기록한 것이다.)

ⓒ오민규

자동차산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과 재작년 모두 한국GM의 EU(유럽연합)에 대한 수출 물량이 20만 대를 넘는 것으로 나온다. 게다가 EU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유럽 국가들로 수출된 양도 8만~11만 대에 달한다. 그렇다면 서유럽과 동유럽을 합한 유럽 전체 수출 물량은 30만 대 안팎이어야 정상 아닌가?

물론 자동차산업협회의 데이터와 개별 완성차 업체의 수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계산 방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치하지 않더라도 2000~3000대가량의 차이를 넘지는 않는다. 자동차산업협회 데이터로는 30만 대를 육박하는 유럽 수출 물량이, 회사 데이터로는 18만 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계산 방식 차이를 넘는 문제이다.

추정컨대 18만6872대라는 수치는 기본적으로 EU에 대한 수출 물량을 참조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년 수치(20만1315대)와 1만5000대가량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건 아마도 한국GM에서 생산되는 유일한 오펠 브랜드의 차량인 모카(Mokka) 수출 물량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GM이 이번에 발표한 것은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하겠다는 것이므로, 한국GM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쉐보레' 차량만을 계산한 것이다. 전체 유럽 수출 물량에서 오펠 모카 물량을 뺀 수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오펠 모카 생산 물량 역시 내년 하반기부터는 스페인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한국GM 수출 물량에서 영향을 받는 수치에서 오펠 모카를 굳이 제외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GM의 공식 발표는 '서유럽 및 동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겠다는 것이었기에, 유럽 수출 물량 역시 EU만이 아니라 동유럽을 포함한 전체 유럽 수출 물량 30만 대를 놓고 얘기하는 것이 옳다. 이는 '고의적으로' 자본 측에서 이번 발표로 인해 타격을 입을 수치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뭔가 석연치 않은 지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관계 검증부터 해봅시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따져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GM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문제는 2만에 달하는 한국GM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니, 사실 한국GM에 납품하는 수많은 부품사 노동자들의 미래도 걸려 있다.

최근 보도되는 바에 따르면 인천항만 물류와 연관된 업무들도 빨간불이 켜졌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한국GM 차량 대부분이 인천항을 통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장에서 인천항으로 차량을 실어 나르는 카 캐리어(car carrier) 기사들을 비롯한 다양한 물류 관련 노동자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아울러 GM만이 아니라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쌍용자동차, 르노 그룹에 인수된 르노삼성 역시 해외 자본의 생산 기지라는 동일한 성격을 갖고 있다. GM에서 벌어지는 일은 얼마든지 쌍용차와 르노삼성에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이드 경제>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현재 한국GM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 아울러 해외 자본의 생산 기지가 되어버린 몇몇 완성차 업체의 현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들 해외 자본과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 등을 논해볼 예정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 수만 100만을 훌쩍 넘고, 연관 산업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노동자와 가족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 아니던가. 경제란 바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다름 아니고, 그렇다면 이런 주제야말로 <人사이드 경제>가 다뤄야 할 핵심 의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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