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전 공격 당한 이란, 걸프국 에너지 시설에 잇단 보복…"명백한 확전"

유가 배럴당 115달러로 급등…"생산시설 파괴 땐 전쟁 끝나도 공급 수 년 차질 가능성"

이스라엘의 이란 최대 가스전 폭격 뒤 이란이 걸프국 에너지 시설을 보복 공격하며 전쟁이 새 국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보복 자제 촉구와 위협을 병행하며 에너지 시설 타격전으로의 확전을 진화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공급망이 악화된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공격에 국제유가는 다시 배럴당 115달러로 치솟았다. 이란 공격을 맞은 주변국들은 "인내에 한계가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란은 18~19일(현지시간)에 걸쳐 이웃국 에너지 시설에 대한 연이은 공격을 쏟아냈다.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을 보면 이란은 18일 세계 최대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시설인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를 공격해 시설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화재를 발생시킨 데 이어 다음 날에도 에너지 시설 공격을 이어갔다. 카타르 국영 에너지업체 카타르에너지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19일 오전 여러 LNG 시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대규모 화재와 막대한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이란 공격으로 하브샨 가스 시설 운영을 중단했다. 아랍에미리트 외교부는 19일 성명을 통해 자국 합샨 가스 시설과 유전에 대한 이란 공격을 규탄했다. 전날 아랍에미리트 국방부는 자국 방공망이 이란발 탄도 미사일 13발과 무인기 27대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전쟁 발발 이래 이날까지 방공망이 이란 탄도미사일 327대, 순항미사일 15대, 무인기 1699대를 요격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도 자국의 가스 시설에 접근하려는 무인기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란의 걸프국 에너지 시설 공격은 18일 이스라엘의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 공격에 대한 보복 성격이다. 이란 <파르스> 통신은 이날 사우스파르스 및 아살루예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가 미국과 이스라엘 폭격을 받아 일부 저장 탱크와 정제시설이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시설에 대한 첫 공격이다. 통신은 이란 군 소식통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전에 안전하다고 생각됐던 적의 기반시설"을 겨냥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보면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18일 성명을 내 사우디아라비아 샘레프 정유시설 및 알주바일 석유화학 단지, 카타르 라스라판 정유시설과 메사이이드 석유화학 단지 및 메사이이드 지주회사, 아랍에미리트 알호슨 가스전이 이란의 "합법적이고 주요한 목표물"이 됐다며 해당국 시민들에 이들 시설에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전문가 "사우스파르스 공습은 명백한 확전 신호"

분석가들은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공격을 명백한 확전으로 평가했다. 미 싱크탱크 수판센터는 18일 논평에서 "이스라엘의 상류 부문 생산시설 공습은 이란이 오랫동안 선을 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해 온 행위"라며 "이란 사우스파르스 생산시설 공습은 이스라엘이 분쟁이 명백히 확대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센터는 이스라엘이 실용주의자로 평가돼 현 상황에서 긴장 완화를 이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던 이란 안보 수장 알리 라리자니를 제거하고 곧바로 가스전을 폭격한 것은 "이스라엘이 전쟁의 일시적 중단이나 외교적 해결을 포함해 미국이 선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차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을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쪽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수판센터는 "단기간 내 재보급 및 재건이 가능한 석유 저장고와는 달리 LNG 생산시설은 특히 전쟁 상황에선 쉽게 수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가스전이 이란 전체 천연가스 생산의 약 75%를 담당하고 거의 전부 국내에서 소비돼 "이스라엘 공습의 가장 즉각적 여파는 이란 민간인들이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센터는 이란인들에 반정부 시위를 요구했던 이스라엘이 "민간인 생활 조건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해 정권에 추가적 압박"을 가하려 이 공격을 수행했을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현재까지의 공격은 오히려 이란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킨 것으로 보여 의도가 적중할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트럼프, 이란에 보복 자제 촉구 및 위협…에너지 타격전 진화 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공격에 대해 "몰랐다"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분노로 이란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으로 알려진 주요시설에 폭력적 공격을 가했다"며 "미국은 이 특정 공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이 카타르와 같은 무고한 국가를 공격한다는 현명하지 못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이 극도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에너지 시설 공격으로 전쟁이 확대되려는 조짐을 보이자 이를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카타르 LNG 시설을 다시 공격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의 도움이나 동의가 있든 말든 이란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도와 힘으로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전체를 완전히 폭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P>는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이스라엘의 사우스파르스 가스전 공격 계획을 통보 받았지만 공격에 참여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 공격 계획에 미 행정부가 동의했는지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압박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승인했다고 보도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에너지 시설 공격 관련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이러한 공격이 에너지 가격을 올려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고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그러나 동시에 이란의 최대 수입원 공격이 현재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해 홀로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협상패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유가 장중 한때 115달러…"생산시설 타격 땐 전쟁 끝나도 공급 차질 수 년 지속"

전쟁이 에너지 시설을 타격하는 새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오며 공급 차질 우려로 국제유가는 크게 흔들렸다. 19일 BST 오전 8시35분(한국시각 오후 4시35분) 기준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은 전날보다 6.99달러(6.51%) 오른 배럴당 114.37달러에 거래 중이다. 전날 배럴당 107.38달러에 거래를 마친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장중 배럴당 115.1달러까지 치솟았다. 같은 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도 장중 한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가 EDT 오전 3시42분(한국시각 오후 4시42분) 기준 전날보다 1.09달러(1.13%) 오른 배럴당 97.41달러에 거래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국면이 이어지면 전쟁이 끝나더라도 공급망이 곧바로 회복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에너지 정보업체 아거스미디어의 LNG 가격 책임자인 마틴 시니어는 에너지 시설 공격이 계속될 경우 "시설 피해 복구 기간이 전쟁 기간보다 길어질 수 있다"며 "에너지 부문에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영향"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를 보면 MST파이낸셜 에너지 분석가 사울 카보닉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격앙된 걸프국들…사우디 "인내에 한계"

이란의 포화를 맞은 걸프국들은 점점 격앙되고 있다. 아랍·이슬람 12개국 외무장관들은 19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회의 뒤 공동성명을 내 이란에 "즉각적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알자지라를 보면 사우디 외무장관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왕자는 이날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이란을 향해 "인내엔 한계가 있다"며 "공격을 받은 사우디와 동맹국들, 다른 나라들엔 원할 때 동원할 수 있는 매우 막강한 역량과 능력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신뢰를 다시 쌓을 때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란이 즉시 멈추지 않는다면 그 신뢰를 재구축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카타르 외교부도 18~19일 잇단 성명을 내 이란이 최근 이틀간 자국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에너지 시설을 공격한 것은 "모든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카타르의 "대응할 권리"와 "자위권"을 강조했다.

▲지난 2일 카타르 라스라판 액화천연가스(LNG) 산업단지의 카타르에너지 운영 에너지 시설들의 모습. ⓒAFP=연합뉴스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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