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노사합의안 부결…'격랑' 속으로

'벼랑 끝 합의안' 부결된 이유와 전망은?

금호타이어가 다시 격랑에 휘말리게 됐다. 193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유보하는 대신 1006명을 아웃소싱, 즉 도급직으로 전환하고 임금 및 상여금을 삭감·반납하기로 한 금호타이어 노사의 합의안이 노조의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아슬아슬한 부결도 아니었다.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조합원들의 선택을 놓고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의 합의안 자체가 지나친 양보안이었다"는 해석과 "무책임한 선택"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엇갈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금호타이어가 조속한 시일 내에 정상화되긴 어렵다는 전망은 일치하고 있다.

투표 부결 하루 뒤인 9일 금호타이어는 곧바로 해고예정자 193명 중 명예퇴직 신청자 2명을 제외한 191명에게 "10일 자로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아웃소싱될 예정인 1006명에게도 사 측은 "5월 10일자로 해고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전면 중단했다. 9일 예정됐던 산업은행의 '금호타이어 워크아웃 설명회'는 취소됐다. 1000억 원 규모의 긴급 운영자금 지원과 3000만 달러 한도의 신용장(L/C) 신규 개설도 당분간 보류될 것으로 보인다.


193명 정리해고 빼고 대폭 양보한 합의안 부결

금호타이어지회가 지난 7일부터 광주·곡성 공장에서 실시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는 부결됐다. 임금협상안에 대해서는 43.8%만이 찬성표를 던졌고, 단체협약 합의안에 대해서는 이보다 낮은 43%가 찬성했다. 전체 투표가 4360명 가운데 반대표는 각각 56.2%, 57.1%였다.

이 투표에 올라간 합의안은 지난 1일 노사가 극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노조가 전면 파업에 들어간 지 하루가 안 돼 나온 합의안이었다.

당시 노사는 임금 부문에서는 △기본급 10% 삭감 △워크아웃 기간에 5% 반납 △상여금 200% 반납 △워크아웃 졸업 때까지 임금동결을 합의했다. 정리해고와 관련해서는 193명 정리해고를 유보하고 대신 597개 직무의 단계적 도급화를 약속했다.

그 밖에도 노조는 현금성 수당의 삭제와 워크아웃 졸업 때까지 일부 복리후생의 중단 및 폐지를 약속해줬다.

지난 2월 노사 협상이 시작된 지 2개월 만에 나온 합의에서 노조는 193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일단 막았지만, 대부분의 부분에서 대폭 물러난 양보를 한 셈이었다.

"193명 구하고 1006명 버린 데 대한 불만 작용"

▲ 금호타이어가 다시 격랑에 휘말리게 됐다. 193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유보하는 대신 1006명을 아웃소싱, 즉 도급직으로 전환하고 임금 및 상여금을 삭감·반납하기로 한 금호타이어 노사의 합의안이 노조의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연합뉴스
비록 노조의 양보안이기는 했으나,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고 채권단의 긴급 자금지원 없이는 공장 운영마저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던 만큼 이 합의안이 가결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결과가 만족스러워서라기보다는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조합원들에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정작 투표 결과는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이런 결과를 놓고 크게 두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합의안 자체가 지나친 양보안이었다"는 평가가 첫 번째다.

우선 임금협상안은 대부분 사 측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됐다. 기본급 삭감율을 놓고 20%라는 사 측의 요구안 대신 노조의 최종안이었던 10%로 정리된 것을 제외하면, 상여금 200% 삭감 등 많은 부분 사 측의 요구안이 최종 합의안이 된 셈이다. 여기에 각종 수당까지 포함하면 임금 삭감 폭이 실질 임금의 무려 40%에 달한다.

하지만 임금협상안보다 단체협약안에 대한 반대가 소폭이나마 더 많았음을 감안하면 임금 삭감이나 반납 등 단순한 '월급봉투'만의 문제는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노동계 관계자도 "193명만을 '구제'했을 뿐, 나머지 1006명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것을 사실상 노조가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임금 삭감도 조합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그보다 고용 문제를 양보한 것에 대한 불만이 더 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노조가 1006명의 사실상 해고를 인정해 준 상태에서, 보류된 193명의 정리해고 문제 역시 언제든 또 불거질 수 있다는 불안감의 반영이라는 얘기다.

"노조 내부 갈등이 무책임한 결과로 외화됐다"

이와 별도로 노조의 내부 갈등, 즉 "현재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대안 없는 합의안 부결'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현재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여름 한 차례의 정리해고 국면이 지난 후 불신임 투표까지 벌어졌던 집행부다.

지난해 10월 있었던 불신임 투표에서 찬성율은 63%였다. 노조의 규약 상 집행부 탄핵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이를 넘기지 못한 것. 한 노동계 관계자는 "규약과 별도로 보통 탄핵 투표에서 찬성율이 50%가 넘으면 물러나는 것이 관행인데 규약을 핑계로 집행부가 사퇴하지 않으면서 이미 현장의 신뢰는 무너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노조 내부의 갈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현재 집행부와 현장 조직 간의 갈등이 "제 살 깎아먹기 식의 무책임한 합의안 부결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외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잠정합의안 투표 전 현장의 조직들은 대자보를 통해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교섭"이라 평가했고, 이에 대해 노조 집행부가 공식적으로 "부결된다면 이후 상황에 어떤 대책이 있는지 분명한 입장을 내라"고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상화 불투명해진 금호타이어,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나 청산으로

어쨌든 노사의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서 금호타이어의 정상화도 불투명해졌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노조 스스로가 해결 방안을 부정하면서 사태를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내다봤다.

현재의 집행부는 지난해에 이어 또 한 번 치명타를 입었고, 새로 임시 집행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회사가 추가 협상에 응할 가능성은 낮다. 당장 노사가 약속했던 193명의 정리해고 유보도 투표 부결 하루가 채 못 돼 뒤집어졌다.

채권단은 더 강경한 입장으로 나아가는 분위기다. 채권단은 이날 워크아웃 진행을 전면 중단한 뒤 "노사 협상이 끝나고 노조가 채권단에 구조조정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을 추진할 수 없다"며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워크아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채권단이 언급한 최종 기한은 이달 20일이다.

이때까지 노사가 또 한 번 합의안을 마련하고 사태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나 청산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이제는 193명만이 아니라 회사도 채권단도 더 많은 것을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한다"며 "앞으로는 지회 차원보다는 금속노조가 교섭권을 가지고 광주지역의 노사민정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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