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패 쥔 GM…구조조정 공격은 시작됐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본색 드러낸 GM…이제 대안 논의를 시작하자

"GM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설이 있던데 사실인가?"
"GM이 군산 공장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이런 질문들을 했었나 보다. GM 측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는다", "군산 공장 매각설 전혀 사실무근"이라 펄쩍 뛰면서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에 가서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까지 이 얘기를 힘주어 강조할 정도이니 말이다.

잘못된 질문에는 믿을 수 없는 답만 나온다

사실 위와 같은 질문 혹은 합리적인 의심을 품어볼 만큼 현재 한국GM을 둘러싼 상황은 '비정상(!)'이다. 규제 때문에 다마스·라보 경상용차를 단종한다고 하자 정부는 환경 규제는 2년, 안전 규제는 무려 6년의 기간 동안 유예 조치를 해줬다. CEO가 직접 나서 통상임금 판결 때문에 장사 못해먹겠다는 얘기를 하자, 대법원은 민법에서도 잘 써먹지 않는 '신의칙'을 노동법에 적용하는 전대미문의 판결로 GM에 성의 표시(?)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한국GM에 대한 생산 비중 축소와 구조조정 공격이다. 지난해 12월,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사무직에 대한 희망퇴직 실시를 예고했다. 여기에다 최근 군산 공장 가동률이 떨어진 것을 계기로, 무려 1100명의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고 노조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거야말로 GM이 '신의'를 위반한 것 아닌가?

하지만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오면 GM은 너무 쉽게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낸다. 사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쉽다. 내가 자본가라면, 그리고 여러 가지 상정 가능한 대안들 중 철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기자들이 몰려와서 '철수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사실대로 "철수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순순히 인정할까?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자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내일 철수할 것이 기정사실이라 할지라도 오늘은 절대 철수하지 않는다고, 영원히 이 나라에 남을 것이라고 답을 하는 게 자본의 본성이다. 나중에 철수할 경우 말을 바꾼다고 욕먹지 않겠냐고? 그건 그때 가서 적당한 핑계와 구실을 찾으면 된다. 이미 생각해놓은 핑계거리들 가짓수도 충분하지 않은가! 환율 상승, 통상임금 소송, 강성 노조, 북한과 대치 상태….

지난해 연말에 GM은 쉐보레 유럽 철수 선언에 이어, 호주 공장을 2017년까지만 운영하고 폐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호주 공장의 사례를 봐도 드러난다. 2012년에 GM은 호주 연방 정부와 주 정부들이 합동으로 향후 10년간 10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약속을 받고 먼저 2억5000만 달러 지원을 받게 된다. 이와 함께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10년 동안, 그러니까 2022년까지는 호주를 떠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결국 그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말을 바꿔 폐쇄 결정을 내린 GM이 핑계로 댄 것은 무엇인가? "환율 상승, 내수 시장 위축, 너무 심한 경쟁"이다. 호주에서 노동조합은 큰 변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틈만 나면 곳곳에서 노동조합 핑계를 대던 GM이 노조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여하튼 애초 약속보다 5년이나 일찍 떠난다는 발표를 하기 전까지, GM은 호주를 떠나니 어쩌니 하는 얘기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아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호주를 떠나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해왔다. 그러니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는 말을 수십 번 아니 골백번을 반복한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는 이들이 순진한 편에 속한다는 것이다.

▲ 한국GM 군산 공장이 구조조정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가운데, 부평 공장과 창원 공장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한국GM 부평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연합뉴스

공장을 매각하지 않는 GM의 특성

군산 공장 매각설 역시 GM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데 이 지점은 글로벌 GM의 행태를 잘 알고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GM은 공장 폐쇄를 할지라도 문 닫는 공장을 매각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그냥 고철덩어리로 방치해 버린다.

2009년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던 해에 GM은 미국에서만 14개 공장을 폐쇄한 바 있다. 그 공장들 중 현재 2개 공장(스프링힐, 오리온타운쉽)은 재가동되고 있다. 그럼 나머지 12개 공장은? 매각도 하지 않고 가동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방치돼 있다.

2010년에 문을 닫은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중국의 지리자동차가 폐쇄 예정인 벨기에 공장에 눈독을 들이긴 했지만, 결국 GM은 어디에도 매각하지 않았다. 올해 연말에 폐쇄 예정인 독일 보훔 공장도 매각은 예정에 없다. 2017년 폐쇄할 것이라고 발표된 호주의 2개 공장(조립 공장과 엔진 공장) 역시 매각 얘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다.

GM의 철수 방식은 매각이 아니라 그냥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필요하다 싶으면 버리고 떠난 그 공장을 재가동한다. 인도네시아 사례가 바로 그런데, GM은 1930년대에 인도네시아에 진출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철수한 바 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인도네시아 베카시에 공장을 짓고 2번째 진출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결국 2005년에 다시 철수하고 만다.

