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에 특혜 안겨준 박근혜 정부, 배신당할 운명?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 북미·유럽 이어 아시아·태평양 공격

지난 연말부터 철도 파업과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토론, "안녕들 하십니까"로 대표되는 활발한 사회적 참여가 한창이라 '인사이드 경제'의 GM 연재가 잠시 중단되었다. 여기에 필자가 일하는 사무 공간이 정동의 민주노총 사무실, 그것도 경찰이 철도노조 위원장의 은신처로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격전지 14층인지라 연말연시가 참으로 암울하기만 하다.

경찰들의 침탈로 커피믹스만 체포된 것이 아니라 캐비닛과 서랍장이 부서지고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탓에 지난 10년 동안의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역사와 자료가 모조리 날아갔으니! (덤으로 캐비닛 안의 커피믹스들도 사라졌다.) '멘붕', 우울, 갑자기 분기탱천, 다시 의욕 상실…. 그러다 보니 키보드를 다시 잡기까지 참 힘이 들었다.

다행히 부서지고 파묻혔던 자료들 일부를 금속노조에서 힘들게 수거해 놓으셨고, 몇몇 동지들의 도움으로 그 자료 더미에서 지난 10년간 회계 자료와 오래된 하드 디스크를 다시 찾게 되었다. 물론 파일 형태로 기록해놓지 않은 인쇄물들은 영원히 되찾을 수 없겠지만, 그리고 찾지 못한 USB에 저장된 내용들도 다시는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믿을 건 동지들뿐이라는 간명한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힘을 내기로 한다.

글로벌 GM의 사업부 변화 양상

자, 그럼 작년에 했던 GM 얘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글로벌 GM은 한국GM의 비중을 낮추기로 확실히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쉐보레 유럽 철수'는 매우 결정적인 생산 물량 타격에 해당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GM 사측이 이런저런 대안을 떠벌리기는 하지만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

그럼 도대체 글로벌 GM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이를 논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벌어진 글로벌 GM의 사업부 체계 변화를 알아둬야 한다.

ⓒ오민규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본래 글로벌 GM은 5개의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선 전 세계 5대륙을 4개 사업부로 쪼개어 GM북미와 GM남미, GM유럽, 그리고 중국·러시아·호주·한국 등이 포함된 GM 해외사업본부(IO : International Operation)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금융 자회사인 GM 파이낸셜이 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구도에 거대한 변화가 생겼다. 우선 글로벌 GM은 지난해 8월, 그동안 해외사업본부(GMIO) 소속이던 중국 법인을 별도 사업부인 'GM China'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GMIO 사장이던 팀 리(Timothy Lee)를 그곳으로 보내 중국 사업부의 회장 자리에 앉혔다.

아울러 작년까지 IO 사업부 소속이던 러시아 법인은, 올해 1월 1일자로 GM 유럽 사업부에 편입되도록 편재를 바꾸었다. 러시아 내수 시장은 침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나, 지난번에 살펴본 것처럼 몇 년 뒤에는 독일을 능가하는 시장으로 떠오르리라는 전망 아래 세계 굴지의 완성차 기업들이 러시아로 진출하고 있다.

잘나가는 중국,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러시아와 달리 IO 소속의 한국과 호주는 된서리를 맞고 있다. 호주는 2017년까지만 차를 생산하고 철수하겠다는 GM의 선언이 있었고, 한국은 생산량의 엄청난 감축을 당하고 있다. '쉐보레 유럽' 역시 법인은 유럽에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한국GM의 자회사 격이기 때문에 소속은 IO(해외사업본부)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중국과 러시아는 핵심 사업부로 이관하고, 해외사업본부에 남은 법인들 중 호주와 쉐보레 유럽은 철수하고 한국의 생산 비중은 줄이는 등 IO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게 지금 글로벌 GM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한국GM에 몰아치는 사건들은 이런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제 GMIO라는 사업부 이름도 CIO(Consolidated International Operation)로 바뀌게 되었고, 올해 하반기에는 IO의 본부를 상하이에서 싱가포르로 옮기게 된다. 이러한 변화 역시 상징적인 사건이다. 본래 싱가포르에 있던 IO의 본부가 2004년에 상하이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중국을 잡아야 한다는 기치 아래, IO 부문을 확장해가는 시점이었다. 한국GM 역시 2005년 말부터 비중이 수직 상승했다.

그런데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독립해서 나가고 다시 본부가 싱가포르로 옮겨가는 상황이 되었다. 북미, 남미, 유럽, 중국을 핵심 사업부로 키우고, IO 부문은 그야말로 '떨거지' 사업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2009년 미국, 2010년 유럽, 그다음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벌어졌을 때 파산 위기에 몰렸던 GM은, 2009년에 미국에 있는 47개 생산 공장 중 무려 14개를 폐쇄하고 2만1000명을 정리해고 하는 등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거의 '학살'에 가까운 공포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폐쇄된 14개 공장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7개가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건 주에 집중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시건 주는 산업과 노동조합이 밀집되어 있는 지대이다. 다시 말해 GM은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가장 높은 곳을 집중적으로 공장 폐쇄의 대상으로 삼았다.

