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와 배교 사이, 인간 이승훈의 삶을 복원하다

[프레시안 books] 윤춘호의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

역사는 상대적이다. 역사는 기록에 의존한다. 그러나 기록하는 자가 있고, 기록하는 자의 입장이 있으며, 전하려는 자가 있고, 전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자가 있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주로 승자의 기록이 된다. 그러나 역사도 감정을 가진다. 관찰자의 역사도, 패자의 역사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던져준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와 현대의 끊임없는 대화다.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당대의 평가에 의해, 혹은 후대의 기록가에 의해 금기시된 인물들이 있다. 조선의 1호 천주교 신자이자, 1호 신부였던 이승훈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SBS 기자이자 작가인 윤춘호 논설실장이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 배교자 이승훈의 편지>(푸른역사)를 출간했다.

윤 작가는 역사 속에서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을 추적해 왔다. 그는 전작 <봉인된 역사: 대장촌의 일본인 지주들과 조선 농민>(푸른길)을 통해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익산의 대장촌이라는 농촌 마을의 역사를 살폈다. 일제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봉인된 민중의 삶을 복원하고 재구성했다.

윤 작가가 이번에 택한 소재는 이승훈과 정약용이다. <다산, 자네에게...>는 순교를 선택하지 않은 배교자 이승훈의 죽음,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행보를 통해, 그의 삶과 사상, 감성을 복원한다.(역설적이다.) 이른바 '팩션'으로 분류될 수 있겠다.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하면서 곳곳에 존재하는 '블랭크'를 합리적 상상력으로 채워 나간다. 다산에 보내는 이승훈의 편지로 시작해 그의 삶을 시대상과, 철학사와 함께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왜 이승훈일까? 이승훈의 동지이자 처남이었던 정약용과 함께 그는 한국의 초기 교회의 선구적 지도자들이었다. '왕권의 약화'를 우려한 조선의 기득권 세력은 서학의 세례를 받고 천주교를 조선 땅에 착근시키려던 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훈과 정약용의 운명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초기 천주교 지도자들이 겪은 신유사옥(신유박해) 과정에서 이승훈은 죽임을 당했다.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옥사하면서 순교자로 기록됐다.

그러나 끝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이승훈은 순교자도 아니었으면서, 배교의 대가로 죽음을 피하지도 못했다. 반면 신앙을 나눈 정약용은 살아 남는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죽음. 그러나 그 죽음은 과연 의미 없는 것일까. 오히려 '인간'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삶이, 바로 이승훈의 삶이 아니었을까.

윤 작가는 건조한 기록들 사이에서 인간 이승훈의 감성을 추적하고 그가 처했을 상황을 복원하고 감성을 소환한다. 그리고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선 사회의 선택받은 지식인 계층인) 그가 왜 천주교라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했을까. 그에게 천주교랁 어떤 의미를 갖는 종교였을까. 회계와 배교를 반복할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는 것이 왜 좋았을까. 왜 마지막 순간에 회계하여 순교자의 영광을 택하지 않았을까?"

역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당대 지식인들도 ,후손들도 그의 글을 보존하고 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그 역사의 공백을, 이승훈의 잃어버린 목소리를 추적하고 복원하는 것은 현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던져 준다. 이것은 믿는 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윤춘호는 1991년부터 SBS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정치부 사회부 등에서 뉴스 현장을 취재했고, 도쿄 특파원으로 3년을 일했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근현대사, 한국 정치, 민족주의, 진보의 미래 등에 대해 글을 써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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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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