그러던 중 작년 5월, GM은 인도네시아에 3번째 진출을 하게 된다. 그 방식은 매각하지 않고 버려둔 베카시 공장을 재가동하는 것이었다. 무려 8년 동안 그냥 고철덩어리로 방치해둔 그 공장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GM은 3년간 준비 작업을 해야 했다. 기계 설비도 문제지만 버려둔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숲을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공장이 재가동되던 날, 당시 GM의 해외사업본부(IO) 사장이던 팀 리는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방문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인도네시아에 남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은 그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미 2번이나 들어왔다가 철수한 전력이 있는데?

여하튼 GM은 웬만해서는 자신들이 인수하거나 지은 공장을 다른 자본에 매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군산 공장 매각설'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하는 것이다. 만에 하나 한국에서 철수하더라도 매각할 일이 없는데 말이다. 문제는 GM의 이런 답변을 듣고 "매각 안 한다고 했으니 철수설도 사실무근"이라고 써대는 일부 언론들이다.

이제 그 말을 책임질 인물도 남아 있지 않다

24일(현지 시각) GM은 그동안 글로벌 생산 조직을 총괄하고 중국 사업부를 책임져왔던 팀 리(Timothy Lee)가 4월 1일자로 사직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그가 맡던 글로벌 생산 총괄은 짐 델루카(Jim DeLuca)가 승계하게 되며, 중국 사업부는 맷 찌엔(Matt Tsien) 사장이 맡게 된다.

다시 말해 그동안 호주이건 인도네시아건 한국이건 간에 뭔가 구체적으로 약속하고 협상해온 책임자가 사직한다는 것이다. 특히 팀 리는 지난해 2월 직접 부평 공장을 찾아 "한국GM에 5년간 8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GMK 20XX'를 발표했던 인물 아니던가!

또한 통상임금 문제와 환율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GM 투자 계획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협박을 했던 댄 애커슨 역시 이제 CEO 자리를 매리 바라(Mary Barra)에게 넘겨주고 떠난 상태다. 물론 당분간 컨설턴트 자격을 유지하며 GM을 완전히 떠나진 않겠지만, 자신이 했던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위치는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GM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 책임자 자리에는 그동안 한국GM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대화와 협상을 했던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예전에 했던 말을 책임지라고 외쳐봤자, 그건 전임자가 한 말이니 나는 모른다고 발뺌할 구실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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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공장에서 불어오는 구조조정 바람

결국 GM은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군산 공장을 1교대로 전환하면서 1100명의 인원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 대외적으로는 "어떤 것도 확정된 바 없다. 노조와 대화 중이다"라고만 얘기했지만, 노사 협의 자리에서 회사가 제시한 구조조정 계획을 노조가 전격 공개하면서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는 GM의 거짓말이 만천하에 탄로 나게 되었다.

일파만파 여론이 악화되자 27일 노사 협의 자리에서 결국 슬그머니 1교대 전환 계획은 철회하겠다고 밝혔으나, 끝내 인원 감축 계획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즉, 1교대를 철회하더라도 구조조정은 예정대로 밀고 가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사실 군산 공장은 신호탄이자 출발점일 뿐이다. 생산량 감축에 따른 구조조정 밀어붙이기는 조만간 부평 공장으로 옮겨붙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GM 측은 부평의 1공장과 2공장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기회 있을 때마다 흘리곤 했다. 부평 2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을 1공장에서도 혼류 생산을 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실무적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평에서도 인원 감축 얘기가 조만간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군산 공장 하나만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부평 공장 문제가 얹히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 GM 자본은 사실 그런 복잡한 상황을 원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노동자들을 분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직 희망퇴직 소문을 내면서 생산직과 사무직을 분리하고, 군산 1교대 전환과 부평 1·2공장 통합설을 흘리면서 "창원은 괜찮지 않겠냐"라며 부평·군산·창원을 분열시킨다. 인원 감축이 되더라도 사내 하청 비정규직 잘라내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부추기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할 수도 있으니, 이런 상황이야말로 GM으로서는 꽃놀이패를 쥐는 셈이 된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아니, 제대로 바짝 차려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 군산·부평·창원 노동자들의 단결, 생산직과 사무직의 단결이라는 간명한 진리를 실현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당할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이 확실시되는 사무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굳건한 단결과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아울러 이제 GM의 행태를 낱낱이 알게 되었으니 대안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당하면서 고사당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대안을 거칠게나마 고민하면서 던질 것인가. <조선일보>조차 이런 얘기를 떠들고 있지 않은가!

"일각에서는 자동차 회사를 해외에 매각한 저주가 시작된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동차 회사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해외에 매각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를 봐도 자동차 회사가 어려움을 겪으면 정부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동차 산업을 최대한 지키고 있다." (<조선비즈> "GM, 군산 공장 인력 조정 착수…사내 하청 1100명 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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