미시건 주의 실업률은 엄청나게 치솟기 시작한다. 그때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아 빅 3의 본사가 위치한 디트로이트 시는, 지난해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로 파산에 이르기도 했다.

ⓒ오민규

그다음 GM의 공격 대상은 유럽으로 옮겨졌다. 2010년부터 유럽 사업부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 GM은, 유럽 전역에 산재해 있는 12개의 생산 공장 중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 공장을 폐쇄하고 올해 안에 독일의 보훔(Bochum)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에서 자동차 생산 공장이 폐쇄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 하니, 글로벌 GM의 구조조정 공격은 실로 엄청난 사건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GM은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가장 강력한 곳을 타깃으로 삼았다. 보훔 공장 노동자들은 독일 내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기풍을 가진 이들로 평가되어왔다.

이제 북미와 유럽에 대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마친 GM은, 다음 차례로 IO 부문을 먹잇감 삼아 공격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인용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내용의 핵심 역시, GM이 IO 부문의 핵심이라 할 한국과 호주에 대한 전면전을 감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IO만이 아니라 남미에 대한 공격도 함께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남미의 경우 핵심 생산 거점인 브라질에서 작년 1월, 상 조제 두스캄푸스(São José dos Campos) 공장에서 1600명을 정리해고 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정리해고를 잠시 보류했으나 결국 4월에 598명 정리해고를 강행하고 만다.

반면 다른 지역의 그라바타이(Gravatai) 공장에서는 교대조를 늘려 2630개의 일자리를 충원했다. 앞의 공장에는 전투적인 노조가 존재하는 반면, 뒤의 공장에는 협조적인 노조가 들어서 있다. 생산 물량 배정을 통해 같은 나라 내에서조차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GM은 향후 남미 사업부에서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아르헨티나를 육성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오펠 코르사를 개조한 쉐보레 클래식을 생산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호사리오(Rosario) 공장에 수억 달러를 투자해 GM의 새로운 글로벌 차량을 생산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남미 대륙 내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경쟁시키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특혜에 규제 완화, 다 퍼주는 박근혜 정부

앞서 얘기한 미국과 유럽에 대한 글로벌 GM의 구조조정 공격 시점은, 양 대륙이 각각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 등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렇다면 IO 부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글로벌 GM이 아시아·태평양 대륙으로도 경제 위기가 상륙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남미 역시 마찬가지.


이런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재벌과 해외 자본에 일체의 규제를 다 풀어주고 특혜를 제공하는 데 여념이 없다. 작년 연말에 GM 측이 환경 규제를 핑계로 서민용 생계형 차량인 다마스·라보를 단종시키자, 환경 규제와 안전 규제 적용을 모조리 유예해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GM이 단종 이유로 제기했던 환경 규제는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환경 규제 대응을 위한 개발 비용은 고작 20억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국토교통부가 예고한 안전 규제 문제였다. 여기에는 줄잡아 200억 안팎의 개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국토부가 예고한 안전 규제는 다음의 6가지였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되는 개선형머리지지대, 그리고 2015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안전성제어장치(ESC), 제동력지원장치(BAS), 바퀴잠김방지식제동장치(ABS), 타이어공기압경고장치(TPMS), 안전벨트 경고등/경고음 등이다.

GM 측은 이들 규제에 대해 향후 6년간(세상에!) 유예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젓던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GM이 지난 연말에 다마스·라보를 단종시키자 태도를 바꾼다. 위 6가지 규제 중 5가지에 대해 GM의 요구대로 향후 6년간(!) 규제 적용을 유예하고, 타이어공기압경고장치(TPMS)에 한해서만 향후 3년간(!) 규제를 유예해준 것이다!

서민형 차량이 단종되지 않고 계속 생산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건 뭐 완전히 GM의 요구에 두 손 두 팔 다 들었다고 표현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서민형 차량 생산 지속을 위해 환경 규제와 안전 규제를 모조리 풀어준 것 아닌가. 게다가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수백억씩 들여가며 규제를 맞춰야 하니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하다. 이게 과연 '비정상의 정상화'란 말인가?

▲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GM 사장 등의 만남을 보도한 <서울신문> 기사.

그렇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부의 모습 역시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이했던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과 똑같이 닮았다. 그들은 하릴없이 GM의 요구에 화답했으나 결과적으로 건진 건 없었다. 지금까지 수억 달러를 지원해준 호주 정부에 준 선물이 '2017년 공장 폐쇄' 아니던가.

여전히 GM은 "한국에서 철수 안 한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아니, 한국GM은 안철수 팬인가? 누가 철수 얘기를 물어봤나? 도대체 한국GM에 대한 장기 전망을 갖고 있는지, 구조조정 하려는 것 아닌지를 답하라 했더니! 뭐야, 이거 자꾸 철수 얘기하는 게 도둑이 제발 저려서 아닌가? 은연중에 본심이 들킨 것일지도?

하기야 본심을 드러낸들 뭐하겠나. 영어 잘하시는 우리 대통령께서 "Government is here to support you.(한국 정부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당신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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